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1년, 최대 승자는 단연 주식투자자다. 2698에서 출발한 코스피가 세 배 가까이로 올랐다. 1억원 투자했으면 지수만 좇아갔어도 3억원이 됐다. 지난해 개인투자자가 주식으로 429조원을 벌었다. 올해 상승분을 더하면 차익 규모는 훨씬 늘어난다. ‘평생 모을 돈을 벌었다’는 무용담이 난무한다. 과열 조짐이 뚜렷한데도 다들 장밋빛 전망을 내느라 정신이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 복귀는 지능순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일단 그의 생각대로 됐다. 전 국민이 행복한 건 아니다. 활황 증시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은 ‘포모’(나만 뒤처진다는 불안)를 겪고 있다. 이들은 머리가 나빠서 주식 투자를 못 한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노후 자산을 주식에 넣을 엄두가 나지 않거나, 투자할 여윳돈이 아예 없거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 주식투자 안 하는 입장에선 ‘지능순’이라는 비유가 모욕적으로 들린다.
증시 과열과 부동산 불안 겪는 동안
주식과 집 있는 사람 자산가치 급증
돈 없고 집 없는 약자와 격차 벌어져
양극화 심화는 누가 고민하고 있나
주가가 오르는 게 떨어지는 것보다 백번 낫지만, 양극화 해소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산 상위 20%가 전체 주식의 73%를 갖고 있다. 잘사는 사람이 더 잘살게 되고, 가난한 사람 대부분은 잔치 구경하는 신세다. 돈 없는 청년층이나 저소득층이 인생 역전을 노리고 택한 게 빚투다. 외상으로 주식을 매수한 신용융자 잔고가 역대 최고치인 36조원을 넘었다. 분명 정상이 아니다. 정부는 거품과 빚투의 위험에 눈을 감은 채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앞장선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주가가 닷새 연속 오르며 달아올랐던 지난 11일 “코스피는 아직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안정적으로 끌고가야 할 경제부총리가 증권사 대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주식투자의 1차 책임은 물론 본인에게 있다. 아무런 경고를 하지 않은 채 과열을 수수방관 내지 부추긴 정부도 훗날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 1년간 또 다른 승자는 서울·수도권 요지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다. 부동산 대책을 비웃듯 집값은 올랐다가 멈추고, 멈췄다 오르기를 반복한다. 1년 새 5억원, 10억원씩 오른 아파트가 부지기수다. 이 대통령은 이달 초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이제 없다”고 했다. 현실과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지난 10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재개되자 아파트값이 다시 뛰고 있다. 출범 초기 정부는 시중 자금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제로는 주식에서 번 돈으로 부동산을 사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한은에 따르면 무주택자가 주식에서 번 돈의 70%를 부동산 사는 데 썼다. 국민 머릿속은 여전히 ‘기승전 부동산’이라는 사실을 정부가 간과했다.
요새 매매보다 더 걱정스러운 게 전월세다. 올들어 전월세 물건이 30% 이상 줄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지난주 서울 전세 상승률은 10년 만에 최고치였다. 매물이 나오면 집을 보지 않고 계약서부터 쓰는 노룩(no-look) 전세까지 나왔다. 서울 외곽 지역인 노도강(노원·도봉·강북), 금관구(금천·관악·구로)에서도 월세 300만원 계약이 등장했다. 웬만한 사람 한 달 월급(지난해 월급 중간값 350만원)이다. 전월세난의 1차 원인은 아파트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수도권 입주 물량은 10만6000가구로 12년 만에 가장 적다. 정부가 다주택자 공격에 집중하다 전월세난을 놓친 측면도 있다. 다주택자는 임대 물량의 70~80%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에서 실거주 조건을 강화할 경우 전세 물건은 더 줄어들 것이다. 전월세 시장이 마비되면 서민 주거 사다리가 끊어지고, 매매값을 밀어올리는 악순환을 빚는다.
이 대통령은 X(옛 트위터)와 각종 회의에서 온갖 사안에 의견을 내고 있다. ‘대통령이 그런 것까지 나서나’ 싶을 정도다. 부동산에 대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얘기한다. 그런데 정작 난리가 난 전월세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청와대 참모나 각료도 침묵하긴 마찬가지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얼마 전 “부동산 시장이 마침내 하향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사 갈 집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세입자 입장에선 울화통 터지는 얘기다. 정부가 불리하거나 난처한 이슈를 피해가는 건 당당하지 않다.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건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더군다나 전월세난은 정부 정책이 낳은 부작용 아닌가.
정부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집권 1년 승자는 주식투자를 하고, 집도 있는 사람이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부류다. 패자는 돈 없고, 집 없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다. 공교롭게도 분배를 강조하는 진보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정부가 약자를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다. 재정을 축내고, 시장원리를 거스른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민생 정책에 열심이다. 고유가 피해 지원금, 비정규직 지원 확대, 포용 금융, 농어촌 기본소득…. 하지만 이런 모든 노력을 한 방에 쓸어버릴 만큼 큰 규모의 자산 격차가 생겼다. 이로 인한 양극화 심화는 누가 고민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