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지난해 발생한 해킹이 올해 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알려졌고,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는 홈페이지에 심어진 악성코드로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 병원에서는 직원의 메일 주소 오입력으로 산모·신생아의 진료 정보가 외부로 새어 나갔다.
출판사 한 곳은 대량 문자 발송 중 회원의 전화번호를 수천 명에게 잘못 보냈다. 한 대형 OTT 플랫폼의 데이터베이스에 비인가 접근이 발생해 이용자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기도 했다. 원인은 제각각이지만 이것은 한 기업의 사고가 아니라 한국 산업 전체의 구조적 현상이다.
디지털 전환은 산업의 정밀도를 높였다. 매칭 알고리즘은 더 세밀해졌고 진료 기록은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마케팅은 고객 데이터 위에서 돌아간다. 더 정교하게 개인화된 서비스를 위해 고객들도 더 많은 정보를 원하고 기꺼이 제공한다. 그러나 보안, 접근 권한, 데이터 파기 같은 기초공사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빠른 디지털화의 이면에 쌓인 이 격차가 곧 디지털 전환의 부채다.
이 부채의 비용은 결국 소비자가 진다. 사고가 터져도 서비스를 떠나지 못하는 소비자가 많다. 결혼정보업체의 경우 사고 이후에도 상담 문의와 신규 가입이 계속됐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어려워진 시대에 진지한 인연을 매개하는 서비스의 효용은 사고 한 건으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둔감한 것이 아니라 어느 회사의 보안이 더 단단한지 내 데이터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확인할 수단이 없다. 정보가 부족하고 비교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위험을 충분히 저울질하지 못한 채 가입 버튼을 누른다.
사고가 집중되는 곳이 거대 플랫폼만은 아니다. 의료·매칭·여가·문화처럼 일상에 깊이 자리 잡은 서비스가 한 번의 사고로 위축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다만 책임을 묻는 방식이 산업 자체를 위축시키는 쪽으로만 흐르면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오는 9월 시행되는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은 중대·반복 위반에 매출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동시에 선제적 보안 투자에 과징금 감경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향도 함께 담겼다. 이 균형이 맞다. 처벌의 강도만으로는 보안 수준이 올라가지 않는다. 사고 이후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중단하고 암호화·접근 통제를 재정비한 기업이 있고 수동 발송 방식을 폐기하고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기업도 있다.
디지털 전환의 부채를 갚는 길은 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진 모습으로 소비자의 일상에 남는 것이다. 소비자가 서비스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핵심은 보안 수준의 공개와 비교다. 가격처럼 보안도 쉽게 비교할 수 있는 환경, 소비자가 정보에 기반해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산업과 규제 모두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