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축구 전설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은 지난 17일(한국시간) 아르헨티나와 알제리의 조별리그 J조 1차전에서 경기장에 나타나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골망을 흔들자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메시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한 알제리 대표팀의 골키퍼가 바로 그의 둘째 아들 루카 지단(28·그라나다)이었기 때문이다.
루카는 어릴 적부터 남다른 재능으로 주목받았다. 2004년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 입단해 골키퍼로 성장했고, 아버지가 레알 마드리드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17~18 시즌에는 백업 골키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함께 경험하기도 했다. 이후 스페인 하부리그로 밀렸다가 2024년 스페인 2부 그라나다로 이적해 주전 자리를 꿰찼다. 183㎝로 골키퍼치고는 단신이지만,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뛰어난 빌드업 능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루카의 국적이 처음부터 알제리였던 것은 아니다. 유소년 시절에는 프랑스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2015년 UEFA 유럽 U-17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판도가 바뀐 것은 지난해 알제리 축구협회가 루카에게 국적 변경과 대표팀 합류를 제안하면서다. 알제리 국적법상 부모가 알제리인이면 자녀는 출생지와 관계없이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 루카의 친조부모와 아버지 지네딘 지단이 알제리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루카는 미디어 매체 ‘비인스포츠 프랑스’를 통해 “대표팀에 소집될 때마다 할아버지가 무척 자랑스러워하신다”고 전했다. 아버지 지단 역시 “결정은 너의 몫”이라며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적 변경 후 루카는 알제리 대표팀의 골문을 지키며 A매치 7경기에서 안정적인 선방을 선보였다. 지난 4월 알메리아전에서 상대 선수와 크게 충돌해 뇌진탕과 턱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수술 후 안면 보호 마스크 투혼을 발휘하며 이번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루카는 아버지의 위대한 커리어라는 무거운 짐을 평생 짊어져야 했다. 레알 마드리드 유스 시절에는 ‘루카 지단’ 대신 어머니의 성을 딴 ‘루카 페르난데스’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알제리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도 유니폼에 ‘지단’ 대신 ‘루카’만을 마킹했다. 루카는 2023년 스페인 매체 ‘레레보’와의 인터뷰에서 “네가 이룬 모든 것은 아버지 덕분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고, 이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쏟아부은 노력들이 모두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루카를 포함해 지단의 네 아들은 모두 축구선수다. 전원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서 뛰었다. 아버지와 같은 포지션인 중앙 미드필더 셋째 테오 지단(24)은 스페인 2부 코르도바에서, 넷째인 중앙 수비수 엘리아스 지단(21)은 레알 베티스 2군에서 활약 중이다. 첫째 엔조 지단(31)은 스페인 하부리그에서 뛰다 2024년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