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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대법관 공백 해소에 지혜 발휘해야

중앙일보

2026.05.24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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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 사회부 기자

박현준 사회부 기자

헌법 104조는 대법관의 임명 절차를 극히 압축된 언어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은 이 짧은 문장 속에서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적 정당성의 긴장을 드러낸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의 대립이 그 축이다. 그러면서도 두 권한이 타협하고 조화하라는 모순적 과제를 우리 헌법은 요구한다.

두 권한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현실에서는 법원행정처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물밑 조율을 벌인다. 양측이 비슷한 기조라면 대법관 임명이 매끄럽다. 그러나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성향이 다르면 마찰의 열기가 피어오른다. “제청권은 대법원장 고유 권한”(사법부), “대통령 임명권 내에서 제청권이 인정될 뿐”(청와대)이라는 논리가 첨예하게 맞선다. 최종영 대법원장과 노무현 대통령, 이용훈 대법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대법관 임명을 두고 갈등한 일화는 지금도 입에 오르내린다.

그럼에도 노골적 충돌은 거의 없었다. 협상의 끈을 놓치지 않고, 막판에 한 발짝씩 물러서는 법을 알았다. 타협 끝에 대법관 제청 대상자가 바뀌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절제와 책임감을 알던 시절이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법관 사회에선 대법관 후보군이 대체로 알려져 있다. 판결 능력은 기본이고, 인품과 조직 내 평판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학회에도 얼굴을 비치고 논문도 발표해야 한다. 경쟁 법관끼리 감정이 상해 “육탄전 직전까지 갔다”는 소문도 왕왕 들린다. 법관 생활 전부를 바치고도 되기 어려운 게 대법관이다.

정치 바람을 타고 운 좋게 되는 대법관도 있다. 이런 대법관은 끝이 좋지 못했다. 막대한 업무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덕이다가 소리소문없이 물러났다. 법관들은 그를 사석에서 놀림감으로 거론했다. 역대 대법원장들이 결국 실력을 대법관 제청의 기준으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3월 노태악 전 대법관의 퇴임 이후 빈자리를 아직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9월에는 이흥구 대법관도 퇴임한다.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인선 기준 충돌이 근본 원인이라는 말이 법조계에서 파다하다. 걸핏하면 대법원장 탄핵을 입에 담던 여당이 대법관 공석에 침묵하는 모습은 묘하다.

대법관 공백은 단순한 인사 지연이 아니다. 사법부와 정치권력의 균형을 지탱하던 절제의 지혜가 퇴색하고 있다는, 서글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징후다.





박현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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