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 황금박쥐, 배트맨, 그리고 흡혈귀. 어린 시절 박쥐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문화적 상징이었다. 실제 박쥐를 본 것은 어느 번개 치던 어둑한 여름 저녁이었다. 아파트 복도로 날아 들어온 박쥐 한 마리에 또래 꼬마들과 호들갑을 떨며 두려워했다. 코로나 19 대유행 때도 박쥐는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됐다. 박쥐가 다양한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현재 진행 중인 에볼라 유행에서도 과일박쥐들이 바이러스의 원래 숙주로 지목된다.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류임에도 낯설고 위험한 존재. 박쥐는 오래 오해받아 왔다. 책은 그런 편협한 선입견 너머에 있는 경이로운 풍경을 펼쳐 보인다. 인간과 닮지 않았다 해서 쉽게 간과되지만 박쥐는 포유류의 진화에서 가장 성공한 종이다. 놀라운 지능과 사회성, 교묘한 감각 체계를 갖고 있다.
박쥐는 전 세계 포유류의 20%를 차지하며, 2g짜리 초소형 종부터 날개 길이가 1.5m에 이르는 대형 종까지 1500여종에 이른다. 박쥐가 가진 ‘천재성’의 핵심은 반향정위(Echolocation)다. 입이나 코로 초음파를 쏘아 보내고 물체에 부딪혀 돌아오는 메아리를 듣는 시스템이다. 0.1㎜ 수준의 아주 미세한 물체의 움직임, 나방의 날갯짓이 만드는 떨림까지 감지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레이더나 소나(음파탐지기)보다 탁월하다.
박쥐는 초음파 메아리로 길을 찾는 정도가 아니라 초음파의 반사파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먹이와 장애물, 다른 개체를 구분한다. 동료가 먹이를 발견했을 때 내는 신호까지 활용해 사냥 효율을 높인다. 수백만 마리가 한 동굴에 살면서도 서로의 목소리를 정확히 알아듣는다. 동굴 안의 소음처럼 들리던 박쥐 울음소리가 실은 영역 다툼과 구애, 거부와 경고 등 다양한 의미를 담은 의사소통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반향정위는 해부학적 구조부터 사회성 행동까지 박쥐의 거의 모든 생활사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소리로 물체의 모양을 구분하는 박쥐는 시간을 기준으로 환경을 파악한다. 공간적 거리를 기준으로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인간과 다르다.
박쥐들도 특정 개체와 지속해서 함께 행동하고 먹이 정보를 공유하며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유대를 유지한다. 흡혈박쥐는 굶주린 동료에게 자신이 먹은 피를 토해 나누어 준다.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서로 돕는 의리가 있으며,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는 박쥐는 조직에서 ‘손절’된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교의 동물행동학자이자 신경생물학자인 저자는 열대우림의 진흙탕에서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을 오가며 20년 넘게 박쥐를 연구했다. 반향정위에 기초한 박쥐의 생태와 사회성을 행동관찰과 신경정보 처리, 양면에서 살펴본다. 초소형 센서를 직접 개발하는 등 기술도 적극 활용한다. 박쥐에 부착해 둔 초소형 GPS를 찾기 위해 섭씨 40도 사막에서 6시간 산을 탄 끝에 박쥐의 하룻밤을 온전히 추적해 낸 이야기도 실감나게 풀어냈다. 이렇게 첨단 장비를 짊어지고 가봉의 밀림과 태국의 외딴 섬으로 향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책에 생생한 현장감을 더한다.
5200만 년 전 고대 박쥐 화석에서 보이는 날개와 귀 구조를 연구하는 이들은 비행 능력이 먼저인가, 초음파를 쏘는 반향정위 능력이 먼저인가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뼈와 화석, 유전자를 단서로 수천만 년 전 최초의 박쥐가 하늘로 날아오른 극적인 진화의 순간을 재구성하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이 이어져 왔다. 박쥐가 어떻게 길을 찾는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화석과 유전자, 고된 야외연구와 초정밀 실험장비가 모두 촘촘히 엮인 새 시대가 열렸다. 수십 년에 걸친 거대한 흐름을 물 흐르듯 그려냈다. 박쥐만큼이나 경이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