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이 이런 걸까. 오늘(20일) 프랑스 파리의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신라: 황금과 신성. 신라 고대 왕국 보물’을 두고 하는 얘기다. 1889년 개관한 이 박물관의 1개 층(약 680㎡)을 통째 쓰는 이번 전시는 유럽 최초의 신라 단독전이다. 금관총 금관과 경주 계림로 황금보검 등 국보·보물 19건을 포함해 총 148건 333점이 출품됐다.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 그리고 K컬처의 세계적 위상이 만들어낸 장면이다. 야닉 린츠 관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왕관에 매료된다”며 신라 황금 유물을 여름 성수기 대표 전시로 내세웠다.
140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프랑스를 찾은 조선의 문물은 대체로 ‘이국 취향’의 대상이었다. 1888년 조선을 여행한 샤를 바라가 수집한 가구·도자기·민화·불상 등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소개됐고, 훗날 기메박물관 한국실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서구가 읽어낸 것은 어디까지나 “신비롭고 우아한 동양”이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대한제국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세계를 상대로 스스로를 설명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전시되는 동양’의 일부로 소비됐다.
18일 파리 국립기메박물관의 신라 특별전 사전행사에서 금관총 금관을 감상하는 모습.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반면 이번 신라전은 로만글라스와 서역 계통 유물 등을 통해 신라가 이미 1500년 전 세계와 연결된 문명이었음을 말해준다. 서구 열강은 19세기 말에야 조선을 세계 질서 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세계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져 있었다. “프랑스 관객이 신라 유물을 보며 ‘우리 것과 닮았네’라고 느끼는 순간, 동서 문명이 오래전부터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박물관 측 설명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 단순한 사실을 프랑스 관람객들이 깨닫기까지 140년이 걸렸을 뿐이다.
이 전시와 짝을 이루듯 서울공예박물관의 ‘하이브리드’ 전시(7월 26일까지)는 개항기 조선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전시장 첫머리에 놓인 말총 중산모는 전통 갓의 재료인 말총으로 서양식 모자를 만든 결과물이다. 이 모자를 고종에게서 하사받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저자 퍼시벌 로웰은 이를 하이브리드(혼종)라고 불렀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K컬처를 관통하는 오래된 감각 아닐까. 외부 세계와 충돌하고 섞이며 낯선 것을 자기식으로 바꾸는 힘. 19세기 파리가 조선을 ‘이국적인 동양’으로 소비했다면, 오늘의 파리는 한국사를 쪼개 신라라는 문명 단위까지 읽어낸다. 한·프랑스 수교 140년에 다가온 이들 전시가 새삼스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