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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로마황제처럼 무릎 꿇었다”…종전MOU에 “승리” 외친 이란

중앙일보

2026.05.24 22:21 2026.05.24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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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이란 테헤란에 ‘이란 역사 영웅을 기리며’란 문구와 함께 두 인물이 미국 항공모함 등을 막는 듯한 그림이 걸려 있다. 왼쪽은 지난 3월 26일 호르무즈해협 봉쇄 작전 중 이스라엘 공습에 숨진 알리레자 탕시리 이슬람혁명수비대 해군 사령관이다. 오른쪽은 1915년 영국군과 싸우다 사망한 민족 영웅 라이스 알리 델바리.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7일 이란 테헤란에 ‘이란 역사 영웅을 기리며’란 문구와 함께 두 인물이 미국 항공모함 등을 막는 듯한 그림이 걸려 있다. 왼쪽은 지난 3월 26일 호르무즈해협 봉쇄 작전 중 이스라엘 공습에 숨진 알리레자 탕시리 이슬람혁명수비대 해군 사령관이다. 오른쪽은 1915년 영국군과 싸우다 사망한 민족 영웅 라이스 알리 델바리.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이 미국과 체결이 임박한 종전 합의안 양해각서(MOU)를 자신들의 승리로 포장하고 나섰다. 과거 페르시아 황제 앞에 로마 황제가 굴복한 것을 기념한 고대 유적 사진을 올리면서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 ‘샤푸르 1세의 낙쉐로스탐 승리 부조’와 이란 지도를 합성한 사진을 올리면서 “로마인들의 생각에 로마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란인들은 그 환상을 산산조각냈다”고 적었다.


해당 부조는 페르시아 제국 수도이던 페르세폴리스 인근 낙쉐로스탐 유적지 바위벽에 새겨진 것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황제 샤푸르 1세가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 필리푸스 아라부스, 발레리아누스를 제압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고르디아누스 3세가 페르시아를 침공했다 전사하자, 수행 근위대장 필리푸스 아라부스는 급히 거액의 배상금을 내고 페르시아와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후 그는 로마로 돌아가 황제가 됐다.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발레리아누스는 페르시아를 다시 공격했다가 페르시아군에 생포됐다.

부조는 이런 역사를 담았다. 고르디아누스 3세는 쓰러져서 샤푸르 1세의 말발굽에 깔려있고, 발레리아누스는 손목이 붙들려 끌려가는 모습으로 각각 묘사돼 있다. 필리푸스 아라부스는 무릎을 꿇고 있다.


에스마일 바가에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23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 올린 그림. 사산조 페르시아 황제에 굴복한 로마 황제들의 모습을 담은 고대 부조와 이란 지도를 합성한 것이다. X 캡처

에스마일 바가에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23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 올린 그림. 사산조 페르시아 황제에 굴복한 로마 황제들의 모습을 담은 고대 부조와 이란 지도를 합성한 것이다. X 캡처

바가이 대변인은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필리푸스 아라부스)가 페르시아를 향해 동쪽으로 진군했을 때, 그 원정은 로마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산조 페르시아의 조건에 따라 수립된 평화로 끝을 맺었다. 로마 황제는 조건을 수용해야만 했다!”고 썼다.


바가이 대변인의 글은 이란이 미국과 논의 중인 종전 합의 조건을 ‘승리’로 포장하려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페르시아가 세상의 중심을 자신들로 여긴 로마를 압도한 것처럼, 이란 역시 미국에 본때를 보여줬다고 주장한다는 얘기다. 미국과 이란은 휴전을 60일 연장하고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한 뒤 이 기간 이란 핵 문제와 대(對)이란 제재 해제를 협상하는 내용의 MOU 체결을 논의 중이다.

중동 전문 매체 암와즈의 모하마드 알리 샤바니 편집장은 “승리를 주장하는 것이 미국보다 이란 입장에서 더 쉽다”면서도 “이란이 새로운 자신감을 가질만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고 평가했다. 엘리게란 마예 유럽외교협회(ECFR) 부국장은 “이란은 약자(언더독)이면서도 두 개의 핵무장 국가(미국과 이스라엘)와 맞설 수 있다는 점을 국내와 역내 국가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 “핵 못 막고 이란 경제 숨통만 틔워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4일(현지시간) X에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 국기 앞에서 단호한 표정을 짓는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를 게시했다. X 캡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4일(현지시간) X에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 국기 앞에서 단호한 표정을 짓는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를 게시했다. X 캡처

미국과 이란의 협상 타결이 임박함에 따라 중동 지역 국가들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우선적으로 풀고 이란 핵 프로그램 문제 해결은 뒤로 미루는 형태로 MOU 체결이 논의되는 걸 우려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이란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 하면서 이란에 대한 경제·군사적 압박만 완화하는 꼴이 될 수 있어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러한 우려를 의식한 듯 24일 X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내 정책도 변함없다. 이란은 결코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 할 것”이라며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 국기 앞에서 단호한 표정을 짓는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를 게시했다.




걸프국 “이란, 더 대담해질 것”

지난 4일 이란 반다르아바스 인근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선박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일 이란 반다르아바스 인근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선박들. 로이터=연합뉴스

걸프 지역 국가들도 불안감이 크다. 이들 국가는 일단 이번 합의를 통해 이란이 자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추가 공격을 막고, 석유 수출이 재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향후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자국 통제하에 두고, 향후 갈등이 발생하면 협상 카드로 자신들을 향한 군사적 위협을 활용할 거란 점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HA 헬리어 선임연구원은 “이란은 이번 전쟁을 통해 호르무즈해협을 공식 협상 카드로 인정받았다”며 “아랍 국가들은 이번 합의가 이란을 더 대담하게 만들고 그에 따라 중동 지역 질서에 더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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