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송광수 검찰총장(왼쪽)과 강금실 법무장관(가운데), 안대희 중수부장(오른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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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송광수·안대희 시대의 서막
」
‘국민검사’ ‘송짱’ ‘안짱’….
검찰에게 ‘이런 시절이 다 있었나’ 싶다. 2000년대 초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송광수 검찰총장(송짱)과 안대희 중수부장(안짱)에게 시민이 붙여준 애칭이다. 한국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검찰 팬덤’ 현상의 주역들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의 비대한 권력을 통제해야 한다며 ‘검찰 개혁’을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그런 정권에서 검찰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 지지 속에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검찰은 노태우-김영삼(YS)-김대중(DJ) 정권을 거치면서 대형 경제 비리(한보 사태)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노태우-전두환 비자금 및 내란), 현직 대통령의 자식(김현철, 김홍걸 등 권력형 비리) 등 정치 경제 사회 권력에 거침없이 칼을 들이대며 근육을 키웠다. ‘권력의 시녀’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동반자이자 권력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노 대통령은 검찰이 과거 정권에서 정치를 왜곡하고 권력집단으로 변질했다는 부정적 인식을 가졌고,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검경수사권 조정 등을 강행해 검찰을 손보려고 했다. 그런데 역사는 이상하게 돌아갔다.
2003년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오른쪽)과 안대희 중수부장이 대검 구내를 함께 걷고 있다. 김상선 기자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뒤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2003년 4~6월)→‘현대 비자금’(2003년 6~7월)→‘불법 대선자금’(2003년 8월~2004년 5월) 수사가 성공적으로 이어졌다. 검찰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국민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했다. ‘살아 있는 권력’ 실세를 비롯해 정치 거물들, 정치권에 불법 헌금을 상납하고 반대급부를 챙기던 재벌들의 행태를 들춰내 단죄했다. 눈치를 보지 않고 성역을 깨는 검찰에 국민은 팬덤으로 화답했다.
그 화려한 팬덤 현상은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사시 13회)과 안대희(사시 17회) 대검 중수부장, 두 사람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칼의 춤, 검찰 징비록’은 23년 전 ‘전설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징비(懲毖, 과거의 잘못과 비리를 경계하여 삼가함)의 가르침을 고찰한다. 검찰의 존재에 절대적 지지를 보냈던 과거의 국민, 그리고 검찰의 사망을 싸늘하게 외면하는 오늘의 국민.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국민이 실존하게 된 과정을 객관적 팩트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적한다.
2004년 초 강금실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안대희 중수부장이 신년 교례회에서 건배하고 있다. 중앙포토
·송광수-안대희 콤비를 어떻게, 왜 발탁하고 기용했을까?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의 여성, 최연소 법무부 장관에 오른 강금실은 검찰 개혁의 적임자였나?
·노무현은 왜 검찰 통제에 실패했고, 오히려 검찰의 파워는 더 커졌을까?
2003년 3월의 어느 날, 강금실과 안대희의 만남에서 그 궁금증의 타래를 풀어나가려 한다.
2003년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의 팬 클럽 회원들이 도시락을 전달하기 위해 대검찰청을 방문해 도시락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포토
강금실·안대희의 상견례
2003년 3월 7일 금요일 오후, 안대희 부산고검 차장검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출범(2003년 2월 25일) 이틀 만에 46세의 나이로 최연소 초대 법무장관에 오른 강금실(이하 존칭 생략)이었다.
" 긴히 나눌 얘기가 있으니 서울에서 만났으면 합니다. 서울 시내 P호텔 칵테일바로 오실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