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에서 삼성전자로 옮겨붙은 ‘영업이익 N%’ 성과급 논란이 국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대만 TSMC 직원들 사이에서 삼성전자를 ‘롤모델’로 파업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발 수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아 역대급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투자 확대와 이익 분배를 둘러싼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5일 대만 자유시보·중시전자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TSMC 내부에서는 오는 7월 지급될 2025년 연간 성과급의 1인당 수령액이 당초 예상보다 최대 15%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사회가 해외 투자 재원 확보를 이유로 성과급 지급 총액을 삭감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다. TSMC는 AI 확산에 따라 반도체 공급난이 지속할 것으로 보고, 올해 설비 투자 규모를 560억 달러(약 84조8000억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TSMC는 투자 규모, 주주 배당, 직원 보상 규모 등을 모두 이사회가 결정한다. 올해 2월 TSMC 이사회는 2025년도 성과급 규모를 영업이익의 10.6%에 해당하는 2061억4592만 대만달러(약 9조9600억원)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현지 언론은 대만 내 TSMC 직원 수(약 7만8000명)를 기준으로 1인당 약 264만2800대만달러(약 1억2800만원)의 성과급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주원 기자
TSMC 직원들은 지난해 분기마다 영업이익의 5% 안팎을 현금으로 받았는데, 이사회에서 성과급 총액이 결정된 만큼 이미 받은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오는 7월 받게 된다.
TSMC 직원들은 회사가 역대급 실적에도 보상을 축소하려 한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올해 1분기 TSMC는 매출 1조1341억 대만달러(약 54조8000억원), 순이익은 5724억8000만 대만달러(약 27조66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35.1%, 순이익은 58.3% 늘었다.
이들은 특히 회사의 성과급 지급 방식이 ‘깜깜이’라고 비판했다. TSMC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달리 1인당 성과급 규모를 밝히지 않기 때문에 지급 시점 기준 직원 수, 부서별 성과 지표 등에 따라 실제 수령액이 달라진다. TSMC 내부에서는 지난해 회사가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하면서 기존 임직원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들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회사가 오는 7월 성과급 정산을 앞두고 부서별 평가 지표와 개인별 성과 등급을 엄격하게 강화해 개별 성과급 지급분을 10~15%씩 줄이려 한다고 예측하고 있다.
TSMC 한 직원은 대만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서 창업자 장중머우(張忠謀)의 5대 경영철학 중 ‘신(信·믿음)’을 언급하며 “(약속된 성과급을) 바꾸고 싶다고 바꾸는 게, 그동안 회사가 하던 내부 관리 방식과 똑같다. 신의(信義)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작성자는 “직원들은 전전긍긍하며 목숨 바쳐 일하는데 성과급을 깎아 주주들 주머니를 채워주려는 것이냐”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한국 노조의 사측과 담판을 가리키며 ‘K파업’을 따라 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TSMC 직원들은 사내 게시판에 삼성전자 노조의 임금협상 찬반 투표 종료일(5월 27일)을 거론하며 “27일에 진실이 드러난다” “우리는 노조조차 없다” “이제 파업해야 할 때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TSMC는 창업자의 원칙에 따라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왔다.
논란이 거세지자 이날 오후 TSMC는 공식 입장을 통해 “임직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며 “성과급 증가 규모가 지난해를 넘어설 것으로 확신한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직원 보상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TSMC는 매년 글로벌 경쟁사의 임금 수준을 비교해 보상 전략을 수립한다”며 “국내 반도체 업계의 파격적인 보상이 글로벌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