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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 구속해라” YS가 시켰다?…“각하가 웁니다” 檢에 온 전화

중앙일보

2026.05.19 17:28 2026.05.1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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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검찰청은 오는 10월 영욕의 78년 세월을 접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다.

검찰의 발자취에는 공과(功過)가 병존한다. ‘국민검찰’이라고 치켜세우던 영웅의 시절이 있었고, ‘정치검찰’이라고 빈축을 사던 악마의 시절이 교차한다. 검찰의 잘잘못을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중앙플러스가 ‘칼의 춤, 검찰 징비록’을 시작하는 이유다.

※ 이 기사는 중앙일보 프리미엄 유료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 전용 콘텐트로 내용을 더 보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5월 15일 김영삼(YS)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7년 5월 15일 김영삼(YS)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중앙포토

징비록 7-1,2화. 대통령 아들 구속, YS 하명인가 검찰 결단인가


78년 검찰사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사례는 손에 꼽는다. 그중에서도 1997년 김영삼(YS)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이하 존칭 생략) 구속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소통령’으로 불리던 당대 최고의 실세를 구속하는 건 어떻게 가능했나. 이는 살아 있는 권력이던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를 정공법으로 수사하지 않아 자멸의 길을 자초한 2020년대 검찰이 짚어봐야 할 역사다.

1997년 5월 17일 대검찰청 중수부. 이훈규 3과장이 김현철에게 곧 구속될 거라고 통보했다. 김현철은 충격을 받은 듯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아버지입니까, (검찰)총장입니까. "

자신의 구속을 결정한 주체가 YS인지, 김기수 검찰총장인지 묻는 물음이었다. 이훈규가 답했다.

" 당신 구속은 대통령이나 총장이 아닌, 주임검사인 내가 하는 겁니다. "

YS는 2001년 낸 회고록에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

" 나는 김기수 검찰총장한테 직접 전화해 ‘현철이를 구속하라’고 지시했다. "

진실은 무엇일까.

(계속)

7-1화. “아버지입니까 檢총장입니까” 구속 된 그때, YS 차남의 충격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5845


7-2화. “차남 구속해라” YS가 시켰다?…“각하가 웁니다” 檢에 온 전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7658

징비록 6화. 12·12와 5·18 수사, 전두환 어떻게 단죄했나


" 앞으로, 내 모든 거는 묵비권을 행사하겠소. "

1995년 12월 3일 오전 11시 안양교도소.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5·18 수사 주임검사 김상희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앞에 앉자마자 이렇게 내뱉었다. 몇 시간 후엔 검사에게 선언했다.

" 5공 정통성을 공격하기 위해 하는 검찰 조사에는 내가 협조할 수 없어. 나는 오늘부터 단식하기로 했어. "

그는 앞서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묻는 형식적 질문에도 이렇게 답했다.

" 내, 주소도 모르고 집 전화번호도 모른다. "
" 어떻게 집 전화번호도 모르세요.(김 부장) "
" 김 부장, 내, 18년간 내 손으로 다이알을 돌려본 적이 없어. "

이랬던 그는, 이후 누그러져 검찰에 입을 열었다. 심지어 “노태우가 날 괴롭혔다”는, 다소 파격적인 이야기도 털어놨다. 전두환은 왜 묵비권 행사를 포기했을까.

(계속)

6화. 전두환 “뭐? 뇌에서 뭐가 뽑혀?” 단식 중단후 檢조사 응한 사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4006

징비록 5화. ‘검찰 시대’ 연 노태우 비자금 수사


" 검찰의 전직 대통령 수사 중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가 가장 압도적인 박수를 받은 사건이다. 당시는 전직 대통령이 돈을 받는 것 자체를 성역으로 생각했다. ‘건드리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깨고 정공법으로 수사를 강행해 성과를 낼 수 있었다. "

1995년 11월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은닉한 노태우 전 대통령(1932~2021년, 이하 존칭 생략)을 소환조사하고 구속한 당시 대검 중수2과장이던 문영호 변호사는 취재팀에 ‘첫 전직 대통령 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오는 10월 해체되는 검찰에는 흑역사의 낙인이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받던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 노태우 비자금 수사는 검찰의 화양연화 시대를 연 전주곡이었다.

(계속)

5화. “도시락에 쪽지 숨겨져 있었다” '노태우 구속' 검사 놀란 이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2014

징비록 4화. 범죄와의 전쟁, 검찰 안과 밖의 전쟁


" 검찰이 본격적으로 힘을 키우기 시작한 건 노태우 정부 시절 ‘범죄와의 전쟁’ 즈음입니다. 이 ‘전쟁’은 검찰을 망치는 기폭제도 됐습니다. "

한 전직 검찰총장의 말이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나.

" 약속해 주십시오. 조직폭력배(조폭)들을 잡아넣는 수사팀을 날려버리라는 모함이 자꾸 들어올 겁니다. (검찰) 총장께서 다 막아주셔야 합니다. "

1990년의 어느 날. 송종의 대검찰청 강력부장은 김기춘 검찰총장에게 ‘특청’을 올렸다. 검찰은 ‘조폭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정치인 여럿이 검찰 수뇌부에 수사팀을 날리라는 압력 전화를 넣었다.

송종의 강력부장 본인도 각종 전화에 시달렸다. 이번엔 ‘영전 청탁’이었다. 얼마 전엔 날려야 한다던 검사를, 이번엔 “더 좋은 자리로” 영전시켜야 한다고 난리였다.

같은 검사를 두고 왜 이토록 말이 달라졌을까.

음흉한 이유가 있었다.

(계속)

4화. “죄다 형님·동생…그때 변했다” 검찰 우쭐해진 ‘범죄와의 전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0053


백일현.정유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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