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사: 악귀의 속삭임' 속 한 장면. 박수무당 명진(김재중)과 유미(공성하)가 폐신사 인근 터널에서 실종 학생을 찾고 있다. [사진 로아앤코홀딩스]
일본 폐신사의 정체 모를 악귀, 귀신보다 무서운 스토커…. 한국 공포 영화들이 여름 성수기 극장가에 연이어 걸린다. 오컬트 호러물 ‘신사: 악귀의 속삭임’(17일 개봉)과 서스펜스 스릴러 ‘눈동자’(24일)다. 영화 ‘살목지’의 배턴을 이어받아 여름 성수기 극장에서 흥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사…’는 일본 고베의 한 폐신사에서 한·일 대학생들이 실종되거나 악귀에 씌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에서 시작된다. 박수무당 명진(김재중)이 학생 인솔자인 유미(공성하)와 함께 실종된 학생들을 찾아 나선다. 이들이 마주한 건 한(恨)도, 해원(解冤)의 욕구도 없는 정체 모를 악귀의 흔적과, 왠지 사제복을 입은 현지 한인 목사의 동행. 일부 어설픈 설정과 감정 연기는 아쉽지만, 신선한 소재와 스토리의 반전, 실제 고베 폐신사 올 로케이션 촬영이 담아온 서늘한 분위기는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영화 '신사: 악귀의 속삭임' 속 한 장면. 한 남성이 붉은 빛의 제단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다. [사진 로아앤코홀딩스]
이른바 ‘K 샤머니즘’과 ‘J 호러’의 만남에, 서구 오컬트적 요소도 실타래처럼 얽혔다. 무채색의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러닝타임 96분 내내 고독한 분위기를 풍기는 김재중표 박수무당도 색다르다. 주연 배우들이 한국인이지만 한국 영화 같지 않은 낯선 느낌이 드는 것도 영화의 특징이다. 김재중은 최근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촬영도 일본에서 했지만,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님을 비롯해 스태프도 모두 일본 분들이었다”며 “그런 덕분에 J호러의 느낌이 잘 살았다”고 했다.
━
1인 2역의 신민아가 쌓아 올리는 심리적 압박
신민아가 1인 2역을 연기한 서스펜스 스릴러 ‘눈동자’는 스페인의 유명 스릴러 영화인 ‘줄리아의 눈’(2011)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105분 내내 귀신보다 무서운 스토커가 숨통을 조여온다. 유전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 서진(신민아)이 같은 병을 앓던 쌍둥이 동생 서인(신민아)의 사망 원인을 형사 도혁(김남희)과 함께 추적한다. 서진은 자신을 스토킹하던 범죄자에 이어, 동생을 스토킹하던 정체 모를 인물의 타깃이 된다.
영화는 심리적 압박으로만 불안과 공포심을 야기하는 점에서 고전적인 서스펜스의 구조를 가졌다. 시력을 잃어가는 상태에서, 자신을 집요하게 쫓는 이를 피해야 한다는 사실은, 집에서조차 숨 쉴 수 없는 긴장을 낳는다. 신민아의 초점 잃은 동공 연기와 김남희의 광기 어린, 하지만 불안하게 억눌린 감정적 에너지가 양쪽에서 극을 팽팽하게 당긴다.
영화 '눈동자' 속 한 장면. 각막 재건술을 받은 서진(신민아)이 사망한 동생 서인의 집에 머물고 있다. [사진 바이포엠 스튜디오]
━
다양한 소재 공포물 흥행
올해 상반기 국내외 극장가에선 다양한 소재의 공포물이 흥행했다. 국내에선 ‘살목지’를 비롯해 외화 ‘백룸’이 각각 300만, 100만 관객을 기록했고, 북미에서도 저예산 ‘백룸’ ‘옵세션’이 스타워즈 대작인 ‘만달로리안과 그로구’의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일주일 만에 꺾어 화제가 됐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공포물은 원래도 극장에서 보기 좋은 장르인데, 최근엔 과거보다 장르가 다양하고 스토리도 탄탄해졌다”며 “과거 흥행작인 ‘여고 괴담’처럼 놀라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를 담으면서 관객층도 확대됐다”고 말했다.
유튜브의 공포 콘텐트가 영화로 확대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백룸’이 대표적이다. 노란 벽지의 사무실이란 ‘리미널 스페이스’(낯선 느낌을 주는 익숙한 공간) 이미지에서 확장된 인터넷 하위문화를 스크린에 맞게 재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누적 매출 2억6000만 달러(약 3700억원)로, 순 제작비(약 140억원)의 25배 넘는 매출을 달성하며 미국 독립영화 제작·배급사 ‘A24’ 역사상 최고 흥행작이 됐다. ‘살목지’도 유튜브 ‘심야 괴담회’에서 다뤄진 소재다. 김 평론가는 “실화 기반의 괴담 콘텐트, 카메라 들고 흉가를 체험하는 콘텐트 등 인기 있는 공포물이 검증된 소재의 출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침체된 영화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저예산 제작이 가능하단 점도 다양한 시도의 조건이 된다. 국내 제작사 런업컴퍼니와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한 베트남 영화 ‘화씨저택’은 호치민시의 실존 괴담 장소를 소재로 한, 베트남 최초 ‘파운드 푸티지’(우연히 발견된 출처 불명 비디오 형식) 공포물이다. 파운드 푸티지는 장르 특성상 화려한 세트나 고가의 CG, 카메라 장비 대신, 핸디형 카메라나 CCTV 같은 거친 화면 연출을 주로 사용해 제작비가 적게 든다. 영화는 19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개봉 6일 만에 손익분기점(누적 50만명)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