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자 허명회 고려대 명예교수는 16일 인터뷰에서 “‘쌍둥이 득표’를 놓고 끝까지 싸울 순 없다. 서로 가짜 틀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니까”라며 “그래서 재검표 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계적으로 불가능’이란 취지의 부정선거 주장에 대해 가능하다는 반박 글을 올렸다. 김정훈 기자
축구 경기는 11명이 한 팀으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상대편 11명에 주심 1명까지, 총 23명이 경기장에 모였을 때 적어도 두 명의 생일이 겹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대충 ‘절반(50.73%)’이다. 굉장히 드물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생각보다 훨씬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설명할 때 통계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예시인 이른바 ‘생일 역설(Birthday Paradox)’이다.
생일 역설은 현실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16일 고려대 SK미래관에서 만난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가 들려준 일화다. 허 교수는 1974년 서울대 자연계열에 입학해 이듬해 처음 신설된 계산통계학과로 갔다. 당시 한 학년 정원이 20명이었는데, 허 교수와 생일(8월 7일)이 같은 동기가 2명이나 더 있었다. 더욱이 그 중 1명은 태어난 시간대까지 ‘인시(寅時)’로 일치했다.
허 명예교수는 “‘우연’이라는 게 실제로도 일어나는 일이고, 사실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며 “그래서 ‘이 문제’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6·3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쌍둥이 득표’ 현상에 대해 “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글을 여러 차례 올린 이유다. 그는 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의 부친이기도 하다. 허 명예교수는 “아들과는 이 문제를 두고 이야기한 적도 없다”는 점을 인터뷰에서 분명히 했다.
Q : 생일 역설은 생각보다 높은 확률을 보여준다.
A : “MBTI도 마찬가지다. 몇 명이 모여야 최소 두 사람의 MBTI가 같을 확률이 50%를 넘을까. 계산해보면 6명만 모여도 그 확률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 MBTI 유형은 16개 조합이다. 그렇다면 6명의 MBTI가 모두 서로 다를 확률은 1×(15/16)×(14/16)×(13/16)×(12/16)×(11/16)으로 계산되는데, 약 0.343이 나온다. 따라서 적어도 두 사람이 같은 MBTI를 가질 확률은 1-0.343=0.657, 즉 65.7%다. 즉, 6명이면 겹칠 확률이 절반을 넘는다.(여기서 MBTI의 각 유형이 빈도적으로 같은 크기라고 가정되었다.)”
‘필즈상’ 프린스턴대 허준이 교수가 아들
Q : 직관적 예상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다.
A : “어떤 사람들은 ‘수학을 몰라도 세상 돌아가는 건 다 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직감이 있어서 ‘이렇게 하면 아마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판단한다. 많은 문제들에 그런 직감이 잘 작동하지만 어떤 문제들에선 크게 어긋난다. 그런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확률이다.”
Q : 왜 그런 차이가 나오나.
A : “경험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가장 익숙한 수학은 기하학이다. 점·선·면·도형·공간을 다루는 기하학적 사고는 구석기 시대부터 오랜 시간 축적돼 왔다. 반면 확률론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학문이다. 일반적으로 17세기 수학자들인 블레즈 파스칼과 피에르 드 페르마가 도박판의 판돈 분배 문제를 놓고 주고받은 서신을 확률론의 출발점으로 본다. 역사가 길어야 400~600년에 불과한 만큼 사람들에게 충분히 훈련되지 않았고, 익숙지도 않다고 봐야 할 것 같다.”
Q : 얼마 전 인천 연수구 송도1동과 송도2동의 사전투표 결과에서 1·2위 후보의 득표수가 동일하게 나온 것을 두고 “놀랄 일이 아니다”란 글을 올렸다.(※각각 관내 사전투표에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선인과 유정복 국민의힘 후보는 동일한 3030표, 1440표씩 얻었다.)
A : “생일 역설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인천에는 약 150개의 읍·면·동이 있고, 실제 사전관내투표 최다는 남동구 논현고잔동 6168명이었는데 가능한 최다값을 넉넉잡아 7500명이라고 하자. 이때 적어도 2개 읍·면·동이 같은 투표자 수를 기록할 확률은 77.5%다. 모든 읍·면·동의 사전투표자 수가 모두 다를 확률이 22.5%이어서다.인천에서 이번에 ‘쌍둥이 득표’가 한 쌍 나왔지만, 경우에 따라 2개 이상 나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다.”
인천(266만3459명)은 전체 선거인수(4464만9908명)의 약 5.97%를 차지한다. 인천에서 투표자 수가 일치하는 읍·면·동 수가 쌍둥이 득표가 평균 1.5개로 예상되니 전국으로 단순 확대 적용하면 약 30개의 쌍둥이 득표가 나올 수 있다는 게 허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과거 선거에서도 우리가 찾아보지 않았을 뿐,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항분포(n번의 독립시행에서 각 시행의 성공확률이 p로 일정할 때 성공 횟수가 k번이 될 확률을 나타내는 확률분포)’ 모형으로 인천의 쌍둥이 득표가 이해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인천에서 앞면과 뒷면만 있는 어떤 동전을 4470번 던졌을 때 딱 앞면이 3030번, 뒷면이 1440번 나오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내 계산으로는 그런 결과가 다시 나올 확률이 약 0.9%였다. 다소 낙관적인 추정일 수는 있지만 다른 통계학자들의 계산 결과도 0.6% 정도로 나오더라. 중요한 것은 하여튼 가능하다는 거다.” 그러니 A후보 O표, B후보 △표가 동시에 나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김주원 기자
사전투표서 쌍둥이 득표, 규모가 작기 때문
Q : 전남광주 사전투표에서는 ‘다섯 쌍둥이 득표’가 나왔다.
A : “전남광주는 이번에 통합 특별시로 출범하면서 읍·면·동 수가 크게 늘어났다. 대략 400개 정도(광주 96개, 전남 297개로 총 393개)에 이른다. 가능한 조합의 수도 많아지니 겹칠 확률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전남광주에서는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의 득표율이 80%(79.01%)에 육박했다. 이렇게 되면 소위 엔트로피(무질서도)가 낮아진다고 말한다. 결과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특정 방향으로 값이 집중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결과를 예측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그리고 실제로 득표수가 겹치는 곳들을 보면 전체 투표자 수가 300~400명 규모로 비교적 적은 곳이 많다.”
Q : 유독 사전투표에서 쌍둥이 득표 현상이 발견되나.
A : “그건 사전투표의 규모가 본투표보다 작기 때문이다. 송도1·2동도 본투표 날 투표자 수는 사전투표 때보다 훨씬(모두 약 5배) 늘어났다. 모집단이 커질수록 전체 투표자 수가 겹칠 가능성도 낮아지고, 설령 전체 투표자 수가 같더라도 1·2위 후보의 득표수가 서로 일치되는 결과가 나오기는 더 힘들어진다. 결국 집단의 크기가 중요한 변수다.”
Q : 일각에선 ‘통계학적 속임수’라는 반론도 있었고 직접 페이스북에도 소개도 했다. 해당 교수는 다섯 쌍둥이 득표가 나올 확률을 광역자치단체 기준으로 약 3700년에 한 번 나올 확률이라고 계산했다.
A : “본인은 다르게 본다면서 자신의 분석을 보내줬다. 살펴보니 사용하는 ‘모형’이 나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었다. 그 교수의 모델 역시 충분히 타당하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직접 소개한 것이다. 그분은 제3후보까지 포함해 분석했더라.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구조적인 유사성을 살펴본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쯤에서 허 명예교수는 모형(模型)의 한자 뜻을 아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모(模)자에는 ‘모사(模寫)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수학적 모형을 쓴다는 것은 결국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흉내낸 틀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모형을 세우느냐에 따라 현실 문제를 해석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모형이라도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 인간은 결국 어떤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영국의 통계학자 조지 E P 박스의 격언도 소개했다. “모든 모형은 틀렸지만, 어떤 모형은 유용하다(All models are wrong, but some are useful).” 허 명예교수는 “어떤 모형도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어떤 모형은 현실에 조금 더 근사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모델이 더 현실적 근사치로 여기는 듯했다.
그래선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9일 “유정복 후보와 박찬대 후보의 득표수가 완전히 일치할 확률은 5억9000만분의 1”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 “그 수치가 어떻게 계산됐는지는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Q : 결론적으로 해당 선거구에 대한 선관위의 재검표를 요구하셨는데.
A : “지금 제기되는 의혹은 결국 입력 과정에서 카피 앤 페이스트(복사·붙여넣기)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것 아닌가. 의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논리만으로 설득이 되지 않을 때는 ‘왜 이해를 못 하느냐’고 할 게 아니라 데이터를 공개해 검증받으면 된다. 내가 선관위 책임자라면 오히려 먼저 공개하자고 나설 것 같다. 그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