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노조원들이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투쟁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새롭게 등장한 실리콘칼라 노조는 성과급 요구의 명분으로 ‘공정’을 내세운다.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진의 재량을 받아들였던 기성세대와 달리, 지금 세대는 ‘왜 얼마나 받는지’를 영업이익처럼 숫자와 공식으로 설명받길 원한다”며 “치열한 각자도생의 경쟁을 거치며 철저한 보상의 논리를 내면화한 세대의 세계관”이라고 분석했다.
평생직장 개념의 붕괴와 극단적인 자산 양극화에 따른 생존 불안도 더해졌다. 평범한 월급만으론 수십억원대 부동산 장벽을 넘을 수 없는 현실에서, 반도체 호황에 당장 통장에 꽂히는 ‘확실한 현금’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절박함이 이 세대를 움직이는 동력이 됐다.
김영옥 기자
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공정(fairness)’의 맹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양희동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천문학적 이익은 개인의 노력보다 반도체 사이클에 좌우된다. 뜻하지 않은 초과이익까지 전적으로 자신의 성과로 포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미래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한 기업의 결단, 하청업체와의 협업, 전방위적 국가 지원 등 사회 전체의 기여를 외면한 채 특정 집단이 과실을 독식하려는 태도는 진정한 공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 매몰된 노조 투쟁이 결국 근로자 자신을 겨누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은 “성과급 6억원 이상의 고비용 정규직 일자리가 대규모로 유지되면 기업은 AI와 로봇으로 이들을 대체하려는 필요가 극대화할 것”이라며 “지금은 성과급 잔치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닫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테크 자본의 독식이 지역 공동체 자체를 잠식한 선례도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조인트벤처 실리콘밸리’가 발간한 ‘2026 실리콘밸리 지수’에 따르면, 극단적인 주거비 상승으로 지난해 실리콘밸리 단독주택 중위 가격은 198만 달러(약 27억원)까지 치솟았다. 그 결과 청년층(18~34세) 10명 중 3명은 독립을 포기하고 부모 집에 머물고 있다. 한국 반도체 벨트가 걷고 있는 길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케하는 모습이다.
권기섭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과거 노동운동이 연대와 상생, 양극화 해소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면, 이번 대기업 노조의 움직임은 기득권 강화 투쟁으로 비칠 수 있다”며 “본인들의 이익을 절대 공유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노동시장 양극화를 더욱 굳혀 결국 자신들의 고용 기반마저 흔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