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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칼럼] 드골과 트럼프, 지성과 반(反)지성

중앙일보

2026.05.2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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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언론인, 조갑제닷컴·TV 대표

조갑제 언론인, 조갑제닷컴·TV 대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가장 친했고, 미국 보수층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녔던 터커 칼슨(전 폭스뉴스 진행자) 기자는 이란전쟁 이후 가장 심한 비판자로 돌변했다.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장시간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에 의해 장악돼 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의해 노예처럼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는 경우”라고 폭로했다.

그는 최근 1년간 트럼프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극구 말렸지만 실패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나는 트럼프가 주권 국가의 의사 결정자가 아니라 (네타냐후의) 인질이란 강한 인상을 갖게 됐다”고까지 말했다. 지난 부활절에 트럼프가 SNS를 통해 “하나의 문명 전체가 오늘 사라질 것이고, 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빌어먹을 놈들아, 당장 해협을 열어라. 너희들은 지옥에 갈 것이다. 알라에게 기도나 해라”고 욕설을 한 것에 특히 격분했다고 말했다.

건국 기준으로 미국의 문명은 250년, 이란 문명은 2600년이다. 이란인은 그 시기 페르시아, 파르티아 등 세계적 대제국 다섯 개를 만들었다. 이란 문명은 사막 종교 이슬람을 고급 종교로 승격시켰고, 이란의 문학과 예술과 건축은 중앙아시아, 중동, 인도 대륙을 석권했다. 넓이와 인구 면에서 세계 최대이던 원(元)과 인도의 무굴(몽골의 이란어 표기)제국 핵심 관료층은 교양 있는 이란인들이었다. 이란인들은 8세기 통일신라에도 들어왔고(원성왕릉의 무인상), 코리아(Korea) 이전에 신라(Shila)를 세계에 알린 이들이다. 네타냐후의 레짐 체인지 망상에 넘어간 트럼프가 문명 파괴자의 심리, 즉 야수의 마음으로 공격한 것은 이란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페르시아 문명이었고 그래서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드골 케네디에 월남전 말려
지압 장군 “전쟁, 수학 아니다”
“트럼프는 네타냐후의 인질”
미국과 이란은 문명 전쟁 중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이 1970년에 죽고 나서 나온 두 번째 회고록은 『희망의 회고: 재생과 노력』이다. 이 책에는 1961년 5월 31일 프랑스를 방문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드골은 케네디가 월남에 군사적 개입을 할 것이며, 이는 인도차이나에서 소련의 팽창을 막으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하자 이렇게 말렸다고 적었다.

“미국이 이 지역에 개입하면 끝도 없는 수렁에 빠질 것임을 곧 알게 될 겁니다. 민족 전체가 궐기하면 어떤 외세도, 아무리 강력해도, 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귀하가 (반공) 이념을 내세워도 소용이 없을 겁니다. 민중의 눈에는 그 이념이란 것도 미국의 권력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비쳐질 겁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더욱 더 민족 독립의 챔피언으로 보여질 것이며, 그들은 절망한 이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게 될 겁니다. 미국이 아무리 많은 인력과 돈을 부어 넣든 바닥을 모르는 군사적, 정치적 수렁으로 차츰 빠져들게 될 것임을 예언할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케네디는 드골의 말을 경청했지만 그 뒤의 사태 전개는 드골의 예언대로 흘러갔다. 14년 뒤 미국은 철수하고 월남은 공산화됐다. 미국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통일된 월남은 소련이나 중국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하노이의 북쪽 산속 휴양소에서 요양 중이던 월남전 지휘자 보 구엔 지압 장군을 만난 것은 1996년 7월 26일이었다. 84세이던 그는 군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해, 월남전 때의 미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월남을 방문해 적장(敵將)이었던 지압 장군을 만났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었느냐고 물었더니 “월남의 역사와 민족에 대한 연구 없이 전쟁에 빠져든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소국이 강대국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항상 있다”고 덧붙였다.

“호찌민 선생이 강조한 것처럼 인민의 마음을 단결시킬 수만 있다면….” 헤어질 때 건강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오래 남는 대답을 했다. “매일 아침에 체조를 하는 것과 항상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전우(戰友) 걱정을 늘 한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지압은 1969년 2월 이탈리아의 인터뷰 전문기자 올리아나 팔라치에게 드골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산수(算數) 같은 전략은 여기서 먹히지 않습니다. 미군은 달러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인민의 정신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군인의 머릿수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전(全) 인민이 미국과 싸우는 전쟁입니다. 모든 인민이 들고 일어났을 때는 이길 방법이 없는 겁니다.”

이란은 수십 만 명이 죽을 각오가 돼 있지만 트럼프는 미군이 1000명만 전사해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전(前) 미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는 “앞으로 아시아에 육군을 보내자는 장군이 나온다면 정신 감정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민족 전체가 일어나면 어떤 강대국도 이길 수 없다”는 충고를 들었어야 할 또 다른 대통령은 러시아에 있다.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았지만 냉전 승리의 기틀을 놓은 해리 S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갖추어야 할 제1 덕목을 ‘역사적 교양’이라고 했었다. 대통령은 역사와 마주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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