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19일 오전 8시 50분. 한 건물의 정문 앞에 승합차와 소형버스들이 집결했다. 탑승자는 검사 8명과 수사관 40여 명, 그리고 컴퓨터 분석 전문가들이었다.
그 문의 안쪽은 삼엄했다. 겹겹의 바리케이드와 무장 요원들이 총을 들고 있었다. 얼마나 대치했을까, 예상 밖으로 쉽게 문이 열렸다. 누군가 낮게 말했다.
" 이게 되는군요. "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 차량들이 국가정보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끝마친 뒤 국정원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그 건물은 국가정보원이었다. 그들이 단행한 건 사상 초유의 국정원 압수수색이었다. ‘국정원 도청 사건’에 대한 강제 수사의 시작이었다.
" 들어간다! "
외침과 함께 인력을 이끈 이는 박민식(국민의힘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 검사였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소속이던 그는 해당 사건의 주임검사였다. (이하 경칭 생략)
그들은 곧바로 옛 과학보안국 사무실로 향했다. 한때 도청을 담당했던 조직, 이른바 ‘미림팀’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으로 지목된 곳이었다.
박민식은 오래된 장비와 문서들을 발견했다. 버려졌다고 했던 것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들.
" 이 장비, 작동 가능합니까. "
전문가가 장비를 켜보니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구조는 살아 있었다.
" 가능합니다. "
박민식은 한 번 더 물었다.
" 이걸로 감청이 가능했습니까. "
전문가가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 (감청 흔적이) 남아 있네요. "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이어진 압수 수색 결과 20여 개의 사과 상자들이 증거로 가득 채워졌다. 증거와 진술의 방향은 갈수록 뚜렷해졌고, 수사의 끝은 자연스럽게 ‘윗선’으로 향했다. 박민식은 전직 국정원장인 임동원과 신건을 구속하는 데 성공하면서 세간에 그 이름 석 자를 뚜렷이 각인시켰다.
박민식 후보는 2004년 8월부터 2006년 검사 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근무했다. 그 시기에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사진 박민식 캠프
그때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들이닥쳤다. 핵심 조사대상이던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이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박민식은 대검에서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그때 만신창이가 됐다.
그의 머릿속으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찔레꽃 향기와 함께 전해졌던 부친의 순국 전보, ‘월남때기’로 불리며 구포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모친의 모습, 빠르게 ‘현실’을 배워야 했던 그의 옛 모습, 삶의 돌파구였던 공부에 매달려 외사와 사시를 모두 통과했던 지난 날...
그는 결심했다.
2006년 9월 6일.
" 이제 옷을 벗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
한 기자가 수화기 너머의 박민식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 제가 죄를 많이 지어서…. "
잘 나가는 특수부 검사로 ‘불도저 검사’라는 별칭까지 가졌던 이의 사의 표명치고는 뜻밖이었다. 그가 한숨 돌린 뒤 말을 이었다.
세상이 넓으니까 나가서 좋은 일을 많이 해야겠습니다.
많은 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11년간의 검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돌아봤다.
몸무게가 5㎏ 줄었고, 간의 상태도 나빠졌어요.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가져다 놓고 수시로 쉬어야 할 정도죠. 극복하려 했지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