“주변 시세보다 훨씬 싼 전셋값으로 10년 동안 산 후 최초 입주 시 확정한 저렴한 분양가로 내 집으로 전환하면 됩니다.”
아파트값이 급등하고 전셋집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주택 서민들에게 이보다 달콤한 말이 또 있을까. 최근 전국 곳곳에서 확산 중인 ‘10년 민간임대아파트’ 사업은 바로 이 절박함을 파고든다. 문제는 그 달콤한 약속 뒤에 서민들의 피 같은 돈을 삼키는 거대한 함정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한 부동산 시행사는 2024년 말 경기 광주 역세권에 1900가구 규모의 10년 민간임대아파트를 짓겠다며 대대적인 회원 모집에 나섰다.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평당 800만원대의 전셋값으로 10년 동안 거주한 뒤 최초 입주 시 정한 가격으로 우선 분양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치솟는 집값에 좌절하던 무주택자들에겐 “절호의 내 집 마련 기회”처럼 들렸을 것이다.
경기도 분당신도시에 오픈한 10년 민간임대 모델하우스. 높은 미래가치 등을 강조하고 있다. 함종선 기자
시행사는 안전장치도 강조했다. 가입비 6000만원(3000만원은 시행사가 대출알선)은 부동산신탁회사인 무궁화신탁이 안전하게 관리하고, 공사가 시작되면 그 돈은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하는 전세보증금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원금을 떼일 위험이 없다고 홍보했다. 가입비는 사업부지 매입에 최우선적으로 사용된다고도 했다.
이 말을 믿고 600명이 넘는 사람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 사업은 사실상 공중분해 상태다. 시행사는 사업관련 인허가는 물론 단 한 평의 사업부지도 확보하지 못했고, 최근에는 회원들과 연락까지 끊긴 상태다.
일부 회원들은 가입비 반환 소송을 벌여 승소했지만, 정작 돈을 관리한다던 무궁화신탁은 반환할 자금조차 없다고 한다. 가입비 상당액이 업무대행비 등의 명목으로 이미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소비자들이 믿었던 ‘안전장치’는 허상이었던 셈이다. 신탁회사는 단순 자금관리 계약이었다며 책임을 부인하고, HUG 보증 역시 사업 승인과 착공 이후에나 가능한 절차였다.
어렵게 모은 돈을 다 날리게 된 피해자들은 밤잠을 설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이런 피해는 용인·인천·수원·화성 등 수도권을 넘어 광주·울산·대전·포항 등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신종 사기가 횡행하고 있는데도 관련 규제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각 지자체 역시 위험성을 알면서도 ‘주의 권고’ 외에는 손쓸 방법이 없다고 한다. 무주택 서민의 피해를 막을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