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세 번째 셔틀외교(2025년 10월 경주, 2026년 1월 나라현, 5월 안동)가 지난주 성료했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귀국 후 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온천 얘기를 나눈 점을 거론하면서 다음번 한·일 정상회담 개최지로 “온천과 노래방이 있는 료칸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2023년 5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간에 12년 만에 재개된 한·일 셔틀외교는 지난 3년간 모두 여섯 차례 진행됐는데 한·일 관계는 역대 최상의 수준이란 평가가 나온다.
EAI 조사, “강화해야”가 76%
북·중 위협, 미 신뢰 저하가 원인
“전략 파트너로서 일본 재평가”
‘아시아판 나토’ 창설 목소리도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카이치 호감도, 미국 지도자 첫 추월
실제 아산정책연구원의 지난 2월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의 대일본 호감도는 지난해 4.52점에서 5.11점으로 상승했다. 연례조사를 한 2010년 이후 최고치다. 다카이치 총리 개인에 대한 호감도도 눈길을 끈다. 10점 만점에 3.24점으로, 중국(시진핑 국가주석·2.29점), 북한(김정은 국무위원장·1.45점), 러시아(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1.79점) 정상보다 높은 것은 물론 조사 후 처음으로 일본 지도자가 미국 지도자(도널드 트럼프 대통령·2.91점)를 능가했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헌법 개정 등을 통한 ‘전쟁가능국가’로의 전환 등 과거 한·일 관계 발전의 발목을 잡아온 요인에 변화가 없는데도 양국 관계가 급격히 호전하고 있다. 배경은 뭘까.
김영희 디자이너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2025년 한국인 일본 방문객 1000만 명 시대를 맞아 민간 차원의 인적 교류가 대일 호감도를 높인 핵심 요인이다. 2025년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조사에서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에게 이유(2순위까지 중복 투표)를 물은 결과 ‘친절하고 성실한 국민성’(46.6%)과 ‘매력적인 식문화와 쇼핑’(31.7%) 때문이라고 답했다.
“미, 대만에 무기 안 팔면 우려 커질 것”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키우는 외교·안보적 변수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의 노골적인 핵 위협과 중국의 인도·태평양 영향력 확대 움직임에 따른 안보 불안감이 한·일 관계 강화에 동력이 되고 있다. EAI 조사에 따르면 한·미·일 3각 군사안보협력에 대해 응답자의 78.8%가 긍정적이었다. 2023년 조사(60.6%)보다 18.2%포인트가 높아졌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일본의 한반도 군사개입을 우려해 과거 한국민의 반감이 컸던 한·일 안보 협력에 대해서도 75.5%가 “현재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북한과 중국을 안보 위협으로 보는 응답자는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에 비해 지지도가 각각 16.4%포인트, 5.2%포인트 높았다.
한·일 관계가 최악이었던 문재인 정부 당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찬성 여론이 훨씬 높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은 시점에 한·일 합동 군사훈련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흐름이다. 정상미 외교안보연구소 연구원은 “북한과 중국의 안보 위협이 전략적 파트너로서 일본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맹 경시 움직임과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신뢰 저하 역시 한·일 관계 강화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공히 미국의 통상·안보 분야의 현상 변경 요구에 시달려왔다. 대중국 견제를 본토 방어 수준으로 하겠다는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와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중 정상회담 직후 대만 무기 판매 문제를 중국과의 ‘협상 칩’으로 쓸 수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는가 하면, ‘전략적 유연성’ 방침에 따라 이란전쟁에 주한 및 주일미군 전력을 차출했다. 주한미군은 사드(THAAD) 체계 일부, 주일미군은 강습상륙함과 소속 해병 원정부대를 각각 중동에 보낸 것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최근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승인하지 않으면 호주, 필리핀, 일본, 한국 등 모든 동맹이 ‘그가 대만을 버리면 우리도 버릴 수 있다’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미국의 신뢰도 저하는 한·일의 안보 불안감을 자극했고, 자연스럽게 양국 간 협력 공간을 넓히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격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양국은 전략적 협력이 필수라는 판단을 공유하고 있다”며 “미국이 인도·태평양에 대한 개입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도 두 나라의 공통점”이라고 평가했다.
‘제재받아도 핵무장’, 찬성이 63% 아산연 조사에 따르면 한국민의 주한미군 주둔 지지 여론(82.3%)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 안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가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자는 64%로 2025년보다 10.4% 포인트 떨어졌다. 동시에 한국의 자체 핵무장 지지는 80%까지 치솟았다. 심지어 ‘국제사회의 제재’(63.0% vs 27.4%)와 ‘주한미군 철수’(52.2% vs 34.9%)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절반을 훌쩍 넘겼다. 미국 핵무기 재배치 찬성 여론도 60.4%에 달했다.
김영옥 기자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총리는 지난달 국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자신의 지론인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주창했다. 냉전 시대 바르샤바조약기구(WTO)를 연상시키는 최근 북·중·러의 연대 강화 움직임에 대응해 이제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이 참여하는 집단 안보체제인 인도·태평양조약기구(IPTO)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미 일본은 호주, 필리핀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일 셔틀외교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아시아판 나토’ 출범도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