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 봉쇄로 어려움을 겪는 쿠바가 기존 사회주의 국가 경제 틀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친(親)시장 개혁 대책을 발표했다. 60여년 간 정통 사회주의와 국가 주도 계획경제를 고수한 쿠바가 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마누엘 마레로 쿠바 총리는 18일(현지시간) 쿠바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176개의 친시장 개혁개방 대책을 발표하고, 입법 절차에 착수했다. 마레로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시장을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위한 도구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발언이다.
대책에는 국영 기업의 개혁과 자율성 강화, 민간 기업 기회 확대, 가격 상한제 폐지, 외국인 투자 활성화 조치, 금융시스템 현대화 등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쿠바 내 168개 지방자치단체에 독립적인 기업 승인권, 수출입 및 외화 관리 권한을 부여해 기존 중앙집권식 계획경제 틀을 해체한다. 중앙 정부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27개 부처를 21개로 대폭 감축하기로 했다.
2000개에 달하는 국영기업은 주식·지분 거래를 가능하도록 하고 독자적 임금 체계 설계, 이윤 분배 자율권도 준다. 직원이 100명 넘는 사기업을 세울 수 있도록 하고, 1명이 여러 개 기업을 소유하는 것도 허용한다. 쿠바 혁명 이후 민생을 지탱한 기본 배급제 보조금은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시장 가격제’로 바꾸기로 했다. 쿠바 경제학자 다니엘 토랄바스는 AFP 통신에 이번 조치를 “1959년 피델 카스트로 혁명 이후 가장 심오한 경제 개혁 프로그램이자 국가 경제 개발 모델의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개혁이 쿠바의 이념적 기반인 공산주의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는 시도는 아니다. 정치적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의 고삐를 바짝 쥐되, 경제적으로는 사유화와 시장 경제 체제를 전면 수용해 정권 붕괴를 막는 실리적 통치 전략에 가깝다. 쿠바가 벤치마킹하겠다고 공언한 중국의 개혁·개방과 베트남의 ‘도이모이 노선’이 대표적인 모델이다. 두 국가 모두 공산당 권력 기반을 지키며 경제 체제는 시장 개방 노선을 채택해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쿠바는 올해 1월부터 미국의 대대적인 봉쇄 조치 이후 전력·에너지·생필품난을 겪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쿠바 경제를 지탱하는 군산복합체 ‘가에사’(GAESA)와 거래 기업을 겨냥한 미국의 2차 제재로 호텔과 금융사 등 글로벌 기업이 잇달아 철수하며 경제난이 한층 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