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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골 터지자 더 큰 함성…“우린 대한민국 팀” 수원FC 눈물의 패배

중앙일보

2026.05.20 05:01 2026.05.2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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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수원FC 위민과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이 치열한 볼 경합을 펼치고 있다. 뉴스1

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수원FC 위민과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이 치열한 볼 경합을 펼치고 있다. 뉴스1


20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4강전이 열린 수원종합운동장. 수원FC 위민(한국)과 내고향여자축구단(북한)이 강한 빗줄기 속에서 ‘우중혈투’를 펼쳤다.

전반전에 골대를 2차례 때리며 내고향을 압도했던 수원FC는 후반 4분 스즈키 하루히(일본)의 선제골로 앞서갔다. 그러나 체력이 좋은 내고향의 최금옥과 김경영에게 후반 10분과 22분에 연속골을 허용했다. 후반 34분 지소연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1-2로 졌다.

2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릴 결승전 티켓을 내고향에 내줬다. 내고향 김송옥과 최연아가 거친 태클을 가해 경고를 받는 육탄전이 펼쳐졌다. 최금옥은 “우리팀 모두 하나로 뭉쳐서 하면 준결승도, 결승도 하나도 문제 될게 없다”고 했다.

내고향의 김경영이 헤딩 결승골을 터트리고 있다. 뉴스1

내고향의 김경영이 헤딩 결승골을 터트리고 있다. 뉴스1


두 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도 종합격투기 UFC 계체량을 앞둔 파이터들처럼 신경전을 벌였다. 내고향 공격수 김경영이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인민들과 부모 형제들의 믿음,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선전포고했다. 수원FC 위민의 공격형 미드필더 지소연은 “북한 선수들이 욕하면 같이 욕해주고, 발로 차면 우리도 차겠다”며 날을 세웠다.

앞서 지난해 11월 두 팀의 조별리그 맞대결도 심한 태클과 욕설이 오간 ‘총성 없는 경기’였다. 2017년 4월 남북 여자축구대표팀간 여자월드컵 예선이 열린 김일성경기장 입구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됐다. 그라운드에 오르기 직전의 대기 공간인 터널의 분위기도 서로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한 북한 선수가 “죽이고 나가자”고 외치자 지소연이 “우리도 죽이자”라고 맞불을 놓았다. 그러자 “찢어 죽이자”는 섬뜩한 말이 돌아왔다. 실제로 북한 선수들은 한국 골키퍼 김정미의 머리를 고의로 가격했다.

2019년 10월 평양에서 남북 남자축구대표팀이 맞붙은 월드컵 예선 당시 미드필더 황인범은 북한 선수에게 얼굴 부위를 가격 당했다. 북한 선수들은 “간나 새X” 같은 거친 말을 퍼부어댔다. 손흥민은 귀국길에 “우리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 큰 수확”이라고 작심발언을 했다.

2015년 중국 우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남북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경기장 바깥에선 진한 우정을 나눴다. 시상식 후 김도연·조소현·권하늘·전가을·이은미(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은 동갑인 북한 공격수 나은심(오른쪽)과 다정하게 셀카를 찍었다. 사진 선수 제공

2015년 중국 우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남북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경기장 바깥에선 진한 우정을 나눴다. 시상식 후 김도연·조소현·권하늘·전가을·이은미(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은 동갑인 북한 공격수 나은심(오른쪽)과 다정하게 셀카를 찍었다. 사진 선수 제공

하지만 남북 축구 경기가 항상 이렇듯 얼어 붙었던 건 아니다. 2015년 8월 중국 우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시상식 직후 조소현 등 한국 선수들은 1998년생 동갑내기 북한 공격수 나은심과 다정하게 셀카를 찍었다. 당시 나은심이 “나 보고 싶었다며? 근데 왜 말 안 걸었어?”라고 살갑게 말문을 열었고, 조소현은 “응. 그냥. 근데 다들 평양 살아?”라고 밝게 응대했다. 이에 나은심이 “응 평양 살아. 머리카락은 왜 잘랐어?”라며 소녀들의 수다 같은 대화를 이어갔다.

나은심은 A매치 100경기를 달성한 권하늘에게 “야, 니 오래도 있는다야~“라며 농담을 건네고, “한겨레, 한 핏줄로서 통일만 되면 우리는 한 운동장에서 뛸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소현은 “북한 친구들이 경기에서 지면 정말 탄광에 끌려가는 게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수원FC 지소연이 페널티킥 실패 후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원FC 지소연이 페널티킥 실패 후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11년이 지난 지금, 남북 축구자매의 ‘셀카 우정’은 빛바랜 추억일 뿐이다. 선수들의 말과 표정, 행동에서 더이상 ‘한 겨레’나 ‘한 핏줄’ 이란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남북 대치 상황이 길어지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적대적 2국가’를 선언한 상황에서 북한 선수들에게 한국은 그저 타도할 적일 뿐이다.

응원을 펼치는 공동응원단. 뉴스1

응원을 펼치는 공동응원단. 뉴스1

꽁꽁 얼어붙은 남북의 정치적 갈등 양상은 그라운드마저 격투기장으로 변모 시켰다. 대북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공동응원단은 이날 ‘우리선수 힘내라’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내고향!”을 외쳤다. 하지만 이들이 내고향의 득점이 터질 때 더 큰 함성을 지르는 어색한 풍경이 연출됐다.

박길영 수원FC 감독은 경기 후 ‘홈 이점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울먹이며 “저희는 대한민국 축구팀 수원FC 위민이다. 경기하는 내내 속상하기도 하고, 마음이 좀 그랬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리유일 내고향 감독은 “격렬한 경기라서 의식을 잘 못했지만, (한국) 주민들이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박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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