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오바마 합의’는 핵의 길, ‘트럼프 합의’는 핵의 벽…과연 그럴까?

중앙일보

2026.06.17 23:55 2026.06.18 00:1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이란과 맺은 양해각서(MOU)를 ‘트럼프 합의’라고 칭하며 “핵무기로 가는 것을 막는 벽”이라고 자평했다. 이어 2015년 오바마 행정부 때 체결한 핵합의(JCPOA)를 ‘오바마 합의’라고 규정하며 “그것은 핵무기로 가는 길이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이란과 체결한 양해각서에 대해 "핵무기로 가는 것을 막는 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이란과 체결한 양해각서에 대해 "핵무기로 가는 것을 막는 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JCPOA 협상에 참여했던 로버트 맬리 전 이란 특사는 “두 합의는 근본적으로 다른 맥락의 합의로, 둘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JCPOA가 핵 프로그램에 대한 본합의였다면, 이날 MOU는 본협상 시작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농축 우라늄 97% 반출 vs ‘희석’까지만 합의


JCPOA에 따라 당시 이란은 15년간 3.67%로 우라늄 농축이 제한됐다.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막는 대신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농축 권한은 인정한 조치다. 또 우라늄 보유 초과분은 국외로 반출하기로 하면서 이란은 우라늄의 97%를 러시아로 넘겼다. 그러나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JCPOA가 폐기된 이후 이란은 핵무기 10~12개를 만들 60%의 고농축 우라늄 440㎏을 확보하게 됐다.

미국·이란 종전 양해각서(MOU) 초안 14개항 전문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블룸버그 통신]

미국·이란 종전 양해각서(MOU) 초안 14개항 전문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블룸버그 통신]

이란은 이날 트럼프 행정부와 맺은 MOU에 “핵무기를 조달하거나 개발하지 않을 것을 재확인한다”는 문구를 넣는데 합의했다. ‘재확인’이라는 표현은 지금까지 반복해온 “핵무기 개발 의도가 없다”던 주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양측은 또 고농축 우라늄과 관련해선 ‘최소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독 하에 현장(이란)에서 희석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라늄 반출 관련 합의는 없다. 이를 포함한 핵 관련 협의는 60일간의 본협상에서 다루기로 했다. 우라늄 희석 외에는 모두 미정 상태란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럼에도 이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 프랑스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들은 농축 물질을 우리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에 대해선 “실제로는 가치가 크지 않다”고 했다. 우라늄 반출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의 ‘레드라인’으로 제시했던 조건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이란과 체결한 양해각서에 대해 "핵무기로 가는 것을 막는 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이란과 체결한 양해각서에 대해 "핵무기로 가는 것을 막는 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JCPOA가 15년으로 규정했던 우라늄 농축 금지 시한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권한을 갖고 있는데 그들에게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며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한을 일부 인정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이행시 스냅백 작동 vs 전쟁으로 해결


JCPOA와 이번 MOU는 큰 틀에서 이란의 성실한 합의 이행에 상응한 보상을 해준다는 기본적인 개념에서 유사하다. 다만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견제장치에서 차이를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뒤 스위스 제네바 공항에서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뒤 스위스 제네바 공항에서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JCPOA에는 이란이 합의를 위반할 경우 기존의 제재를 자동으로 복원하는 안전장치인 ‘스냅백 조항’이 포함돼 있다. 다만 JCPOA가 유지되던 2015~2018년 스냅백이 발동된 적은 없다. IAEA가 지속적으로 의무 준수를 확인하는 1차 안전장치가 추가돼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MOU엔 합의 위반에 대한 견제 장치가 없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 합의는 99%의 확률로 이란이 핵무기를 가질 수 없게 하는 것”이라며 합의 미이행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협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준수할 때까지 다시 폭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본협상만 20개월 vs 60일 안에 완료


오바마 행정부는 JCPOA 합의 이전인 2013년 체결된 임시 합의 성격의 ‘공동행동계획’(JPOA), 이른바 ‘제네바 잠정합의’를 도출하는 데만 6개월을 썼고, 검증하는 데 별도로 6개월이 걸렸다. 그리고도 본합의인 JCPOA가 타결되는데까지 20개월이 추가로 소요됐다.

현지시간 17일 이란 반다르압바스 해변 인근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는 선박들. 로이터=연합뉴스

현지시간 17일 이란 반다르압바스 해변 인근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는 선박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모든 과정을 60일 안에 끝내겠다고 했다. 더구나 이번엔 핵에만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종전과 호르무즈해협, 전쟁 피해 복구 등 합의해야 할 사안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MOU가 “현재의 분쟁을 끝내고 호르무즈해협을 다시 열고 이란이 결코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다.

특히 이란에 제시한 다층적 보상은 협상을 더 어렵게 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당장 이란은 즉각 원유 수출을 재개할 수 있다. 또 묶여 있던 막대한 동결자금을 비롯해 ‘최소 3000억 달러’의 재건비용을 추가로 얻게 된다. 특히 60일간 호르무즈해협을 무료로 개방한 뒤에는 통행료를 부과하는 등 협상의 강력한 지렛대로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현지시간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르사유궁에서 진행된 만찬을 마친 뒤 전용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지시간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르사유궁에서 진행된 만찬을 마친 뒤 전용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은 수익이 다시 유입되면 당면한 경제 위기를 완화할 수 있지만, 미국은 협상에서 중요한 지렛대를 잃게 된다”며 “이는 이란이 60일 협상을 수개월 또는 수년으로 늘릴 동기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정보당국 관계자도 CNN에 “미국이 해협 통제권을 넘긴 것은 협상에서 핵무기보다도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최악의 외교 실책”…마가·공화당도 비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베르사유궁에서 진행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주최 만찬 도중 이란과의 MOU에 직접 서명했다. 19일로 예정됐던 서명식이 앞당겨지면서 이란에 대한 대규모 제재 해제 등의 일정도 빨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진행된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화려한 왕실문화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해 그를 베르사유궁 만찬에 초청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진행된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화려한 왕실문화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해 그를 베르사유궁 만찬에 초청했다. AP=연합뉴스

이에 대해 공화당 소속 빌 커시디(루이지애나) 상원의원은 “이란의 핵 야심은 억제되지 않았고, 호르무즈해협을 위협하면 통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레이건이 무덤에서 뒤척일 정도로 수십년간 최악의 외교 실수”라고 비판했다. 대(對)이란 강경파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우리를 죽이려는 신정주의 광인들에게 수십억 달러를 주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과 경선을 치렀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대이란 공습을 지지하면서도 “제재를 풀고 돈을 풀어주는 것은 우리가 방금 파괴한 위협을 재건하도록 돈을 대는 거대한 실수”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지지해온 ‘마가(MAGA)’ 진영에서도 강한 우려가 나왔다. 보수논객 벤 샤피로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를 “재앙”이라고 불렀고, 또 다른 논객 에릭 에릭슨은 소셜미디어에 “미국의 항복”이라고 썼다.



강태화([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