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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성공 안주했다간”…프랑스가 K방산에 던진 섬뜩 경고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2026.05.20 13:00 2026.05.2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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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사례


무기의 해외 거래는 정치·외교적 변수에 따라 좌우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단 성능이 좋아야 판매가 가능하다. 문제는 설계상 스펙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기는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는 한 성능을 완벽하게 검증하기 어렵다. 그런데 인류사에서 전쟁이 그친 적은 없었음에도 최후의 필살기로 여겨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처럼 만들어 놓고 아직 실전에서 활약하지 못한 무기는 의외로 많다.

이처럼 막상 사용하기가 어려운 전략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개발해 놓고 보유만 하다가 도태된 무기는 생각보다 흔하다. 그래서 아직 실전에 투입된 사례가 없다면 테스트 결과와 업체 혹은 제조국의 명성이 일단 커다란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예상치 못한 활약을 선보이며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미라주 전투기와 엑조세 대함미사일이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대표적 사례다.

기수에 킬 마크가 가득한 이스라엘 공군의 퇴역 미라주 Ⅲ. 제3차 중동전쟁에서 놀라운 전과를 올려 프랑스제 전투기는 엄청난 지명도를 얻었다. 위키피디아

기수에 킬 마크가 가득한 이스라엘 공군의 퇴역 미라주 Ⅲ. 제3차 중동전쟁에서 놀라운 전과를 올려 프랑스제 전투기는 엄청난 지명도를 얻었다. 위키피디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변변치 않은 성적을 보여줬던 관계로 196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제 전투기는 미국·소련의 전투기보다 저평가 받았고 국제 무기 시장에서 관심도 덜했다. 그러다가 1967년 일어난 제3차 중동전쟁에서 미라주 Ⅲ가 이스라엘의 승전을 이끈 최고의 주인공이 되면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후광에 힘입어 이어서 등장한 미라주 5, 미라주 F1, 미라주 2000도 연이어 대규모 수출에 성공하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엑조세의 부상은 더욱 극적이었다. 엑조세가 최초의 대함미사일도 아니고 성능이 동시대에 등장한 미국·소련의 경쟁작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초기 외교적으로 미국이나 소련제 무기의 구매에 어려움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여력이 없는 국가들이 주로 구매했다. 우리나라도 미국이 인권문제를 빌미 삼아 하푼 판매를 거부하자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엑조세였다.

그러던 1982년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군이 발사한 엑조세가 영국의 최신 구축함 셰필드를 격침하는, 이른바 엑조세 쇼크라고 불리는 인상적인 전과를 기록했다. 더해서 수송 임무를 벌이던 애틀란틱 컨베이어를 격침하고 구축함 글래모건도 대파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보유한 5발의 엑조세를 모두 사용했고 무려 60%의 엄청난 작전 성공률을 올렸다.

아르헨티나군이 발사한 엑조세 미사일의 타격으로 불타는 영국의 최신 구축함 셰필드. 결국 진화에 실패하며 침몰했고, 엑조세는 많은 나라가 앞다퉈 구매하는 무기가 됐다. PA Images

아르헨티나군이 발사한 엑조세 미사일의 타격으로 불타는 영국의 최신 구축함 셰필드. 결국 진화에 실패하며 침몰했고, 엑조세는 많은 나라가 앞다퉈 구매하는 무기가 됐다. PA Images


이는 1967년에 있었던 스틱스 쇼크와 더불어 대함미사일의 효용성을 입증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렇게 해전의 패러다임은 지난 수백 년간 이어 온 함포에서 대함미사일이 주도하는 시대로 완전히 바뀌었다. 당연히 이런 변화를 이끄는데 결정타를 가한 엑조세는 인기 무기의 반열에 올랐고, 특히 이를 근처에서 생생히 지켜본 남미 국가에서는 반드시 보유하는 필수 무기가 됐다.

소개한 것처럼 탄생과 실전에서의 업적을 반추하면 미라주와 엑조세의 성공이 벼락출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소련이 격렬하게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는 와중에도 묵묵히 자주국방의 길을 걸어갔던 프랑스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불과 6주 만에 항복했던 아픔과 1956년 수에즈 전쟁(제2차 중동전쟁) 당시 미국과 소련의 압력에 물러났던 굴욕은 프랑스가 국산 무기 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만든 동기였다.

그런데 의지가 아무리 크더라도 프랑스는 자국군 납품 수요만으로 무기를 개발하고 양산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수출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시작하고 판매에도 적극적이다. 덕분에 현재 프랑스는 총부터 전략 핵무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무기를 국산화해서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가 주춤한 사이에 세계 무기 시장에서 2위 공급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19~2023년, 세계 무기수출 시장 점유율.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가 주춤한 사이에 프랑스는 세계 2위 방산 강국에 올랐고 계속해서 격차를 늘려가고 있다. Statista

2019~2023년, 세계 무기수출 시장 점유율.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가 주춤한 사이에 프랑스는 세계 2위 방산 강국에 올랐고 계속해서 격차를 늘려가고 있다. Statista


그렇다고 프랑스의 무기 산업이 무조건 탄탄대로만 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성공 못지않게 어려움 또한 많았다. 어쩌면 그런 난관을 극복했기에 오늘날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관련이 있는 라팔 전투기의 사례를 보면 이를 극명히 알 수 있다. 라팔은 1980년 프랑스가 공군의 미라주 2000과 해군의 F-8, 쉬페르 에탕다르를 동시에 대체할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잊지 말아야 할, 생존을 걱정했던 시절


그러나 여러 이유로 개발이 지체해서 양산에 들어가기 직전 도래한 냉전 해체와 군비 감축으로 자국군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신예 전투기 수요가 급감하자 상황이 순식간 바뀌었다. 특히 1990년대 말, 한국 공군의 제1차 FX 사업과 싱가포르 전투기 사업에서 연이어 낙마하며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까지 몰렸다. 당시는 모두가 평화의 시대가 왔다고 환호한 시절이었으니, 사업 폐기까지도 거론될 정도였다.

하지만 프랑스는 기술력을 지키려고 저율 생산을 하면서 라인 폐쇄를 막았고, 동시에 더욱 해외 세일즈에 매진했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2010년대 들어 이른바 신냉전이라는 새로운 위기가 닥치자 상황은 다시 급변했다. 5세대 전투기의 데뷔가 늦어지면서 4.5세대인 라팔이 당장 양산이 가능한 최신식 전투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라팔은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크로아티아에 공급된 라팔 전투기. 하지만 처음에는 프랑스군 납품으로 생산이 종료할 수도 있었을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위키피디아

크로아티아에 공급된 라팔 전투기. 하지만 처음에는 프랑스군 납품으로 생산이 종료할 수도 있었을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위키피디아


물론 모든 프랑스제 무기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다만 위에 거론한 사례들은 세계 무기 시장에서 프랑스의 위치를 엄청나게 도약시킨 전환점임은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평소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기회를 잡고 성공한 것이다. 즉, 성공은 결코 우연이나 요행이 아니다. 오히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를 안보적 위기로 인식하고 극복하는 노력 없었다면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2020년대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여러 전쟁·분쟁이 발생했다. 발발 가능성이 내재한 인도-파키스탄 분쟁과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 태국-캄보디아 분쟁, 이란 전쟁 등은 쉽게 예측하지 못한 사례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전쟁은 한국 방위 산업의 엄청난 도약대가 됐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로 인한 유럽의 재무장은 국산 무기 수출이 급속하게 신장한 직접적 계기였다.

그동안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자신했어도 국산 무기는 세계 시장에서 후발 주자라는 약점 때문에 경쟁을 벌일 때 많은 핸디캡이 있었다. K9 자주포가 조금씩 판매에 성공해 나갔어도 역내 카르텔이 공고한 유럽에서 한국산 무기는 일단 관심 밖의 대상이었고 일단 제기되는 수요도 적었다. 그러다가 신냉전이 갑자기 열전으로 비화하자, 무난한 성능에 당장 공급이 가능한 한국산 무기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발사 시범 중인 천궁Ⅱ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이란 전쟁에서 뛰어난 격추율을 달성해 한국 방산의 기술력을 증명했다. 위키피디아

발사 시범 중인 천궁Ⅱ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이란 전쟁에서 뛰어난 격추율을 달성해 한국 방산의 기술력을 증명했다. 위키피디아


특히 이란 전쟁을 통해 천궁Ⅱ는 앞서 소개한 미라주·엑조세처럼 단숨에 중거리 방공 체계의 신데렐라로 등극했다. 국산 무기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힘입어 정부는 4대 방산 강국의 목표까지 제시했을 정도다. 이 같은 국산 무기의 예상치 못한 약진은 유일하게 냉전이 끝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특수한 안보 환경 때문이었다. 그렇게 남들이 평화를 만끽할 때 꾸준히 투자하며 노력해왔고, 그 덕분에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어느덧 세계 최강의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히트작인 K2 전차는 이런 세계사 변혁의 시기에 극적인 부침을 겪었다. 2022년 폴란드와의 방산 협력이 성사되기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K2는 수출 여부가 불투명하고 개발 당시보다 내수 물량도 대폭 감축해 많은 하청 업체가 생존 위기에 몰렸었다. 당시 여러 언론 매체가 정부에게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는 중소기업들의 절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도 기술 개발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이런 노력은 세상이 바뀌었을 때 빛을 발하는 동인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냉전이 종식되고, 어느 날 갑자기 신냉전이 시작되는 변화가 있었듯이 또 어느 날 갑자기 놀라운 평화의 시대가 와 대대적인 군축의 시대가 재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당연히 그런 변화가 있다면 방산 시장도 크게 변동할 수밖에 없다.

폴란드 수출이 성사되기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제 뉴스로 보도됐을 만큼 K2 전차와 관련된 업체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정도로 사정이 어려웠다. 현재 한국 방산의 상황이 좋다 하더라도 힘들었던 시절을 잊지 말고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중앙일보 캡처

폴란드 수출이 성사되기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제 뉴스로 보도됐을 만큼 K2 전차와 관련된 업체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정도로 사정이 어려웠다. 현재 한국 방산의 상황이 좋다 하더라도 힘들었던 시절을 잊지 말고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중앙일보 캡처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자주국방의 길을 갔던 프랑스의 발걸음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나 풍년에 흉년을 대비하라는 명언처럼,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어려움을 대비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연구와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며 더해서 천궁Ⅱ를 개발해 놓고도 국방부가 앞장서 양산을 방해한 사례처럼 꾸준히 이어가야 할 방산 정책을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바꾸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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