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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범의 이코노믹스] 거래 비용만 늘린 친노조 규제 고쳐야 좋은 일자리 는다

중앙일보

2026.05.21 08:12 2026.05.2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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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규제의 역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우리 노동시장은 좋은 일자리가 필요하다. 실업자가 5년 만에 100만 명을 넘은 올해 1분기 실업자 4명 중 1명이 청년이었다. 지난해 비경제활동 인구 중 일을 하지도 않고 구직 활동을 하지도 않는 ‘쉬었음’ 인구가 역대 최대인 255만5000명을 기록했다. 이 중 대졸 이상은 17만9000명이었다. 전체 일자리 증가를 60세 이상의 취업자가 주도하는 현상이 2023년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 2025년에도 60세 이상 취업자 증가를 빼면 전체 취업자는 줄었다.

원청 사용자성 관련 혼란 키우는
노란봉투법은 보완 입법이 필요

중처법 시행에도 중대재해 늘어
처벌 아닌 기업 참여로 해결해야

대기업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해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 해소해야

노동시장은 다른 시장에 비해 법적 규제가 많고, 규제의 설계에 따라 일자리의 양과 질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규제가 근로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노동시장 기능을 저해하지 않도록 균형 있게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 노동시장에서는 일부 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현장의 거래 비용만 키웠을 뿐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간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노조 교섭 대상 넓게 인정하는 노동위
정부 기조 변화와 노란봉투법 시행 등 제도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지난 정부에서 근절됐던 타워 크레인 기사의 월례비 요구와 소속 노조원 채용을 요구하는 노동단체의 시위 등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시행 초기 한 달 동안 1000개 이상의 노조가 교섭을 요구했지만 실제 교섭에 응한 사용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교섭에 응하지 않는 원청 사업자의 사용자성 판단과 관련해 노동위원회는 대부분 하청 노조의 손을 들어주고 교섭 대상의 인정 범위를 넓게 판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불복해 소송으로 가는 사안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정 분쟁이 상당 기간 지속할 수도 있다. 사용자성 인정과 관련해 노동위원회 판정과 법원 판단 사이의 간극이 생길 수 있어서다. 제도 취지와 별개로 현장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명확한 정부의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부가 제시한 기준만으로 현 상황을 종식할 수는 없다. 노란봉투법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재검토 후 보완 입법을 하는 것이 답이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보다는 산업재해(산재) 사망 사고라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집중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워 거래 비용만 높이고 별 효과를 보지 못하는 대표적인 규제다. 우리나라는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 범위가 모호하고 처벌 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데다 사망 사고 발생 시 경영진 처벌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다.

반면에 우리나라보다 산재가 상당히 적은 영국은 안전관리시스템이 미흡할 경우 법인을 대상으로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며, 양형 기준 또한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독일은 형사 처벌보다 행정 및 보험 중심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 역시 벌금 중심의 제재가 일반적이고 형사 처벌은 고의적이고 중대한 위반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법 시행 후 몇 년 경과하지 않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 특히 중대재해를 줄이는 대안이 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적용 대상이 2024년 50인 이상에서 5∼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됐음에도 중대재해는 오히려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5년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605명으로 2024년보다 16명 증가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사고가 나면 대표가 형사 처벌되기 때문에 기업 현장에서는 안전 개선보다는 산업 안전 컴플라이언스 구축과 매뉴얼 및 문서 정비, 리스크 점검 등 서류 대응이 강조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노무사나 변호사, 전직 공무원, 노조 활동가의 몸값만 올렸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게다가 중대재해 발생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의 대응 역량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 처벌, 모호한 범위에 강도 세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제도 시행 이후 경영 책임자가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중대재해법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면 처벌보다는 산재 발생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과거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건설업에서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했지만 1990년대 이래 재해를 크게 줄였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공기 단축을 중심으로 한 속도 경쟁, 높은 중소기업 비중, 취약한 안전 문화 등 재해 발생의 복합적 요인을 줄이기 위해 다각적이고 총체적인 개선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특히 일본은 공공 공사 발주 방식을 최저가 낙찰 중심에서 종합평가 방식으로 전환해 재해 발생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격 비중을 상대적으로 낮추고 기술 중심 경쟁 구조를 강화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적격심사제 등을 도입했지만 여전히 공공 공사 입찰에서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우리나라도 공공 부문이 선도적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해 민간 부문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확산하도록 해야 한다.

2007년 도입한 비정규직 보호법은 기간제 근로자 남용을 막고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했지만 오히려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기간제 근로자는 533만 7000명으로 2009년보다 2배가량 증가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 하반기 기준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율은 8.6%에 불과하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비정규직 보호법 도입 이전에는 기간제 근로자를 일정 기간 사용한 뒤 역량이나 성과가 우수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기간제 근로자로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지만, 제도 도입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의 역량 개선이나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오히려 줄었다. 또한 고용은 안정되나 처우는 기존의 정규직보다 못한 무기계약직이라는 직군도 만들어졌다. 결국 취업 준비 청년층은 비정규직을 마다하고 몇 년간 일자리 없이 정규직 취업 준비에 매진한다.

이런 문제가 이어지자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 기한 연장 등 제도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기간제 근로자 사용 시한 연장을 시도했지만 노동계 반대로 실패했다. 친노동 성향의 이재명 정부가 비정규직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만큼 이번에는 성사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연장해도 과거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일부에서 제기하는 ‘공정 수당’이나 ‘이직 수당’ 등의 규제는 ‘구직자에게 최적의 일자리, 구인자에게 최고의 인재’를 연계하는 노동시장 기능 제고에는 그다지 도움 되지 않을 것이다.

삼전 노조, 노동시장 파급 효과 도외시
노동시장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정규직과 대기업 종사자 등 1차 노동시장의 평균 급여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등 2차 노동시장의 1.7배지만 1차 노동시장의 취업자 비중은 15.9%에 불과하다. 경쟁국과 비교해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상대적으로 더 크다. 경총에 따르면 우리나라 500인 이상 사업체의 대졸 초임은 일본의 1000인 이상 기업체보다 약 40% 높다. 대기업 대졸 초임의 경우 10~99인 사업체보다 일본은 14.3%, 우리나라는 33.4% 더 많다. 대만과 비교해도 상황은 유사하다.

세전 영업이익의 15%(약 45조원 추정)의 성과급을 요구하면서 파업까지 치달을 뻔했던 삼성전자 노사협상이 잠정 마무리됐다. 회사는 적자 부분에서도 억대의 성과급 지급이 가능한 합의안을 파업을 무기로 한 노조의 압력에 밀려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의 경쟁력이나 삼성전자 협력업체를 포함한 중소기업 전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도외시한 무책임한 노조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노사 간 교섭은 자율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수수방관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노조의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를 비판했지만, 노란봉투법 제정 등 친노조적 정부 정책에 한껏 고무된 노조의 요구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근로자 추정제 도입 중단해야
정부는 ‘규제의 역설’을 야기하는 각종 제도의 부작용을 살펴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의 전면적 개편과 함께 처벌보다는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 중대재해 정책을 추진하고 실효성이 없는 기간제 고용 기간 연장이 아닌 대기업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한 포괄적 조치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기업 노조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지 못하도록 노조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 또한 ‘정치적 편의주의’에 매몰돼 현재 추진 중인 노조회계 공시제도의 실질적인 폐지나 산업 현장을 더욱 혼란으로 몰고 갈 근로자추정제 같은 제도 도입을 중단해야 한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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