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지인들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6·3 지방선거 서울·부산·대구시장 판세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최근 들쑥날쑥한 여론조사를 두고 오차범위 내로 근접한 일부 조사를 근거로 막판 판세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과 여당의 싹쓸이 전망에 변화가 없다는 이가 격론을 벌였다. 하지만 결론은 삼성전자 노조 파업과 고유가발 미국 금리 인상 이슈에 부쩍 변동성이 커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얘기로 이어졌다. 아니, 선거날까지 코스피 7000 유지 여부가 서울시장을 결정한다고? 바야흐로 코스피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코스피 7000이 좌우하는 지방선거
주식투자자 급증, 역대 없던 영향력
‘카지노 민주주의’에는 미래가 없어
지난 2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다음 날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장중 7000선이 위태했지만 삼성전자 주가는 소폭 상승으로 마감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파업 돌입 시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강제중단시키겠다고 예고한 것이 영향을 줬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 뒤 이재명 대통령도 직접 나서 “노동권만큼 기업 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결국 심야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협상 타결을 이끌었다.
선거를 앞두고 삼성전자 주가, 코스피 방어선이 굳게 형성된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국민 전체가 코스피 이해당사자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주주만 461만 명, SK하이닉스도 118만 명이었다. 이후 코스피가 장중 8000을 넘은 이달 5월 중순까지 국내 주식거래 활동 계좌 수는 9829만 개에서 1억606만 개로 약 800만 개가 늘었다. 두 기업 소액주주들이 급증한 상황에서 주가 폭락은 정권 차원의 문제가 됐다. 이 대통령의 대선 핵심 공약인 ‘코스피 5000 시대’를 이미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7000 넘게 오른 코스피가 5000대로 내려앉는 건 다른 문제다. 코스피 시가총액, 즉 국민 주식 자산이 20~30% 증발한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발목이 크게 잡힌 셈이다.
노조 파업에 긴급조정권 발동은 그간 노조 편을 들어 온 진보 정권에선 이례적인 상황이다. 발동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5년 항공운송을 과점한 아시아나, 대한항공 노조 파업 이후 21년 만이다. 성과급 등 이익 배분 문제 같은 경영상 결정을 쟁의 대상으로 확대할 수 있게 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을 강행 처리해 삼성전자 노조 성과급 파업의 여건을 만든 것이 정부·여당이 작년 9월에 한 일이었다. 앞에서 성과급 도미노 파업의 환경을 제공해 놓고 뒤에선 긴급조정권이란 극단적 수단까지 동원해 파업을 막겠다고 한 건 자가당착에 빠진 형국이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지난달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앞서 삼성전자 등 반도체 초과 이윤(초과 세수)을 어디에 쓸지를 두고 “체제 유지 비용” 운운하며 ‘국민배당금’을 제안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안민석 경기도 교육감 후보가 용인·수원·화성 초과 세수를 기반으로 중1 전원에게 100만원 규모 펀드를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것도 마찬가지다. 선거를 앞두고 국가재정법에 명시된 국채 상환이나 미래 성장동력 투자를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에 대한 고민 없이 일단 나눠 갖자는 인식에 공분을 샀다.
실제 선거용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대내외 악재 영향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무리하게 나서는 건 국민 경제는 물론 민주주의를 위해 지속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미 이란전쟁 여파를 줄이기 위해 기름값 최고가격제 보전 비용으로 4조2000억원을 편성하고, 고유가 피해지원금 6조1000억원을 지급하고 있다. 국민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은 자산배분 기준(14.9%)보다 10%포인트 초과해 국내 주식을 보유하고도 지수를 받치기 위해 재정 건전성을 위한 수익 실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선거 때 없었던 증시의 영향력은 87년 체제가 만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신호일 수 있다. 투기 세력이 판치는 ‘카지노 자본주의’처럼 정치가 한탕주의에 오염됐다는 점에서다. 문제는 40년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양대 정치세력에 자정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