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졸업 이후 34년간 필자는 군인이었다. 새벽의 작전 상황실 모니터에 뜬 점들이 숨 쉬듯 움직이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한 박자 빠른 결심은 전우의 생명을 구하고, 한 박자 느린 결심은 위험을 초래한다. 그래서 단언한다. 감정은 전략이 아니다.
2022년 전작권 전환 준비 과정의 완전운용능력(FOC) 평가 당시 필자는 미래연합사령관으로서 한·미 연합연습을 실제 지휘했다. 당시 경험에서 보면 전략은 선언이 아니라 준비된 구조 위에서만 작동한다. 전장은 의지나 구호가 아니라 검증된 체계와 연결된 능력으로 움직인다.
시기·조건에 따라 방점 달라져도
더 강한 방위구조 되느냐가 중요
속도보다 빈틈 없는 구조 갖춰야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확대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스1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계기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논의가 다시 뜨겁다. 이는 한반도 방위 체계와 한·미 동맹의 미래 구조를 판가름할 문제다. 언제 전환할지 의견이 갈리지만, 이 논쟁은 출발부터 어긋나 있다. 전작권 전환은 시기만의 문제도, 조건만의 문제도 아니다.
시기를 강조하는 주장은 의지에, 조건을 강조하는 주장은 능력에 방점을 둔다. 그러나 전략에서 힘은 이 둘 중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지 없는 능력은 멈춰 선 장비이고, 능력 없는 의지는 구호일 뿐이다. 힘은 의지와 능력이 결합할 때 작동한다. 전작권 전환도 마찬가지다. 시기와 조건을 나눠 다툴 것이 아니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전작권을 언제 가져올 것이냐가 아니라 전환 이후 지금보다 더 강한 방위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다. 전작권 전환의 본질은 지휘권 회수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군이 주도하는 새로운 방위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지휘권은 그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일 뿐이다. 여기서 구조란 단순한 지휘 체계가 아니다. 정보·감시·정찰, 지휘통제, 타격과 방호, 보급과 유지, 그리고 한·미 상호운용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전체 체계다. 이 구조가 하나의 흐름으로 작동할 때 억제와 대응은 힘을 발휘한다. 어느 한 축이라도 흔들리면 전체는 지연되고, 그 지연이 곧 위험이 된다.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봐야 한다. 오늘의 한국은 과거와 다르다. 정보·감시·정찰 역량은 크게 향상됐고 ‘3축 체계’도 구호를 넘어섰다. 여기에 한국 주도의 지휘와 한·미 상호운용성을 결합하면 억제력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동맹 현대화는 미국만의 요구가 아니라 한국에도 필요한 과제다. 이번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논의의 초점은 전환 시기보다 미래 연합방위체계의 구조에 맞춰졌다.
군사에서 속도전은 착시를 부른다. 겉으로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결심이 늦고 보급과 정비가 발목을 잡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반 박자 지연이 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전작권 전환의 기준은 속도가 아니라 구조가 빈틈없이 작동하는지에 둬야 한다. 이런 본질을 놓치면 지휘권을 확보하고도 방위는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구조가 준비되지 않은 전환은 공백을 낳는다. 반대로 구조가 완성되면 전환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 조건이 중요하다. 조건은 전환을 늦추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더 강한 구조를 세우기 위한 기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 1월 '2026년 제1차 전작권 전환 추진평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이 갖춰야 할 능력, 미국이 보완해 줄 영역, 동맹이 지속해서 유지해야 할 기능, 양국이 합의해야 할 절차와 기준이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유사시에 자동으로 작동하는 연합대응체계는 구조의 핵심이다.
전작권 전환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구조다. 협력 없이 더 강한 구조는 존재할 수 없다. 시기를 앞당기거나 조건을 형식적으로 꿰맞추는 데만 몰두한다면 전환 이후 체계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기준은 하나다. 전작권 전환 이후 지금보다 더 신속히 결심하고, 더 강하게 억제할 수 있는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실질적 억제와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위기 상황에서 지연 없이 작동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지 못하고 시기만 앞세우면 전략이라 할 수 없다.
물론 전작권 전환은 꼭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더 강한 구조를 세우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지휘권 조정은 그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군인은 감정으로 싸우지 않는다. 국방도 마찬가지다. 전작권 전환 논의도 감정이 아니라 전략 위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