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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맛집 투어 질렸다면…요즘 뜨는 ‘귀르가즘’ 여행

중앙일보

2026.06.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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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몽돌소리도 사라질 수 있다”

지난 1일 더사운드벙커 이용원 대표가 화순곶자왈에서 주변 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1일 더사운드벙커 이용원 대표가 화순곶자왈에서 주변 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AI가 파도 소리는 만들 수 있어도, 제주 알작지 몽돌(제주 자갈)이 굴러가는 그 날 밤의 소리까지는 못 만듭니다.” 지난 1일 찾은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의 한 공간. 이용원 ㈜더사운드벙커 대표가 카드 하나를 단말기에 갖다 대자 “드르륵, 쏴아~” 하는 몽돌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지향성 스피커를 활용해 듣는 이가 서 있는 공간에만 소리가 울렸다. 이 대표는 “이 소리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해안 침식과 공사로 몽돌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그는 그렇게 제주 곳곳의 소리를 모으고, 기록한다. 사람들이 풍경 사진을 남길 때, 그는 바람과 파도, 숲과 골목의 소리를 모아 왔다.



화순리 마을과 행정 힘 모아 공간 마련

지난 1일 찾은 사운드벙커 제주 전경.

지난 1일 찾은 사운드벙커 제주 전경.

지난달 25일 문을 연 ‘사운드벙커 제주’는 이용원 대표가 수년간 이어온 사운드 아카이빙 작업을 기반으로 조성된 소리 체험 공간이다. 용암이 흐른 후 숲이 조성된 화순곶자왈 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소리 콘텐트에 매력을 느낀 화순리 마을 주민과 행정의 지원으로 마련된 공간이다. 북극권 노르웨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서 착안해 제주의 자연과 마을 소리를 기록·보존하는 ‘지구의 소리 기록소’를 콘셉트로 삼았다.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면...그때 그곳으로 간다

지난 1일 찾은 사운드벙커 제주에서 지향성 스피커를 통해 제주 자연소리를 감상 중인 여행객. 최충일 기자

지난 1일 찾은 사운드벙커 제주에서 지향성 스피커를 통해 제주 자연소리를 감상 중인 여행객. 최충일 기자

이 공간에선 곶자왈 바람 소리와 용머리해안 파도 소리, 하도리 철새 도래지의 자연음, 곤을동 4·3유적지의 바람과 새소리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카드 형태의 사운드 아카이브를 단말기에 접촉하면 저장된 음원이 재생되는 방식이다. 그가 기록하는 소리는 단순한 자연음에 그치지 않는다. 눈을 감고 자연 속 새소리, 유적지 바람소리에 집중하면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시기 그 장소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용머리해안의 경우 사암층 사이로 밀려드는 파도 소리가 지층 구조에 따라 다른 울림을 만든다.



“보는 것, 먹는 것 외에 듣는 경험으로 힐링”

지난 1일 찾은 사운드벙커 제주에서 헤드폰을 이용해 제주 자연소리를 감상 중인 시민. 최충일 기자

지난 1일 찾은 사운드벙커 제주에서 헤드폰을 이용해 제주 자연소리를 감상 중인 시민. 최충일 기자

창밖으로 산방산과 제주 남쪽 바다가 펼쳐진 공간에서 방문객들은 각 지역의 소리를 들으며 제주 자연환경을 청각 중심으로 경험하게 된다. 여행객 전자미(충남·55)씨는 “대표님의 설명을 들으며 제주 자연의 소리를 들으니 감동이 배가된다”며 “여행을 하며 보는 것과 먹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듣는 경험으로 이렇게 힐링을 받은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과 바람, 물때에 따라 달라”

지난 1일 더사운드벙커. 이용원 대표가 여행객에게 지금 듣는 소리의 스토리를 설명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1일 더사운드벙커. 이용원 대표가 여행객에게 지금 듣는 소리의 스토리를 설명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이 대표는 10여년 전부터 전국의 자연환경과 지역 생활음을 녹음해 왔다. 현재는 제주를 중심으로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 속 소리 풍경을 뜻한다. 사람이 귀로 듣는 것과 가장 유사하게 녹음하기 위해 스테레오 마이크 녹음 장비를 활용해 현장음을 담는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 등장하는 방식이다. 한 장소에서 수차례 녹음한 뒤 약 15분 분량의 핵심 음향을 추려 콘텐트화한다. 이 대표는 “같은 장소라도 계절과 바람, 물때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며 “현장에서만 만들어지는 감각을 온라인으로 경험해 보고 싶으면 ‘사운드투어’ 홈페이지를 찾아달라”고 설명했다.



자연음 들으며 걷는 ‘사운드워킹’도 주목

지난 1일 사운드벙커 제주 인근의 화순곶자왈에서 사운드워킹을 하는 중인 여행객. 최충일 기자

지난 1일 사운드벙커 제주 인근의 화순곶자왈에서 사운드워킹을 하는 중인 여행객. 최충일 기자

㈜더사운드벙커는 2021년 제주관광공사 관광 창업기업 육성사업인 ‘J-스타트업’에 선정된 이후 체험형 프로그램인 ‘사운드워킹(Soundwalking)’도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개인 녹음 기기를 빌려 곶자왈과 해안길을 걸으며 주변 자연음과 생활음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이다. 화순리와의 협업도 이어지고 있다. 곶자왈 자원을 활용한 사운드워킹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하며 일부 수익을 마을발전기금으로 환원하고 있다.



나도 ‘필드 레코디스트’ 되볼까

지난 1일 더사운드벙커 이용원 대표가 사운드벙커 제주와 커피파인더가 협업한 제주소리가 담긴 커피 콘텐트에 대해 설명 중이다. 최충일 기자

지난 1일 더사운드벙커 이용원 대표가 사운드벙커 제주와 커피파인더가 협업한 제주소리가 담긴 커피 콘텐트에 대해 설명 중이다. 최충일 기자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는 이를 지역 자원 기반 관광 모델 사례로 보고 관련 사업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이달부터 ‘필드 레코디스트’ 양성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참가자들이 곶자왈과 해안, 마을 골목 등을 돌며 직접 자연과 생활 소리를 채집·기록하는 방식이다. 신현철 제주관광공사 글로컬관광팀장은 “최근 관광업계에서는 지역의 감각과 이야기를 체험하는 체류형 관광 콘텐트가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걷기와 명상, 워케이션 등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지속 가능한 콘텐트 발굴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더사운드벙커 이용원 대표가 화순곶자왈에서 주변 소리를 녹음하며 집중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1일 더사운드벙커 이용원 대표가 화순곶자왈에서 주변 소리를 녹음하며 집중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최충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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