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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다시 86, 다시 그 논리

중앙일보

2026.05.19 08:18 2026.05.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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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인천 연수갑을 다녀온 동료 기자의 글에서 다음 문장을 만났다. “86세대가 ‘나 아니면 안 된다’며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다. 정작 후배 양성은 없다.” 몇 주 전, 민주당에서 잔뼈가 굵은 1970년대생 지인 A가 같은 얘기를 훨씬 격하게 했었다. “봐라. 결국 다 86이다. 몇십 년을 해먹는 거냐.”

연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86세대의 상징적 인물인 우상호가 여의도를 떠나며 낸 『민주당 1999~2024』엔 자신의 세대에 대한 설명이 담겼다. 5·18과 전두환 군부 통치가 형성적 경험이었고, 학생운동권 지도부 일부가 1999년부터 정치 진입을 준비해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을 꾸렸다는 내용이다.

이번 선거서도 확인되는 86 아성
적군·아군 이분법 인식도 여전
보수자멸과 맞물려, 한국엔 불행
참여자들의 이름도 굵은 고딕체로 나열했다. 대부분 쟁쟁해 길지만 인용한다. 기동민·김경수·김만수·김성환·김영배·김영춘·김우영·김원이·김윤식·김종민·김태년·김현·백원우·복기왕·서갑원·송갑석·송영길·신동근·안희정·오영식·우상호·유기홍·윤건영·이규희·이용선·이인영·이철우·이해식·이화영·임종석·정원오·정청래·조정식·최종윤 등 30여 명이다. 17~21대 총선 과정에서 등장한 이들도 있는데, 강기정·권칠승·김교흥·김윤덕·김의겸·박범계·박수현·박정·박홍근·백혜련·서영교·송기헌·신정훈·안민석·안호영·오기형·윤호중·이광재·이용우·전재수·정성호·정태호·조승래·진선미·진성준·천준호·최기상·한병도·허영·홍익표·황희 등이다(많이 생략했다).

우상호는 그러곤 “그룹으로서의 86세대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계파 질서에 기여한 점이 첫 번째 과오”이고 “불평등과 격차 해소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더 철저하게 싸우지 못한 점도 한계였다고 뼈아프게 반성한다”라거나 “여당 시절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제대로 목소리 내지 못했던 것도 부족한 점”이라고 했다. 독일을 더 개방·포용적으로 이끈 68세대와의 비교인 듯하다. 대부분 배지를 단 이름 하나하나를 보며 ‘과오’ ‘반성’ ‘부족’보단 세(勢)나 자부심이 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선대위 위원장들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대한민국 국가 정상화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일 잘하는 민주당, 지방선거 승리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선대위 위원장들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대한민국 국가 정상화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일 잘하는 민주당, 지방선거 승리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권력의 획득·유지·확장 게임에서 86세대는 압도적이다. 머릿수도, 패권 기간도 그렇다. 여러 차례 퇴진론도 이겨냈다. 특히 2019년 조국 사태가 위기였는데 이들은 강하게 맞섰다. 우상호는 “우리가 무슨 자리를 놓고 정치 기득권화돼 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약간 모욕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고 했고, 박홍근은 “우리가 당 대표를 했냐, 대통령을 했냐”고 했다.

하지만 우상호의 명단을 보라. 국회의장이 나오려 하고(조정식), 당 대표가 여럿이고(송영길·정청래), 장관은 지천이다. 산업화를 이끈 육사·엘리트관료 연합체를 능가한다. 물론 보수의 자멸 덕분일 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은 이들의 철 지난 ‘민주 대 반민주’ 주장을 그럴싸해 보이게 했다. 여기에다 이들만의 정교한 권력 담합 구조도 있다. 노선이 달라져도 패권 유지엔 유기체 같다. 이번 6·3 선거에도 86세대들이 공천을 했고, 또 공천을 받았다. 우상호가 강원지사로 나서자 이광재가 양보했고, 그런 이광재를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했다. 대통령 참모에게 밀릴 듯하니 송영길을 따로 챙겼다. 서로 차이를 미루고, 파이를 키우는 길을 택했다. 놀라운 권력감이다. 대신 새 얼굴은 덜 보인다. 지인 A는 “말 잘 듣는 후배만 쓴다”고 했다.

86들이 반성 속에 진화했다면 새 인물이 굳이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 이들의 인식 틀은 그러나 30년 전에 고정된 듯하다. 세계관은 당시와 다를 바 없고, 적(敵)과 아(我)의 대결로 몰아가 전자는 절멸하려 들고 후자는 뭐든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정치 행태도 여전하다. 공소취소 특검이 그렇고, 30년 전 주취 폭행을 두고 “5·18에 대한 이견 때문”이라고 눙치는 것도, 광화문광장에 6·25 기념물 설치는 불가하다는 태도도 그렇다. 구린데, 보수의 더한 한심함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고정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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