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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 품은 해안길, 포도향 짙은 내륙길…250㎞ ‘맛있는 순례길’

중앙일보

2026.06.16 13:00 2026.06.1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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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은 코스가 여러 개다. 요즘은 포르투갈 길을 걷는 사람이 많다. 포르투갈 북부 내륙 도시 '폰테 드 리마'에서 큰 배낭을 짊어진 채 걷는 순례자의 모습.

산티아고 순례길은 코스가 여러 개다. 요즘은 포르투갈 길을 걷는 사람이 많다. 포르투갈 북부 내륙 도시 '폰테 드 리마'에서 큰 배낭을 짊어진 채 걷는 순례자의 모습.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산티아고)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스페인 북서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이 목적지다. 그 성당에 야고보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코스는 선택하기 나름이다. 유럽 어디에서 출발해도 산티아고 대성당에만 도착하면 된다. 순례의 전통은 1000년이 넘는다. 가장 유명한 길은 ‘프랑스 길’이지만, 요즘은 ‘포르투갈 길’의 인기가 만만치 않다. 지난달, 포르투갈 길의 핵심 구간을 걸어봤다. 길은 깨끗했고, 사람은 따뜻했고, 음식은 기막혔다.

한국 커플 천지, 포르투
포르투갈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포르투. 도우루강과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어우러진 야경이 낭만적이다.

포르투갈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포르투. 도우루강과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어우러진 야경이 낭만적이다.


지난해 산티아고 길 완보자는 53만명이었다. 45%는 프랑스 길, 35%는 포르투갈 길을 걸었다. 10년 새 전체 완보자가 2배 증가했는데, 포르투갈 길 완보자는 4.4배나 늘었다. 2019년 포르투갈 문화유산청이 순례길 인증제도와 관리체계를 정립하면서 걷는 이가 폭증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한적하고 물가가 싼 포르투갈 길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졌다.

포르투갈 길은 북부도시 포르투(Porto)에서 출발하는 게 일반적이다. 코스는 2개다. 해안길과 내륙길. 각각 250㎞ 정도로, 10~12일을 걷는다. 참고로 프랑스 길은 약 800㎞ 길이로, 보통 한 달 넘게 걸린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포르투 남쪽에 위치한 수도 ‘리스본’부터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이킹 전문 여행사 ‘포르투갈 그린워크스(Portugal Greenwalks)’의 파울로 로페스 대표는 “포르투갈 사람도 포르투부터 걷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며 “리스본~포르투 구간은 인프라가 열악하다”고 말했다.

포르투는 명성 자자한 '포트 와인'의 본산이다. 도우루강을 따라서 와이너리가 줄지어 있다. 사진은 1790년 설립한 '샌드맨(Sandeman)' 와인 저장고의 모습.

포르투는 명성 자자한 '포트 와인'의 본산이다. 도우루강을 따라서 와이너리가 줄지어 있다. 사진은 1790년 설립한 '샌드맨(Sandeman)' 와인 저장고의 모습.


포르투는 낭만적인 도시다. 도우루 강과 오래된 가옥이 어우러진 풍경이 그윽하고, 건물 외벽을 장식한 파란색 타일 ‘아줄레주’가 현란하다. 포르투는 명성 자자한 ‘포트 와인’의 본산이기도 하다. 샌드맨(Sandeman)을 비롯해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업체의 와인 저장고를 방문하고 시음도 할 수 있다.

포르투에서는 어디를 가나 한국인(특히 커플) 못지않게 배낭에 조개껍데기를 매단 순례객을 자주 마주친다. 대장정을 막 시작해서인지 모두 피부가 매끈하고, 걸음도 가볍다.

걷다가 만난 대서양의 맛
마토지뉴스 어시장은 꼭 들러볼 만하다. 신선한 해산물을 직접 고른 뒤 바로 옆 식당으로 가면 요리해준다.

마토지뉴스 어시장은 꼭 들러볼 만하다. 신선한 해산물을 직접 고른 뒤 바로 옆 식당으로 가면 요리해준다.

마토지뉴스에 자리한 통조림 회사 '핀하스'는 백년 기업이다. 공장을 둘러보고 정어리 등 다양한 통조림을 시식 수 있다.

마토지뉴스에 자리한 통조림 회사 '핀하스'는 백년 기업이다. 공장을 둘러보고 정어리 등 다양한 통조림을 시식 수 있다.


해안길부터 걸어봤다. 포르투에서 10㎞ 거리인 마토지뉴스(Matosinhos)는 내륙길을 걷는 여행자도 일부러 찾는 도시다. 맛난 음식 때문이다. 순례자라고 해서 딱딱한 빵만 먹는 건 아니다.

마토지뉴스 어시장은 노량진 수산시장처럼 이용한다. 상인에게 해산물을 산 뒤 아무 식당이나 가면 음식을 만들어준다. ‘테라 아 비스타(Terra a Vista)’라는 식당은 농어구이와 정어리구이뿐 아니라 대구살 튀김, 소시지 같은 곁들임 메뉴도 일품이었다. 어시장 인근, 100년 역사의 생선 통조림 회사 ‘핀하이스(Pinhais)’도 들러볼 만하다. 공장 투어, 시식도 할 수 있다.
포르투갈 해안길은 대서양변을 걷는다. 데크로드가 깔린 구간이 많아서 걷기 편하지만 해를 피하기 어려운 건 단점이다.

포르투갈 해안길은 대서양변을 걷는다. 데크로드가 깔린 구간이 많아서 걷기 편하지만 해를 피하기 어려운 건 단점이다.


해안길은 우리네 해파랑길과 닮았다. 바다 가까이 데크 로드가 깔려 걷기에 편했고,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대서양이 찬란했다. 다만 그늘이 드물어 금세 지쳤다. 길에서 만난 한국인 김유진(30)씨도 남유럽의 독한 햇살에 진이 빠진 기색이었다.

“이직을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으러 왔습니다. 무난한 코스라더니 만만치 않네요. 그래도 꼭 완주할 겁니다.”

비아나 두 카스텔로 언덕에 자리한 산타 루지아 성당.

비아나 두 카스텔로 언덕에 자리한 산타 루지아 성당.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 '더 린스 산타 클라라'. 객실에서 아베강과 대서양이 보인다.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 '더 린스 산타 클라라'. 객실에서 아베강과 대서양이 보인다.


도시의 면면도 흥미로웠다. 비아나 두 카스텔로(Viana do castelo)의 ‘산타 루지아(Santa Luzia) 성당’은 전망 좋은 언덕에 자리해 대서양이 훤히 내다보였다. 파리 몽마르트르에 자리한 사크레쾨르 대성당을 본따 지었다고 한다.

갯마을 빌라 두 콘데(Vila do conde)에서는 중세 수도원을 개조한 부티크 호텔 ‘더 린스 산타 클라라(The Lince Santa Clara)’가 고풍스러웠다. 순례길에 자리한 유일한 ‘미쉐린 2키’ 호텔이다. 순례자라고 해서 ‘알베르게(순례자 전용 숙소)’에서만 자는 건 아니다.

국경 건너 대성당까지
바르셀루스는 수탉 전설의 본고장이다. 마을 곳곳에 대형 수탉 모형이 있다.

바르셀루스는 수탉 전설의 본고장이다. 마을 곳곳에 대형 수탉 모형이 있다.


내륙길은 흔히 떠올리는 순례길 이미지와 가까웠다. 오래된 성당이 있는 산골 마을을 통과했고, 포도밭과 목장을 스쳤고, 다정한 미소를 건네는 주민과 순례자를 만났다.

바르셀로스(Barcelos)는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수탉 전설의 본고장이다. 과거 한 순례자가 도둑으로 누명을 썼다. 그가 “이 구운 수탉이 울면 내가 결백하다는 뜻”이라며 결백을 호소했더니 닭이 벌떡 일어났단다. 마을 곳곳에 거대한 수탉 모형이 있다. 기념품도 죄 수탉이다.
폰테 드 리마의 식당 '페티스카스'에서 맛본 해물밥. 국밥 같기도 하고 죽 같기도 하다. 마늘을 많이 넣었다.

폰테 드 리마의 식당 '페티스카스'에서 맛본 해물밥. 국밥 같기도 하고 죽 같기도 하다. 마늘을 많이 넣었다.

폰테드리마에 자리한 부티크 호텔 '파수 드 비토리노'의 객실. 귀족집 안방 같은 분위기다.

폰테드리마에 자리한 부티크 호텔 '파수 드 비토리노'의 객실. 귀족집 안방 같은 분위기다.


폰테 드 리마(Ponte de lima)는 로마 시대에 건설된 고도(古都)다. 12세기에 건국한 포르투갈보다 오래 묵은 도시답게 예스러운 멋이 흐른다. ‘페티스카스(Petiscas)’라는 식당에서 맛본 해물밥이 기억에 남는다. 아귀·새우·쌀을 넣고 토마토·마늘 소스로 뭉근하게 끓였는데, 친근한 집밥 같았다.

도시에 외곽에 자리한 호텔 ‘파수 드 비토리노(Paço de Vitorino)’는 16세기에 지은 귀족 가문의 저택이다. 조각상과 분수가 어우러진 정원이 우아하고, 객실과 식당 등 실내 공간은 기품이 느껴진다. 차분한 색감의 꽃무늬 장식을 한 커튼과 카펫, 소파 그리고 손때 묻은 가구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완주의 감격을 나누는 모습.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완주의 감격을 나누는 모습.

초로의 순례자들은 환호하며 대성당으로 진입했다. 대장정을 마친 사람들의 세레모니는 각양각색이다.

초로의 순례자들은 환호하며 대성당으로 진입했다. 대장정을 마친 사람들의 세레모니는 각양각색이다.


최북단 도시 발렌사(Valenca)에서 미뉴 강을 건너니 스페인이었다. 내륙길이든 해안길이든 절반은 스페인 구간이다. 5월 30일 정오께 산티아고 대성당 마당은 순례객으로 북적였다. 다리를 절룩이고, 길동무와 얼싸안고 울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했다.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이탈리아인 순례자 샤리아 디베라르디노는 “2년 새 아버지를 여의고 연인과 헤어지며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며 “길을 다 걷고 나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라며 감격했다.

여행정보
포르투갈 순례길은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도 많다. 200km 이상 자전거로 이동하면 완주를 인정해준다.

포르투갈 순례길은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도 많다. 200km 이상 자전거로 이동하면 완주를 인정해준다.

한국에서 포르투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번엔 KLM네덜란드항공을 이용했다. 인천에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포르투로 들어간 뒤 순례를 마치고 산티아고에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를 탔다. KLM이 지난달 암스테르담~산티아고 주 2회 노선을 신설해 이처럼 효율적인 여정이 가능했다. 인천~암스테르담 12~14시간, 암스테르담~포르투·산티아고 약 2시간 30분 소요. 암스테르담~포르투 노선은 하루 4회 운항한다.

‘포르투갈 그린워크스(Portugal Greenwalks)’ 같은 현지 여행사가 순례길 코스 안내, 숙소 예약, 짐 운반 등을 도와준다. 자전거도 빌려준다. 많은 순례자가 자전거를 타고 콤포스텔라로 이동한다. 하나투어를 비롯한 국내 여행사도 포르투갈 길 걷기여행 상품을 판다.



최승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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