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삼전·하이닉스 등 5대 기업 수출 비중 44%…반도체 나홀로 질주에 임금도 ‘K양극화’

중앙일보

2026.05.24 02:10 2026.05.24 02:5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한국 경제의 화려한 성적표를 뜯어보면 뻔한 정답이 나온다. 반도체 초호황이다. 반도체가 수출과 생산 증가를 이끌고 있지만, 반도체를 뺀 경기 지표는 여전히 차갑다. 일자리 시장에서도 반도체와 비(非)반도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양극화가 심하다. 반도체에 성장의 과실이 집중되며, 산업·고용·소득 전반에 ‘K자’형 양극화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지난해 10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조성중인 반도체클러스터 단지. 우상조 기자

지난해 10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조성중인 반도체클러스터 단지. 우상조 기자

24일 국가데이터처 통계를 보면 올해 1~3월(1분기) 한국 전체 수출액 2199억 달러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상위 5대 수출기업의 수출액은 957억 달러로 전체의 43.5%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8%포인트 상승하며, 201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개수로는 전체 수출기업 6만7531개 가운데 0.007%에 불과한 5개 기업이 한국 수출의 절반 가까이 채웠다.

수출 호황의 과실도 이들 소수 기업에 집중됐다. 상위 5대 기업의 전년 대비 수출 증가액은 499억6000만 달러로 전체 수출 증가액(603억3000만 달러)의 82.8%를 차지했다. 상위 10대 수출기업 내에서도 쏠림 현상은 심했다. 상위 10대 기업 수출액 가운데 상위 5대 기업 비중은 86.8%로 1년 전보다 8.4%포인트 상승했다.

수출 양극화가 심화한 것은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 영향이 크다. 관세청 집계 결과 올 1~4월 반도체 수출액은 1109억55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6% 치솟았다. 반면 반도체를 제외한 품목의 수출 증가율은 13.3%에 그쳤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36.2%로 전년보다 15.6%포인트 늘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 등 나머지 제조업은 부진하다. 지난 4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73.5% 증가했지만 15대 주력 수출품목 가운데 7개 품목의 수출은 감소했다. 자동차(-5.5%), 자동차부품(-6.0%), 일반기계(-2.6%), 가전(-20.0%), 철강(-11.6%), 이차전지(-6.5%) 등이 대표적이다. 고환율(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과 중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 전 세계적인 수요 둔화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생산 현장에서도 반도체와 비반도체 간의 격차는 뚜렷하다. 국가데이터처 산업활동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제조업 생산은 전 분기 대비 3.0% 증가했다. 반도체 생산이 14.1% 늘며 2023년 2분기(19.0%)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결과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 증가율은 0.2%에 그쳤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자본집약 산업이다. 고용 유발 등 낙수효과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생산액 10억원이 증가할 때 발생하는 취업자 수는 반도체 산업이 2.1명으로 전체 제조업 평균(6.2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최근 보고서에서 “반도체 산업은 자본집약적 업종으로 매출 증가에 비해 고용 창출 효과가 낮아 반도체가 견인하는 거시경제 지표와 가계가 체감하는 경기 사이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산업 내부에서도 K자형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 지난해 반도체가 포함된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의 상용직 근로자 월평균 임금총액은 745만9815원으로 집계됐다. 임시·일용직 근로자(268만8670원)의 2.77배에 달했다.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격차다. 이 차이는 2023년 이후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차이 뚜렷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 상용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942만원으로, 300인 미만 사업장(450만원)의 두 배를 웃돌았다. 24년 1.9배였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반도체에 국한하지 않고 전체 산업으로 봐도 노동시장 임금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산업 정규직 근로자의 월 임금총액은 평균 457만원으로 비정규직(192만원)보다 265만원 많았다. 시간당 임금총액 역시 정규직은 2만8599원, 비정규직은 1만8635원으로 9964원 차이를 기록했다. 격차는 2020년 5716원에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대규모 성과급이 지급될 경우 임금 차이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만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동안 노동자가 많이 종사하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생산성과 부가가치 증가가 제한돼 임금 상승 여력도 크지 않다”며 “반도체 호황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반도체 밖 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이 정체된 구조가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AI 투자 둔화 등 외부 충격에 대한 경제 전반의 취약성도 커질 수 있다. 핀란드는 한때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노키아가 국가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를 이끌었지만, 스마트폰 전환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으며 수출과 고용이 동시에 위축된 경험이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산업은 통상 2~3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만큼 호황기에 발생한 초과 세수를 기금 형태로 적립해 불황기에도 연구개발(R&D) 투자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반도체 이후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바이오와 양자기술 등 아직 수익이 나지 않는 미래 산업에 장기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산업 구조의 편중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