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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아들의 끈질긴 설득…54년 효성맨, 그룹 회장 맡았다

중앙일보

2026.05.19 13:00 2026.05.1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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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영 HS효성 회장. 김종호 기자

김규영 HS효성 회장. 김종호 기자

“회장으로 와 달라고하니 놀랐죠.”

2025년 중순, 은퇴를 앞둔 김규영 당시 효성 고문에게 효성그룹 오너가(家)인 조현상(55) HS효성 부회장이 불쑥 찾아왔다. 조 부회장은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3남으로, 그가 맡은 HS효성은 막 효성그룹에서 완전히 독립해 나온 참이었다. 조 부회장은 김 고문에게 HS효성을 함께 이끌어 가자고 부탁했다. 그것도 자신보다 높은 직급인 회장 자격으로. 1966년 동양나이론(효성그룹 모태) 이래 범효성 기업에서 전문경영인이 회장을 맡은 적은 없었다.

처음엔 선을 그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50년 넘게 효성에 헌신했던 만큼,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 부회장은 “누구든 역량을 갖추면 회장이 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란 걸 아시지 않습니까”라며 인생 선배인 김 고문을 윗사람으로 모시고 싶다고 거듭 요청했다.

결국 은퇴를 미루고 경영 일선에 다시 섰다. 1948년생, 한국 나이로 내년이면 여든. 봉급쟁이 직장인이라면 은퇴하고 20년은 지났을 나이다. 지난 4월 1일 공식 취임한 뒤 첫 언론 인터뷰를 가진 김규영 회장을 만났다.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한 김 회장은 1972년 동양나이론에 들어갔다. 그는 “입사할 때부터 ‘사장 한 번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을 만큼 목표를 높게 잡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울산 부공장장부터 언양 공장장, 안양 공장장, 중국 총괄 사장,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을 거쳐 효성 지주사 대표와 부회장까지…. 그렇게 50년 넘게 ‘효성맨’으로만 살아오며 샐러리맨 신화를 써 내려갔다.

고 조석래 명예회장(오른쪽)과 공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규영 당시 안양공장장. [사진 HS효성]

고 조석래 명예회장(오른쪽)과 공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규영 당시 안양공장장. [사진 HS효성]

조석래 명예회장과의 인연은 특히 깊다. 탁월한 엔지니어였던 조 명예회장과 김 회장은 ‘명콤비’를 이뤄 타이어코드와 스판덱스를 세계 1위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90년대 후반 김 회장이 안양 공장장 시절 성공시킨 스판덱스 사업은 남다른 애정을 가진 분야다. 당시 스판덱스는 생산기계는 다 주문해놨는데 품질 불안정이 확인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조 명예회장은 “품질이 먼저다.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추가 설비 발주를 전면 중단하라”는 결단을 내렸다. 이에 김 회장은 밑바닥부터 공정을 재점검해 9개월 만에 품질을 안정시켰고, 사업은 8년 만에 흑자를 냈다.

2005년 5월 김규영 당시 효성 섬유PG CTO(최고기술책임자) 부사장(가운데·현 HS효성 회장)이 구미 공장에서 임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HS효성]

2005년 5월 김규영 당시 효성 섬유PG CTO(최고기술책임자) 부사장(가운데·현 HS효성 회장)이 구미 공장에서 임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HS효성]

2005년 효성의 베트남 진출도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김 회장은 현지를 답사하고 베트남이 생산 공장의 3대 요소인 전력·수자원·인력 모두를 갖췄다고 확신했다. 그는 “경영진 모두가 회의적인 반응이었지만, 다섯 차례나 베트남을 오가며 설득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조 명예회장의 지지 속에 베트남 공장이 건설됐고 현재 효성의 최대 생산기지가 됐다.

김 회장은 조 명예회장을 원천 기술 중요성을 평생 강조한 ‘공돌이’로 기억한다. 공장 현장 직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장황한 보고서보다 짧고 간략한 핵심을 듣고 싶어한 실용적 리더였다. 김 회장은 “웬만한 사람 같으면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때, 회장님은 확신을 갖고 한 발짝 더 목표를 세워 나아갔다”고 전했다.

효성그룹은 2024년 7월 1일 효성화학을 주축으로 하는 ‘효성’과 첨단소재를 주축으로 하는 ‘HS효성’으로 인적분할했다.

김 회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타이어코드 등 기존 사업을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유지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먹거리를 키워내는 것. 최근 HS효성이 진출한 실리콘 음극재 사업이 대표적이다. 음극재는 전기차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로, 기존 사업과의 연계성도 높다. 김 회장은 “기존 사업을 단단히 다진 뒤 새로운 분야로 확장해 가겠다”며 “성과 중심의 인재 경영을 통해 전문성과 투명성이 HS효성의 성장 기반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50년 넘게, 한 회사에서만 꾸준히 일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샐러리맨 신화 비결을 묻자 김 회장은 좌우명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꺼냈다. 나 자신과 가족을 잘 챙겨야 일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회사 일이 고무공이라면, 건강과 가족, 친구는 유리공이에요. 고무공은 떨어뜨려도 다시 주우면 그만이지만, 유리공은 바닥에 닿는 순간 깨지죠. 내가 중심이 되어야 회사 일도 오래 이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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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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