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드크루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가 21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예상치 못한 상황 변화가 있을 수 있고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협력해 나갈 것이다.(definitely would want to engage)”
유엔 산하 최대 개발 협력 기구인 유엔개발계획(UNDP) 수장이 평양사무소 재개 등 북한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해 12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방한한 알렉산더 드 크루 UNDP 총재는 지난 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활동할 제반 여건이 조성된다면 사업을 재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UNDP는 1981년부터 북한에서 농업, 에너지 분야 개발지원 사업을 이어오다 2007년 대북 개발 지원 자금 전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전면 중단됐다. 이후 UNDP 집행이사회는 2년 뒤 북한에서의 활동 재개를 승인하는 결정문을 채택하고 평양사무소를 다시 열었지만, 2020년 북한이 코로나19로 국경을 전면 봉쇄하면서 사업은 멈춰 섰다.
드 크루 총재는 “북한 사무소가 있었으나 (북한 측으로부터) 직원들을 철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만약 (북한 측이) UNDP를 다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평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 등 상황이 달라진다면 북한에 대한 지원을 재개할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드 크루 총재는 “북한 사무소 재개에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질문이 남아 있다” 며 “집행이사회의 승인과 관련 사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의사가 있는 공여국 확보 등이 우선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또 드 크루 총재는 한국에 대해 “가장 빈곤한 수원국(受援國)에서 UNDP의 공여국(供與國)으로 우뚝 선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라며 “UNDP를 포함한 국제개발협력 공동체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 선도 주자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지난 21일 인터뷰에 앞서 한국과 국제기구 9곳이 참여하는 글로벌 AI허브 비전 선포식에 참석한 드 크루 총재는 “한국과 UNDP 간의 오랜 협력 관계가 지속하길 기대한다”며 “글로벌 AI 허브의 출범이 추진력을 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알렉산더 드크루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가 21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Q : 올해로 한국에 사무소를 낸 지 60주년이다.
A : 1966년 UNDP 서울 사무소가 세워지고 농촌 개발, 수자원 관리, 산업 개발,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을 지원해 왔다. 2009년까지 20개 영역에 걸쳐 27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지원했는데 그동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면서 원조 공여국으로 탈바꿈했다. 공적개발원조(ODA)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최초의 사례였다. 한국과 UNDP는 현재 위기 국가들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시작한 리바이브(REVIVE)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무력 분쟁, 자연재해 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조기 회복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Q : 리바이브 사업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A : 인도적 지원과 개발, 평화를 연계하는 HDP Nexus를 한국식으로 실행하는 개념이다. 특히 국내 실향민(IDP) 등 취약계층의 회복과 자립을 돕는 데 초점을 둔다. 팔레스타인(가자지구), 시리아,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콩고민주공화국에 거주하는 약 354만 명이 대상이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서 폭격 잔해를 제거하고 고형 폐기물 처리를 지원하는 한편 병원, 학교, 행정시설 등 공동체 인프라를 재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식수 공급망 복구를 위한 펌프장 설비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는 태양광 전기 시스템 및 상하수도 시설을 갖춘 조립식 주택, 목제 텐트 등 보다 안전한 임시 주거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잔해를 제거하는 데에만 최소 7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Q : 사업을 확장할 것인지
A : 최근 시리아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리고 있다. EU가 시리아와의 협력 협정을 전면 재개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재건을 위한 개발 협력 투자에 숨통이 트인 것인데 인도적 지원과 개발을 연계하는 한국의 협력사업이 변화를 끌어내는 데 상당 부분 도움이 됐다. 오는 6월 리바이브 1차 사업이 끝나고 7월에 2차 사업이 시작된다. 한국과의 사업 범위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Q : 유엔기구에 대한 재정 지원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인도적 지원과 개발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지만, 공적 분야의 개발 재원은 지난 2년간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전 세계적으로 유엔기구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UNDP에 대한 전체 기여금이 2024년 1억8400만 달러(약 2796억원)에서 지난해 6700만 달러(약 1018억원)로 대폭 줄었다. 정규 재원 분담금은 2년째 책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민간 부문이 개발 의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 재정적 제약이 이어지는 가운데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UNDP의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 프로젝트를 선별적으로, 효율적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Q : 글로벌 AI 허브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A : 국제기구의 AI 기능을 통합하고 인프라와 역량을 공유하는 건 중요하다. 그러한 범지구적 AI 협력 플랫폼이 한국에 만들어진다는 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UNDP로서도 AI를 어떻게 안전하고 책임 있게 개발하고 사용할지에 관한 국제규범과 정책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한국과 UNDP 간 새로운 협력의 장이 열리게 될 수 있다. 앞으로 한국과 UNDP가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도 기대할 수 있다.
Q :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A : 안보의 제1방어선은 군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개발이다. 빈곤을 방치하고 불평등을 외면하는 건 불안정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개발과 안보는 서로 다른 의제가 아니다. 개발은 단순히 원조를 제공하는 시혜적 행위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안정을 위한 가장 확실한 예방적 투자다. 보건, 교육, 그리고 회복력 있는 경제를 구축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알렉산더 드 크루 총재
알렉산더 더 크루 총재는 벨기에의 기업인 출신 정치인으로 2020년 10월부터 2025년 2월까지 벨기에 총리를 지냈다. 재임 기간 코로나19 팬더믹 상황에서의 위기관리, 자국의 경제회복 전략 조정, 유럽연합(EU) 이사회 의장국 역할 수행 등에 주력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연금부 장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개발협력부 장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재무장관을 지냈다. 장관 시절부터 강력한 다자국제 협력을 견지했고 성 평등과 디지털 혁신, 민간부문의 역할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강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