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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인의 중국 과학기술 굴기] 미국과 중국이 은밀하게 논의하는 첨단기술 질서

중앙일보

2026.05.2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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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인 한양대 교수

백서인 한양대 교수

지난 13일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 바로 뒤를 따른 것은 국무장관도 재무장관도 아닌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의 팀 쿡, 그리고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경제사절단이 무색하게 정상회담의 결과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미·중 양측 공식 발표문을 비교해보면, 트럼프가 선언한 보잉 200대 구매 합의와 희토류 공급 우려 해소는 중국 발표문엔 없었다. 뜨거운 감자였던 H200 중국 판매 승인, 인공지능(AI) 거버넌스와 안전도 이렇다 할 합의가 없었다. 우리 언론의 관심은 미·중 양국의 위상 변화였지만, 필자는 이들이 말하지 않은 새로운 첨단기술 의제에 더 큰 관심이 간다. 연내에 예정된 세 차례의 회담에서 미·중 양국은 어떻게 새로운 기술질서를 구축할 것인가. 마침 기술혁신학회 참석을 위해 베이징에 와 있던 나는 미·중 정상회담의 여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문자답을 해봤다.

회담 후 트럼프 “통제 규칙” 언급
첨단 AI 미보유국의 접근 막는
AI 기술 기득권 대못 박을 우려
양국 리·디커플링 모두 대비를

9년 만에 방중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이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9년 만에 방중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이 지난 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인공지능 통제규칙, 새로운 NPT 될까
첫째, 미·중이 주도하는 글로벌 AI 거버넌스가 새로운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길 기내에서 “AI 가드레일(통제 규칙)에서도 함께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또한 회담 이후인 19일 중국 외교부는 미·중 양국이 AI와 관련한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중 양국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자국 빅테크의 성장을 제약할 수 있는 규제에는 일관되게 공통의 거부감을 표현해 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이 대등해지는 현시점에서 AI 양강이 주도하는 AI 거버넌스 논의가 본격화한다면, 기본적으로 가장 앞선 기술력을 현실에 많이 적용해 보는 것이 곧 인류 발전에 이로운 것이라는 논리가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프런티어 AI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에 새로운 기술주권의 경계선이 보다 선명하게 그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NPT가 그랬다. ‘이미 핵을 가진 나라는 기득권을 유지하되, 나머지 국가들은 앞으로 절대 핵을 개발하지 말라’는 강력한 선 긋기다.

둘째, 미국의 사이버 시스템과 중국의 피지컬 시스템은 결국 연결될까. 미·중 무역마찰과 전략 경쟁이 지속된 지난 9년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은 전방위적인 공급망 조정을 추진했다. 미국에 공장을 짓고, 제3국으로 기지를 이동하고, 중국 의존도를 낮추며 회복력 높은 공급망 구축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자율주행·전기차·휴머노이드로봇 등 첨단 산업에 가까운 영역일수록 오히려 중국의 하드웨어 생태계의 경쟁력이 빛을 보고 있다. 테슬라와 피규어의 휴머노이드를 수십만 대 규모로 양산할 수 있는 공급망과 생태계를 보유한 것은 결국 중국이다. 이미 수많은 미국의 빅테크·벤처캐피탈·대학은 선전(深圳)에 머물며 현지 데이터를 활용해서 그들의 아이디어(Lab)를 공장에서 제품화하고(Fab), 생활 속에서(Home) 작동시키는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셋째, 미국과 중국 간 풀스텍(full-stack) 인프라 빅딜이 일어날 것인가. AI가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핵심적이다. 통신과 에너지가 그 양대 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차세대 통신기술 측면에서 중국은 이미 세계 최고의 칩 간 초고속 광통신 기술, 데이터센터 간 광 전송 기술을 확보했다.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ESS)·친환경에너지 기술에서 중국의 경쟁력은 압도적이다. 미국이 이미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처진 통신과 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선제적으로 미·중 투자 협력 위원회를 통해 대규모 대미 투자와 기술 이전을 제안한다면 미국 입장에서 거절할 수 있을까. 중국 본토 데이터센터의 잉여 토큰은 미국으로 수출되고, 빅테크의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친환경에너지 기술은 중국이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넷째, 미·중 바이오 디커플링(decoupling)이 현실화 될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바이오보안법에 사인하며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중국 바이오 기업의 기술·제품·서비스에 대한 사용 금지를 예고했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대형 제약사의 신약후보 물질의 30%가 중국에서 나오고, 세계 신규 임상시험의 40%가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중국 기업과 연구소·대학들은 바이오에 AI를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바이오 혁신의 테스트 베드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의 베이징·상하이·장수성의 외국자본 R&D 센터 대다수가 미국과 유럽의 바이오 제약기업들인데, 이는 중국 바이오산업의 잠재력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미국의 바이오보안법이 2028년 실행단계에서 과연 자국 바이오기업을 또 다른 엔비디아로 만들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급변하는 기술 질서 속 찾아야 할 기회
앞으로 진행될 미·중 회담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관세 협상이나 상호 투자 확대가 아니다.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차세대 프런티어 기술 분야에서 미·중이 어떻게 레드라인을 설정하고 각자의 역할과 이익을 나눌 것인지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어디까지 어떤 형태로 리커플링(recoupling) 될 것이며, 그때 우리는 어디에 어떤 형태로 위치할 것인지에 대한 답안을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그들이 설계한 새로운 기술 질서 안에서 우리의 자리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의 기술주권 강화는 특정 국가와의 철저한 단절 또는 줄서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중이 주도하는 글로벌 기술질서 변화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분석, 그리고 유연하고 전략적인 실행에 기초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미국과 소련의 주도로 1970년 발효된 국제 안보조약.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기존 5개국 외에 다른 국가의 핵 보유를 금지해 기득권을 고착화했다. 우리나라는 1975년 비핵보유국 지위를 가진 정식 비준국이 됐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보장받는 대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상시 사찰을 받는 등의 조약상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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