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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00권, 느린 학습자 웃게 하다 [제17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

중앙일보

2026.06.16 08:01 2026.06.1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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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부문 - 함의영 ㈔피치마켓 대표
●1982년생 ●쉬운 글 책 첫 출간(2014) ●비영리 민간단체 피치마켓 설립(2015) ●사단법인 전환(2017) ●느린 학습자 독서교육 월간 매거진 출간(2019) ●쉬운 글 도서관 라이브러리 피치 개관(2022) ●느린 학습자 대상 교육 1만 명 돌파(2024) ●작은 도서관 서교펀활력소 개장(2026)

●1982년생 ●쉬운 글 책 첫 출간(2014) ●비영리 민간단체 피치마켓 설립(2015) ●사단법인 전환(2017) ●느린 학습자 독서교육 월간 매거진 출간(2019) ●쉬운 글 도서관 라이브러리 피치 개관(2022) ●느린 학습자 대상 교육 1만 명 돌파(2024) ●작은 도서관 서교펀활력소 개장(2026)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김소월 시인이 쓴 ‘진달래꽃’의 첫 구절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시적인 반어법과 역설을 이해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느린 학습자’라고 불리는 발달 장애인이나 경계선 지능인이 그런 경우다. 일부 교육 전문가들은 전체 인구의 약 14%가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문학작품의 어려운 표현을 쉬운 글로 바꿔보면 어떨까. “당신이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나를 보기 싫어서 떠나는 거라면…. 당신에게 떠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원작 고유의 운율이 달라지긴 했지만, 느린 학습자도 함께 글을 읽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여기서 소개한 구절은 사단법인 피치마켓이 느린 학습자를 위한 맞춤형 콘텐트로 바꾼 것이다. 피치마켓은 ‘진달래꽃’을 비롯해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 등을 쉬운 글로 바꿔서 소개했다. 지금까지 피치마켓이 펴낸 책은 단행본과 매거진을 포함해 약 300권에 이른다. 함의영(44) 피치마켓 대표는 “발달 장애인 등도 속도는 느리지만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위한 책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2014년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첫 번째 쉬운 글 책으로 펴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느린 학습자가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단어나 문장이 어려웠다. 그러자 함 대표는 특수학급을 찾아갔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숙제도 하고, 발표도 하고, 짝꿍과 손잡고 체험학습도 갔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함 대표에겐 느린 학습자가 주로 사용하는 문장 구조나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책은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 등을 담은 『오 헨리 이야기』였다. 부제는 ‘특별한 사람을 위한, 꼭 필요하지만 세상에 없었던 책’이라고 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함 대표는 “그걸 계기로 본격적으로 쉬운 글 책을 펴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책을 만든 뒤에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독서 모임을 꾸렸다. 초기엔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2022년 전용 도서관인 ‘라이브러리 피치’를 개관했다. 함 대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까지 간 학생이 잊히지 않는다. 현재는 사회복지사로 다른 이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피치마켓의 책은 문학작품에 그치지 않고 가전제품이나 카카오톡 메신저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누구나 읽기의 즐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세상’이 함 대표의 꿈이다. 지난 1월에는 서울시 지원으로 홍익대 입구 근처에 ‘서교펀활력소’라는 작은 도서관 겸 휴게공간도 마련했다. 함 대표는 “모든 사람이 정보의 격차를 넘어 글을 읽는 데 두려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17회를 맞은 올해의 수상자들은 각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과 함께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새 비전을 제시해 대한민국의 힘과 긍지를 세계에 떨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오준호 KAIST 석좌교수, 유명희 KIST 명예연구원, 김은미 서울대 교수, 주완 금융산업공익재단 이사장, 김봉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가 맡았다. 오세정 심사위원장은 “창조인상 수상자뿐 아니라 뛰어난 여러 후보자를 심사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리더들의 높은 창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민(維民) 홍진기(1917~86)
한국 최초 민간 방송인 동양방송(TBC)를 설립하고 중앙일보를 창간해 한국의 대표 언론으로 키웠다.




주정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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