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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소비자 식탁에 당당히 놓인 트럼프의 ‘관세 청구서’

중앙일보

2026.05.2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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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화 워싱턴 특파원

강태화 워싱턴 특파원

‘관세 비용 10%’. 미국 워싱턴의 한 일식당 메뉴판에 이런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일본계 주인은 서툰 영어로 “관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연신 “스미마셍”이란 말을 반복했다.

동석한 경제 전문가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했다. 그는 ‘관세를 미국의 부를 약탈했던 국가들이 부담할 거’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진행되는 관세 환급으로 누가 돈을 버는지 지켜보라고 했다.

지난 2월 대법원이 상호관세를 불법이라고 결론 낸 이후 관세 환급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이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불법 관세’ 때문에 추가로 지불했던 돈이다. 그런데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온 환급금을 기업의 ‘뜻밖의 이익’이라고 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아예 “소비자들은 이 돈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 워싱턴의 한 식당 메뉴판에 ‘관세 비용 10%’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강태화 특파원

미국 워싱턴의 한 식당 메뉴판에 ‘관세 비용 10%’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강태화 특파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불법임을 알고 부과한 관세는 소비자를 속여 기업에 돈을 안겨주는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10% 글로벌 관세는 물론 이후 부과할 관세도 불법이 될 것이고, 판결 이후 또다시 미국인을 착취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트럼프는 이란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과 관련 ‘미국인의 재정 상황이 협상의 요인이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건 이란이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의 핵보유를 막기 위해 미국인의 ‘작은 희생’을 감수하고 내린 결단이었다는 주장. 그러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가는 곤란하다.

트럼프는 전쟁 초기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유가가 오르자 “미국 기업이 큰돈을 벌 것”이라며 오히려 반겼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그를 지원했던 글로벌 정유사들은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상당 부분은 소비자들이 추가로 지불한 돈이다. 정유사들은 휘발유 가격을 원유 선물에 연동해 올리면서 갤런(약 4.54L)당 2달러 후반이던 휘발유 평균가는 4.5달러를 넘어섰다.

투자사들은 11월 선거 전까지 ‘트럼프의 쇼타임’이 본격화할 거라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악화한 여론을 뒤집기 위해 월드컵 등 소비 특수를 활용한 증시 부양의 ‘착시 효과’를 낼 거란 전망이다. 그러나 인위적 단기 부양책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 등 ‘미래의 청구서’로 되돌아오게 돼 있다. 다만 해당 청구서는 재선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트럼프가 아닌 차기 대통령의 백악관 ‘결단의 책상’ 위에 놓여질 가능성이 크다.





강태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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