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조가 2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물론 한국 제조업 전반의 신뢰도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글로벌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들의 공급망 확보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삼성전자발(發) 생산 불확실성이 ‘메이드 인 코리아’ 경쟁력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재계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이 최종 결렬되자 2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노사는 특히 영업적자를 내고 있는 비메모리 사업부에 대한 성과급 배분 문제를 두고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총파업 장기화 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공급 차질과 가격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낸드플래시 등 핵심 메모리 시장에서 세계 최대 수준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HBM은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AI 반도체 생태계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만큼 생산 차질 우려 자체만으로도 시장 민감도가 높은 상황이다.
최근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함께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서버 확보 경쟁에 나서면서 반도체 공급 안정성은 글로벌 산업계 최대 변수 중 하나로 떠오른 상태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생산 차질 가능성만으로도 글로벌 고객사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본다.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 삼성전자
실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AMCHAM)는 최근 삼성전자 노사 갈등과 관련해 “상당한 수준의 생산 차질이나 운영 불확실성이 발생할 경우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공급 병목과 가격 변동성 확대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DS부문 역시 라인 운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일부 생산라인의 ‘웜다운(Warm-down)’ 조치를 검토하는 등 비상 대응 체제를 가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삼성전자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제조업 전체의 신뢰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 반도체·자동차·배터리·조선 등 글로벌 공급망 핵심 산업에서 ‘납기 안정성’과 ‘품질 신뢰’를 강점으로 성장해왔는데, 삼성전자 파업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이런 프리미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는 국민주 성격이 강한 기업인 만큼 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이번 사안은 단순한 삼성전자 내부 갈등을 넘어 국내 산업 전반의 투자 심리와 공급망 신뢰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노조원들이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투쟁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노사 갈등 장기화가 대만 TSMC 등 경쟁사 반사이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공급선 다변화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생산 불확실성은 중대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고객사 이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부 노사 갈등으로 진통을 겪는 사이 글로벌 파운드리(위탁생산) 경쟁사들은 공격적으로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텔은 현지시간 18일 첨단 18A(1.8나노) 공정 수율 개선을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 대형 외부 고객사 수주 가능성을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생산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고객사들의 공급선 다변화 움직임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안정적인 공급 능력 자체가 핵심 경쟁력”이라며 “글로벌 고객사들은 실제 생산 차질 여부보다 공급망 불확실성을 더 큰 리스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