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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분배 실패가 트럼프 낳았다…“AI 세금 때려라” 英석학 제언

중앙일보

2026.06.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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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규가 만난 해외 전문가
글로벌 머니는 2026년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이후 해외 전문가를 인터뷰해왔습니다. 투자자와 비즈니스 리더가 세계 경제뿐 아니라 국제정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를 가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이란 사이 종전 협상이 변덕스럽지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희망섞인 기대를 해볼 수 있어, 이제 해외 전문가 인터뷰 시리즈를 마감해도 될 듯합니다.

시리즈의 최종편으로 글로벌 머니는 마틴 돈턴(경제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대공황 이후 주요 나라 정책이 어떤 경제교리를 바탕으로 해왔는지를 추적한『권력과 통치(The Economic Government of the World: 1933-2023)』의 지은이입니다.

지금 세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팬데믹, 인플레이션 재발,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전쟁 등으로 안개 속입니다. 이 안개가 걷힌 뒤엔 어떤 경제교리가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까요?
마틴 돈턴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 본인 제공

마틴 돈턴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 본인 제공

마틴 돈턴 교수가 한양대 사학과 BK21 연구팀의 초청으로 서울을 찾았다. 인터뷰 장소(서울 프레지턴트호텔)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현재 글로벌 상황에서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너무나 선명했다.

다만 영어 버전을 기준으로 990페이지, 한국어판으론 1506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쓴 학자에 대한 경의 차원에서 저서의 내용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Q : 2008년 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경제교리가 등장할 것으로 봤는데, 아닌 듯하다.
A : 그해 위기는 신자유주의 정당성에 대한 위기였다. 하지만 바뀐 것은 미미했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질서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세계화 과정에서 악화한 불평등이 위기 이후에도 여전하다. 더 심해졌다. 미국과 유럽이 위기를 맞은 은행에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한편 재정지출은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나마 경제가 되살아났다. 불평등은 더 심해졌다. 위기의 근본 원인을 바로잡지 못했다. 정치·사회적 문제가 불거졌다.

재정정책 패배?


Q : 불평등이 악화했다고 했는데, 책에서 말한 ‘재정정책의 패배’ 탓일까.
A : (살며시 웃으며) 그 말을 콕 집어 물을 줄 몰랐다. 재정정책의 패배는 재정정책 실패와는 다르다. 재정정책이 (금융통화정책과 경쟁에서) 패배해서는 안 됐는데 졌다는 의미다. (2009년 G20 회의 안팎의) 핵심 인물 두 명이 움직였다. 먼저 머빈 킹 당시 영란은행(BOE) 총재는 영국 총리이면서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주도했던 고든 브라운에게 ‘(위기를) 재정정책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부적절한 정치적 개입이었다.
머빈 킹 전 영란은행(BOE) 총재(왼쪽)와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은 2011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중앙은행 총재 회의 모습. 가운데 사람은 아즈미 준 당시 일본 재무장관. 중앙일보 자료사진

머빈 킹 전 영란은행(BOE) 총재(왼쪽)와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은 2011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중앙은행 총재 회의 모습. 가운데 사람은 아즈미 준 당시 일본 재무장관. 중앙일보 자료사진



Q : 또 다른 한 사람은 누구인가.
A : 그때 독일을 이끈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재정확대에 반대하고 나섰다. 통독 과정에서 불어난 부담 탓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어쨌든 두 사람이 움직인 바람에 재정 수단이 (정책선택 경쟁에서) 패했다. 양적완화(QE)란 금융정책의 승리였다. 내가 『권력과 통치』를 쓴 계기가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인데, 브렉시트를 지지한 곳과 재정긴축에 시달린 지역 사이엔 상관관계가 뚜렷했다. 재정긴축 때문에 영국인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불행한 결정을 했다고 보는 이유다.

돈턴 교수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질서가 유지되는 바람에 미국 등의 유권자들이 포퓰리즘과 ‘경제적 국가주의(Economic Nationalism, 경제적 민족주의)’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라고 본다. 이는 트럼프가 관세전쟁(무역전쟁)을 시작하게 된 내부 요인이다. 외부 요인은 세계 2위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다.


트럼프는 히틀러만큼도…
요즘 참 혼란스럽다. 적잖은 사람들의 눈에 지금이 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Interwar Period, 戰間期)와 너무 비슷하다고 말한다.
A :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쥔 때는 주요 나라 대표가 대공황과 관세장벽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 모인 1933년이었다. 그때는 세계 경제가 서로 균열해 있었다. 런던회의에 참여한 지도자들은 다시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반면에 지금은 연결된 세계 경제가 (트럼프 등에 의해) 해체되고 있다.


Q : 트럼프와 히틀러가 비슷하다고도 하는데….
A : 비슷한 질문을 케임브리지대 동료 학자인 리처드 에번스 교수에게 한 적이 있다. 에번스 교수는 히틀러의 제3제국에 대한 책을 세 권이나 썼다. 그에게 ‘트럼프를 히틀러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순간 에번스 교수는 ‘트럼프는 폴란드를 침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역사가의 위트 있는 대답이다. 하지만 정확한 답변 같지는 않다. 트럼프는 분명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아주 기회주의적이거나 포퓰리스트적이다. 반면에 히틀러는 나치즘이라는 분명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 그는 (아리안) 민족 혈통과 영토(blood and soil)가 하나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말과 행동이 오락가락한다. (세계화 과정에서) 버려진 사람들의 감정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불평등이 무역장벽


Q : 앞서 내부의 긴축재정 또는 재정 건전성 논리가 국제 경제와 정치 지형마저 뒤흔들었다고 했는데, 긴축의 파장이 그토록 컸나.
A :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재정긴축이 왜 위험한지 한결 뚜렷해진다. 루스벨트는 ‘여러분의 나라에서 사회계약을 맺지 못하고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자유무역과 다자간 협의 등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부의 불평등 악화가 자유무역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Q :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A : 다시 강조하지만, 내부 유권자가 좋아하지 않으면 자유로운 무역이 되살아나기 어렵다. 불평등 전문가인 프랑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가 부유세를 제안했다. 나는 부유세에 동의하지 않는다. 포용적 사회정책(Inclusive Social Policy)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포용적 사회정책은 나이나 성별, 장애 유무, 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이 차별받지 않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복지다. 경제 성장이 낳은 과실을 공정하게 나눌 수 있는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사회적 배제를 방지하는 게 목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구호를 앞세워 관세전쟁으로 글로벌 무역을 위축시켰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구호를 앞세워 관세전쟁으로 글로벌 무역을 위축시켰다. AFP=연합뉴스

“트럼프주의는 막아야!”


Q : 트럼프는 관세 공격으로 미국 유권자를 기쁘게 하고 있는데….
A : 포퓰리즘이다. 미국이 재분배 정책으로 돌아서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부유층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정책을 취하고 있다. 반대로 가고 있다. 영국의 정치지형도 재분배 쪽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이나 영국의 노동당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Q : 지금의 혼란스러움 이후엔 어떤 경제교리를 바탕으로 한 정부가 나타날까.
A : 우선 트럼프주의가 득세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여러 가지 포용적 정책을 실시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영국 노동당 정치인 가운데는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란 말을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노동자는 광산 노동자처럼 들린다. 현재 노동자의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이런 변화를 인정하는 포용적 정책을 주로 쓰는 정부가 필요하다. 다만 포용적 정책을 쓰는 정부를 한마디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Q : 포용적 정책이 인공지능(AI) 시대에 가능할까.
A : AI를 통해 얻은 경제적 부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 포용적 사회를 이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얼마 전 영국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그때 참석자들이 현재 세금 체계에선 자본에 대한 세율(법인세율 등)보다 노동을 통한 소득에 적용되는 세율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재인 AI가 일자리를 없애면, 정부의 세수가 급감할 수 있다. 세수 감소 폭이 10%가 될지 아니면 더 많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AI에 대해 어떻게 세금을 물릴지는 고민하기 시작해야 한다.


Q : 마지막으로 한국은 세계가 자유무역을 향해 움직인 시대에 발전했다. 요즘 세계 경제질서가 어지럽다. 이런 때 한국의 위치는 어디일까.
A : 한국은 안보 측면에서는 미국과 특별한 사이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이웃해 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영국 사람들은 미국과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해 왔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사이는 윈스턴 처칠이 2차 세계대전 때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지원을 받기 위해 사용한 마케팅 용어였다. 실제로 두 나라는 특별한 사이가 아니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에 각종 이익을 포기하라고 압박했고, 수에즈 운하 사태 때는 영국 편을 들지도 않았다. 요즘 트럼프는 특별한 사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가 스스로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이 눈여겨봐야 한다.
마틴 돈턴의 저서

마틴 돈턴의 저서

마틴 돈턴
1949년 영국 웨일스 수도 카디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잉글랜드, 어머니는 웨일스 출신”이라고 스스로 소개했다. 노팅엄대에서 경제사를 공부한 뒤 켄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더럼대와 UCL 등을 거쳐 1997년에는 케임브리지대에 자리잡았다. 이후 2015년까지 18년 동안 경제사를 가르쳤다. 저서로는 『권력과 통치』외에 『진보와 빈곤: 1700~1850년 사이 영국의 경제·사회 역사(Progress and Poverty: an economic and social history of Britain 1700~1850)』등이 있다.

강남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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