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이제는 건강하게 늙는 사람이 성공한 자입니다. 일찍 병들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2030대 사이에서도 저속노화 열풍인 이유입니다. 공복을 유지해야 한다, 근력 운동을 해야 한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더중앙플러스 ‘100세의 행복’에서 100세 인생을 살고 있는 근사한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 비법을 전수받았습니다.
영락없는 소녀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였다. 봄의 전령 진달래가 산을 뒤덮었던 지난 4월, 서울 도봉산에서 그를 만났다. 산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산쟁이인 그는 취재진에게 “산에서 보자”고 했다. 하지만 인터뷰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꽃 구경하랴, 산새 소리 들으랴, 바람결 느끼랴….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차분히 답할 틈이 없었다.
" 소~녀? 에잇! 놀리지 마라. 내 나이가 올해 아흔 셋이다 "
지난 4월, 서울 도봉구 도봉산에서 만난 신옥자(93) 산악인. 그는 산 곳곳에 핀 진달래를 보며 "을매나 좋노"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산에 오면 공기도 맛있다"며 산 사랑을 감추지 않았다. 김종호 기자
“소녀 같으시다”는 말에 그제야 취재진을 돌아봤다. 그는 손사래를 쳤지만, 표정은 숨기지 못했다. 입꼬리는 올라갔고, 눈빛은 한층 또렷해졌다. 호기심과 설렘 가득한 표정이 영락없는 소녀였다.
" 내는 눈 감고도 간다. 이 산 오르려고 여기로 이사까지 온 사람이라니까. 이 산길을 50년 다녔는데, 어려울 게 뭐 있노. "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그는 다른 사람이 됐다. 소녀 같은 인상 뒤에 강한 산악인이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과 거친 바위 길, 미끄러운 낙엽 길도 그에게는 가뿐했다. 느렸지만 일정했고, 흔들렸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그제야 보였다. 아담하고 다부진 몸집, 돌덩어리만큼 단단한 종아리와 허벅지, 꼿꼿한 허리와 군살 없는 뱃살까지. 90대의 몸이 아니었다. 산 호랑이, 그게 그의 진짜 모습이었다.
‘도봉산 왕언니’로 불리는 산악인 신옥자(93)의 첫 인상이다. 산행 경력 51년, 험한 국내 산은 물론 히말라야 트레킹도 다섯 차례나 다녀온 산사람이다. 매일 새벽 4시면 도봉산으로 향한다는 그는 지금도 맨손으로 암벽을 오른다. 팔순·구순 잔치는 북한산 인수봉에서 열었다.
" 하루라도 산에 안 가면 병 나.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일 들러야 하는 곳이 산이야.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산 거야. "
사실 그는 암으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겼다. 그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산이었다. 산은 만신창이가 된 그를 품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줬다. 그렇게 51년 세월을 함께했다.
〈100세의 행복3〉5화에서는 90대 현역 산악인 신옥자의 ‘산이 선물한 삶’을 들여다봤다. ‘침묵의 암’이라는 대장암이 1년 만에 재발하면서 천당과 지옥을 오간 사연, 두 차례 항암으로 완전히 잃어버린 밥맛을 되찾은 비결, 불면증과 동행하는 법, 70대에 히말라야를 정복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 그의 새벽 산행 이유까지 낱낱이 파헤쳤다.
" 아, 이런…, 재발이네요. 고령자들에겐 이런 일이 흔치 않은데, 암 전이 속도가 너무 빨라요. 혹시 민간요법 하셨어요? "
4년 전, 정기검진에서 의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신옥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신옥자는 한 해 전, 대장암 2기 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로 암 세포를 말끔히 제거(완전관해)했었다. 그런데 단 1년 만에, 그것도 89세라는 고령에 암이 재발한 거다.
" 암세포가 젊은 사람 맹키로 활발했대. 그래서 빨리 번진 거야. 일반적인 고령 환자들한테 쓰듯 적당히, 순한 약으로 치료하니까 내 암세포가 꿈쩍도 안 했다는 거지. "
평소 큰 병치레 없이 건강을 자신해 왔었다. 그런데 바로 그 건강이 독이 된 걸까. 신옥자에겐 젊고 체력 좋은 사람들에게나 쓰는 강력한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신옥자는 독한 항암 주사를 맞고 온 날이면 음식 냄새도 맡지 못할 정도로 휘청거렸다.
" 항암은 먹는 게 전쟁이야. 밥이 안 들어가서 굶으면 위가 말라붙는지 더 안 들어가. 그래도 먹어야 살잖아. 그러니 어째, 밥을 먹고 싶은 몸을 만들어야지 "
하지만 밥은 한 번에 많이 먹지 않는다. 대신, 평생 지켜온 식습관인 ‘소식’을 유지했다. 취재진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도 그는 삼계탕을 절반만 먹고, 남은 음식은 포장했다. 그는 “마이 묵으면 부대낀다”며 “남은 건 저녁 찌개에 넣으면 된다”고 했다.
이날 저녁, 신옥자는 포장해 간 ‘반마리 삼계탕’으로 근사한 한끼를 완성했다. 삼계탕에 밥 두 숟가락, 양파를 썰어 넣고 된장을 풀어 뚝배기에 담아 푹 끓여냈다. 밥 대신 면을 넣기도 하고, 나물과 고기는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넣는다.
지난 3월,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심영순요리연구원’에 들어선 취재진을 맞이한 건 구수한 밥 냄새였다. ‘옥수동 선생님’으로 불리는 전통 한식 선구자 1세대 요리 연구가인 심영순(89·이하 경칭 생략) 한식 대가는 취재진을 서둘러 밥상에 앉혔다.
대가가 직접 차려낸 밥상은 말 그대로 입이 떡 벌어졌다.
돼지고기 편육, 민어찜, 마늘꼬치, 겉절이, 애호박무침….
친숙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의 단정하고 어여쁜 때깔에 한번, 맛본 순간 또 한 번…. 취재진은 식사 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극적이지 않은데 혀끝을 감아 도는 깊은 감칠맛. 생전 처음 느끼는 풍미였다.
" 이 나이에 칼질하고 불 앞에 서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 아직 죽지 않았어. "
심영순의 포스는 여전히 남달랐다. ‘한식대첩’의 심사위원은 물론,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해피투게더’ 등 당대 최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촌철살인의 독설로 유명세를 탔던 그였다. 그러다 돌연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췄고, 세간에는 건강 이상설 등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사실 그는 ‘석 달 시한부’를 선고받은 췌장암 환자였다. 설상가상 십이지장궤양까지 겹치자 볼이 핼쑥하게 파이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가족들마저 마지막을 준비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수술도, 항암 치료도 없이 심영순은 1년 만에 병석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 자기공명영상(MRI)에서 암 덩어리가 말끔하게 사라졌단다. 의사도 이를 ‘기적’이라 했다. 암에서 일어난 심영순은 일주일에 두 번 요리연구원에 직접 등판해 제자들을 가르치는 ‘현역’이다.
" 몸에 좋은 것만 넣어 만든 ‘이것’을 매일같이 먹었으니, 암이 안 사라지고 배겨? "
심영순은 암에 걸린 자신을 살리기 위해 둘째 딸이 매일 끓여준 이 음식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다며 세세한 레시피를 알려줬다. 〈100세의 행복3〉 3화에서 ‘구순(九旬)의 한식 대가’ 심영순을 암에서 살려낸 음식 레시피부터 운동법까지 낱낱이 공개한다.
취재진은 인터뷰 내내 심영순 곁을 떠나지 않은 남편 장영순(93)씨의 정정함과 날렵함에 한 번 더 놀랐다. “내 건강은 평생을 아내가 차려준 밥상을 먹고 산 덕분이지.”
50년 넘게 한식 연구에만 몰두한 심영순의 부엌. 이곳에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가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사실 심영순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심영순은 오로지 ‘한식 연구’에만 몰두하겠다며,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취재진의 간곡히 설득한 끝에 그는 “생애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되겠다”며 만남에 응했다.
요리연구원에서 만난 그는 2000년대 TV 화면 속 모습 그대로였다. 청록빛 고운 한복 자태에, 숱 많고 탄력 있는 백발의 헤어 스타일.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흐트러짐 없이 꼿꼿했다.
더더욱 놀라운 건 요리하는 그의 모습 자체였다.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섬세함, 시시각각 재료의 상태를 읽는 기민함, 칼끝의 힘을 다루는 유연성까지. 심영순은 부엌에 선 것만으로 자신의 건강을 증명했다.
이렇게 꼿꼿한 그에게도 사선의 고비가 있었다. 20여 년 전,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 5년 생존율이 10%대에 불과해서 ‘소리 없는 암살자’라고 불리는 췌장암에 걸렸을 때다. 의사는 고작 3개월 시한부를 선고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던 날, 가족 모두가 심영순이 이미 세상을 떠난 것처럼 펑펑 울었다.
그러나 둘째 딸 장혜주씨는 어머니 심영순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곧장 보따리를 싸 친정집으로 들어갔다. 심영순의 식탁은 그날로 완전히 달라졌다.
딸 혜주씨는 감자, 당근, 토마토, 브로콜리, 양배추, 셀러리, 케일 등 12가지 채소를 커다란 냄비에 넣고 약한 불에 약 4~5시간 동안 오래 고았다. 그렇게 푹 삶아낸 채소를 믹서에 곱게 갈아 ‘채소탕’을 만들었다.
그렇게 심영순은 항암 치료 대신 딸의 채소탕 식이요법을 선택했다. 딸의 지극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심영순의 기력이 차츰 돌아왔고 식이요법을 한 지 1년 만에 암이 싹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