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이나 대구·부산에 퍼진 열기에 비하면, 국내 최대 광역자치단체장을 뽑는 경기지사 선거는 화제성 제로(0)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독주하는 중이다. 제1 야당이 무능하고 무력하니 지지율 1위 여당 후보는 목청 높일 일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조용한 선거에도 숨은 관전 포인트가 있다. 얼마 전까지 하남 동서울변전소의 증설을 강력하게 반대하던 추미애 전 하남 갑 국회의원과 경기도 반도체 벨트 사수를 외치는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 간의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라는 점이다.
지난 19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반도체 관련 합동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가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광진구에서만 5선을 한 추 후보는 2024년 22대 총선에서 경기 하남갑에 출마해 6선 의원의 고지를 밟았다. 하남에서의 2년간 그는 짧고도 굵은 족적을 남겼다. 정부와 한국전력이 2017년부터 추진해 온 동해안~수도권 전력망의 마지막 관문 ‘동서울변전소 변환소 증설 공사’를 강력하게 반대해 국가 기간전력망 구축 사업을 중단시킨 기록이다.
280㎞에 이르는 동해안~수도권 구간은 국가 기간전력망 중에서도 중요도 0순위로 꼽힌다. 동해안 발전소에서 생산한 교류 전력을 직류로 변환해 HVDC(초고압 직류) 송전선로를 통해 동서울변전소까지 끌어온 다음, 여기서 다시 교류로 변환해 가정과 산업단지에 공급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전력 소비자는 경기 남부에 집중된 반도체 클러스터 기업들과 경기도민이다. 이들을 위해 한전 직원들이 강원도에서부터 송전선로가 지나는 수십 개의 마을 주민들을 어렵게 설득해 수도권까지 송전로를 확보한 보람도 없이, 종점에서 변환소를 짓지 못한 탓에 공사는 2년 넘게 올스톱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커져 주무부처(기후에너지부) 장관이 주민 간담회도 가졌다지만, 송전선로 여건상 대체 부지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내가 사는 마을에 초고압 송전선로나 송전탑이 들어서는 걸 반길 주민은 많지 않다. 그러니 주민들이 이를 수용할 수 있게 설득하고 조율하는 행정가와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동네는 절대 안 된다는 반대만 부르짖는 방식으론 더 큰 공동체를 얘기하기 어렵다.
동서울변전소 증설 반대 태스크포스 등 경기 하남시민들이 지난해 9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동서울변전소의 초고압 직류변환소 증설 공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그 반대에 앞장섰던 국회의원이 이제 경기도를 반도체 허브로 육성하는 행정가가 되고자 한다면 자기모순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경기도 곳곳에는 하남 주민들처럼 ‘생존권 사수’ 머리띠를 두르고 HVDC 송전선로 통과를 반대하는 지역들이 이미 많다. 경기도의 그 많은 반도체 팹과 산단 기업들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동해안뿐 아니라 서·남해안에서 생산한 전력도 끌어와야 한다. 이 경로가 끊기면 전기를 만들어 놓고도 송배전이 안 돼서 전기를 버려야 하거나, 반도체 팹을 완공하고도 공장을 멈춰야 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변환소 반대 주민들 옆에 섰던 ‘과거의 추미애’를 ‘현재의 추미애’는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정치인의 변심이 뭐 대수냐’ 할 수도 있겠다. 선 자리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것 자체가 무조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입장 변화의 기준은 있어야 한다. 적어도 국가 기간전력망 같은 공동체 전체의 인프라, 반도체 팹처럼 장기간 용수·전력·인재 기반을 조성해야 하는 국가전략산업의 미래, 지역균형 발전과 양극화 해소라는 사회 전체의 과제가 달린 경우라면 찬성에도, 반대에도 신중해야 한다. 수도권 집중 문제를 풀고 싶은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자신이 경쟁 끝에 유치한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를 두고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후회를 비쳤다(2025년 12월). 내 지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일이 그 지역 너머의 공동체에 숙제를 던지게 되는 상황. 이 딜레마를 푸는 게 더 큰 꿈을 꾸는 광역단체장들의 진짜 실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