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Korean Table'을 주제로 갈라디너를 준비한 임병진 바텐더, 신창호 셰프, 강민구 셰프(사진 왼쪽부터). 사진 파라다이스시티
서울과 뉴욕을 대표하는 셰프와 바텐더가 한자리에 모였다. 파라다이스시티 럭셔리 부티크 호텔 아트파라디소의 모던 한식 다이닝 '새라새(SERASÉ)'에서 열린 'SIX HANDS GALA DINNER'는 국내 유일의 미쉐린 3스타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와 뉴욕 미쉐린 2스타 '주옥'의 신창호 셰프, 한국적 바 문화를 대표하는 '바참'의 임병진 바텐더가 함께 완성한 갈라 디너다. 음식과 칵테일, 와인 페어링을 하나의 코스로 엮어 '지금의 한국 미식'을 선보였다.
'A New Korean Table'을 주제로 열린 이번 갈라 디너는 총 9코스로 구성됐다.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와 신창호 셰프의 뉴욕 '주옥'이 각자의 개성을 담은 요리를 선보이고, 임병진 바텐더의 웰컴 칵테일과 디저트 칵테일, 파라다이스시티 소믈리에의 와인 페어링이 더해져 하나의 코스를 완성했다. 셰프들이 각자의 대표 메뉴를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철학을 한 접시 안에 녹여낸 것이 이번 갈라 디너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갈라 디너 메뉴들. 사진 왼쪽은 한우 안심, 블루랍스터를 활용한 메인 요리. 오른쪽은 삼색 나물과 제철 해산물, 배추선과 무늬오징어, 매실 고추장 캐비아, 사진 파라다이스시티
코스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로 시작해 점차 깊이를 더해갔다. 참외게살냉채를 시작으로 은어와 육회, 삼색 나물과 제철 해산물, 배추선과 무늬오징어 등이 이어졌고, 메인 코스에서는 금태 연잎찜과 들기름을 활용한 요리, 색동 수제비, 한우 안심과 블루로브스터 등을 선보였다.
특히 이번 행사는 서울의 주옥을 마무리하고 뉴욕으로 무대를 옮긴 신창호 셰프가 현재 뉴욕에서 선보이고 있는 메뉴를 국내에서 처음 소개한 자리이기도 했다. 특히, 뉴욕 주옥을 제대로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신 셰프는 미국에서 직접 키운 들깨로 짜낸 들기름을 가져왔다. 이처럼 뉴욕을 찾지 않아도 현재의 주옥을 경험할 기회였지만, 단순한 재현에 그치지는 않았다. 뉴욕 주옥의 대표 메뉴에 강민구 셰프가 해삼전과 블루로브스터(랍스터)&바비큐 고추장 등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이번 갈라 디너에서만 맛볼 수 있는 협업 메뉴로 완성했다.
신창호 셰프는 뉴욕의 주옥을 보여주기 위해 뉴욕에서 직접 기른 들깨로 짜낸 들기름을 가져와 메뉴를 완성했다. 사진 파라다이스시티
식사의 시작은 임병진 바텐더가 맡았다. 제철 재료를 활용한 웰컴 칵테일 '진토닉 인 시즌'과 '블러디 메리 인 시즌'이 첫인상을 만들었고, 식사 중에는 파라다이스시티 소믈리에가 각 코스에 어울리는 와인을 제안하며 음식의 풍미를 끌어올렸다. 디저트에는 임병진 바텐더의 시그니처 칵테일 '송편'이 곁들여졌다. 공식 코스가 끝난 뒤에는 새라새의 진선주 셰프가 직접 제면한 냉면이 히든 메뉴로 등장해 긴 코스의 여운을 담백하게 마무리했다.
한 상에는 세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고민해 온 '한국 미식'에 대한 생각도 담겼다. 표현은 달랐지만, 이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민구 셰프는 한국 미식이 이제 '성장'을 넘어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12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 미식은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레스토랑만 많아져서는 안 됩니다. 경제 성장이라는 토대 위에, 식재료를 생산하는 사람들과 서비스 인력, 주류, 그릇과 공간 디자인을 담당하는 전문가까지 모두가 함께 성장해야 한국 미식이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강 셰프는 한국 미식의 다음 단계는 개별 레스토랑의 성공이 아닌 산업 전반의 성장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신창호 셰프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한국을 떠난 뒤 익숙했던 식재료를 구할 수 없는 환경을 마주하며 요리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고 회상했다.
신창호 셰프가 뉴욕 '주옥'에서 선보이고 있는 메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갈라디너를 앞두고 주방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 파라다이스시티
"처음에는 한국에서 하던 방식대로 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나물도 없고 생선도 달랐어요. 결국 농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채소를 고르고, 들깨도 직접 재배해 들기름을 짜게 됐습니다."
그는 "예전에는 내 요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뉴욕에서는 좋은 재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며 "주옥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표현은 현지 환경에 맞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선보인 금태 연잎찜과 들기름, 색동 수제비 등도 뉴욕에서 새롭게 다듬은 주옥의 현재를 보여주는 메뉴들이다. 익숙한 한식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구한 식재료와 환경에 맞춰 다시 풀어낸 결과물이다.
임병진 바텐더는 여기에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더했다. "예전에는 한국 재료를 많이 쓰는 것이 한국적인 칵테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한국의 문화와 기억을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병진 바텐더가 선보인 칵테일. 사진 왼쪽부터 블러디 메리 인 시즌, 진토닉 인 시즌, 송편. 사진 파라다이스시티
그가 이날 선보인 '송편'은 대표적인 예다. 쑥과 참기름, 쌀, 밤 등 송편을 떠올리게 하는 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명절의 기억을 한 잔의 칵테일에 담았다. 임 바텐더는 "세계 바 문화에서도 이제는 각 지역의 정체성을 담는 '하이퍼로컬(Hyper-local)'이 중요한 흐름"이라며 "가장 가까운 재료와 문화에서 출발하는 것이 오히려 세계인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간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한국 미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닮아 있었다.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무르기보다 한국의 식재료와 문화, 기억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것. 한국 미식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도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았다.
갈라 디너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왼쪽부터 임병진 바텐더, 강민구 셰프, 신창호 셰프. 사진 파라다이스시티
이번 갈라 디너는 파라다이스의 식음 연구개발 조직인 '컬리너리랩 바이 파라다이스'가 기획한 프로젝트다. 강민구 셰프가 총괄 컨설턴트로 참여하는 컬리너리랩은 새라새의 계절 코스 개발과 셰프 협업 프로젝트 등을 통해 한식의 가능성을 넓히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새라새의 한 상은 단순히 유명 셰프들이 함께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서울과 뉴욕, 레스토랑과 바라는 서로 다른 무대에서 축적한 경험이 한 코스 안에서 만나며 '지금의 한국 미식'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