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의 1960년 소설 『광장』에 현실의 광장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 이명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관념의 광장이다. 소설의 광장과 밀실을 사회와 개인 혹은 공적인 삶과 내면 성찰쯤으로 각각 이해하면 될 텐데, 광장은 남북을 두루 경험한 이명준의 입을 빌려 당대의 남북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소설적 장치 역할을 한다.
최인훈이 고안한 광장의 은유는 지금 봐도 탁월한데, 아쉽게도 우리 현실의 광장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스의 아고라, 로마의 포럼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구의 광장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인 가운데 각종 모임과 축제, 심지어 공개 처형까지 벌어지는 공적 공간이었다. 서구의 광장과 비슷한 도시 공간이 서울에 생겨난 건 대한제국 시기, 이른바 ‘시민광장’에 대한 요구가 커진 것도 2002년 한·일월드컵에 이르러서다.(이상헌, 『서울 어바니즘』)
광장이라기보다 넓은 길이라고 해야 할 텐데 조선 건국과 함께 광화문 앞에 조성한 육조대로를 광화문광장의 뿌리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하상복, 『광화문과 정치권력』) 왕이라고 해서 절대권력을 휘두른 게 아니라 세자 책봉하는 문제까지 신하들과 타협했던 군신공치(君臣共治)의 철학이, 광화문과 육조 관아의 배치에 구현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 이상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실현된 적이 별로 없다. 박정희 정부는 세종로를 확장하면서 이순신장군상을 세웠고, 김영삼 정부는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해 단절됐던 경복궁 근정전과 광화문을 연결했다. 각각 근대화와 민족중흥, 신한국 건설이라는 가치를 위한 것이었지만 대중의 심미적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무언가를 짓거나 해체한, ‘과시적 공공성’에 가까워 보인다. 의견 수렴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걸핏하면 시위가 벌어지는 요즘 광화문광장은 오프라인 공론장이다. 한데 양극단으로 갈린 우리 공론장의 병폐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모양새다. 오세훈 서울시가 최근 조성한 감사의 정원(사진)이 정부 여당의 거센 비판을 불렀다. 반대로 젊은 남성층 이용자가 두드러진 SNS 스레드에는 지지 댓글이 많아 보인다. 모두의 광장을 마련하는 묘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