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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국내 여의사 양상의 요람 고려대의료원, 도전 정신 잇는다

중앙일보

2026.06.0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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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앞둔 고려대 의과대학

여성을 의료 대상서 주체로 확립
유일하게 민족 자본으로 설립·운영
“AI 기반 정밀의료에 앞장설 것”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설립된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전경. [사진 양화진기록보관소]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설립된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전경. [사진 양화진기록보관소]

2028년 개교 100주년을 앞둔 고려대 의과대학이 여성 의학사의 뿌리를 복원하는 동시에 차세대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의료원 청사진 실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려대 의대의 역사는 1928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여의사 양성 교육기관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에 기반을 둔다. 여성이 남성 의사에게 몸을 보이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을 의료의 대상에서 의학의 주체로 끌어올린 전환점이 된 곳이 바로 여기다. 고려대 윤을식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고려대의료원은 1928년 한국 최초의 여의사 양성 교육기관으로 설립된 이래로 어느덧 5개 캠퍼스, 1만 명의 교직원, 연간 2조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운용하는 초대형 의료기관으로 거듭났다”며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아프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시간이 곧 고려대의료원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의학사서 소외된 여성 선구자 발굴

유교적 관습이 지배하던 19세기 말, 여성은 질병을 숨기다 치료 시기를 놓쳐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다. 여성 환자를 마음놓고 돌볼 수 있는 여성 의료인 양성이 무엇보다 절실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횃불을 든 인물이 미국 의료선교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다. 그는 조선에서 직접 여성 의료인을 키워내겠다고 결심한 뒤부터 의학 교육기관을 세우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1913년 평양 광혜녀원 부속 의학강습반을 개설한 데 이어, 1914년 조선총독부의원 부속 의학강습소에 조선 여성을 청강생으로 입학시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후 청강생 제도마저 폐지되는 시련 속에서도 홀 여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60대의 고령에도 인도·중국·일본의 여자의학전문학교를 직접 둘러보며 교육기관 설립의 포부를 꺾지 않고 정진했다.

마침내 1928년 9월,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학생 17명, 교사 12명으로 조선여자의학강습소가 문을 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조선’을 교명으로 내걸 만큼 강단 있는 행보였다. 이곳에서 5년간 헌신한 홀 여사는 건강이 악화해 1933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인 김탁원·길정희 부부가 계승했다.

이 기관은 전남 순천의 자산가인 우석 김종익의 기부금을 필두로 한 민족자본을 바탕으로 1938년 5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발돋움했다. 일제강점기 국내 8개 의사 양성기관 가운데 순수 한국인 자본으로 설립·운영된 유일한 곳이었다. 고려대 신규환 여성의학사연구소장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설립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에 자부심을 심어준 장거(壯擧)”라며 “단순한 학교 설립을 넘어 민족의 힘으로 의학교육의 미래를 세운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만개한 여의사 양성의 요람은 광복 후 서울여자의과대학, 수도의과대학, 우석대 의과대학을 거쳐 지금의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이어졌다. 고려대 의대는 처음부터 ‘의학 교육을 통해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순수한 교육적 신념과 구상 속에서 출발한 것이다. 국내 상당수 의대가 병원을 모체로 발전한 것과 달리, 학교를 먼저 세운 뒤 부속병원을 확충해 나간 독자적인 기원을 지닌다.

이에 고려대 의대는 2022년 12월, 국내 최초의 여성 의학사 전문 연구기관인 여성의학사연구소를 개소하고, 역사 속 여성 의료인과 연구자 등을 발굴하는 데 역량을 쏟고 있다. 식민지 시기 여성 위생학자, 광복 후 여성 예방의학자, 한국 최초의 여성 해부학자 등 가려져 있던 선구자 이름을 하나씩 찾아내 의학사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또한 매년 2권씩 전문 학술지 ‘의학사연구’를 발행하고, 정기적으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해 의료 인문학 전반으로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연구소는 단순한 역사 복원에 머무르지 않고 다가올 100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신 소장은 “창립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역사적 뿌리를 단단히 다지는 것이 연구소의 사명”이라며 “100년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한편, 주요 유물을 계속 발굴해 박물관 건립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앞에 모인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와 교수진, 학생들. [사진 General Commission on Archives and History]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앞에 모인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와 교수진, 학생들. [사진 General Commission on Archives and History]



안암·구로·안산·동탄, 4개 병원체제 구축

이런 정체성을 확립하는 움직임은 고려대의료원이 지향하는 미래 의료 비전인 ‘THE NEXT MEDICINE’과 맞물려 시너지를 내고 있다. 고려대의료원은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의 정몽구 미래의학관과 백신혁신센터, 동탄에 들어설 제4고대병원을 주축으로 안암·구로·안산병원을 연결하는 ‘쿼드 병원’ 체제를 구축해 다음 100년을 설계할 계획이다.

이는 최첨단 의학 연구와 진료, 그리고 인류에 공헌하는 사회적 가치가 결합한 모델이다. 윤을식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고려대의료원은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아프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길을 묵묵히 걸어 왔다”며 “그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디지털 헬스케어와 인공지능(AI) 기반 정밀의료, 융합 연구에 앞장섬으로써 다가올 100년에도 변함없이 신뢰받는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선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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