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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탈모 유감

중앙일보

2026.06.21 08:08 2026.06.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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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정책사회부 기자

이에스더 정책사회부 기자

직장인 정모(33)씨는 20대 후반부터 머리숱이 눈에 띄게 줄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고, 이성을 만날 때 위축되기도 했다. 지금은 탈모 치료제를 꾸준히 먹는다. 한 달 약값은 5만~6만원가량. 여기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면 본인 부담은 2만원 안팎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건보(적용) 해주면 좋겠지만, 안 된다고 크게 부담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탈모의 고통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젊은 나이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경험은 단순한 외모 고민을 넘어 대인관계와 자존감,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취업과 연애, 사회생활에서 위축감을 느낀다는 호소도 적지 않다. 건강보험이 오직 생명 연장 치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질환에 공적 보장을 논의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대선 당시 공개했던 ‘탈모 공약’ 영상. [사진 유튜브 캡처]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대선 당시 공개했던 ‘탈모 공약’ 영상. [사진 유튜브 캡처]

문제는 순서다. 건강보험은 한정된 공동 재정이다. 새 혜택을 만들 때는 그만큼의 절박성과 우선순위가 설명돼야 한다. 지금도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필수의료 보상, 예방접종, 만성질환 관리 등 건보 재정을 기다리는 과제가 줄을 서 있다. 비급여 약값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거나, 생명과 직결된 신약을 기다리는 환자들도 있다. 이들과 비교하면 탈모약값 부담은 결이 다르다. 건보가 되면 도움이 되지만, 치료 지속을 좌우할 장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번 급여화하고 나면 되돌리기 힘들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건강보험이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삼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인 임플란트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이 기준은 단순한 세대 배려가 아니었다. 치아 상실로 씹는 기능이 떨어지고 영양과 건강 유지가 어려워지는 고령층의 의학적 필요, 고액 치료비 부담, 단계적 확대와 재정 추계가 함께 제시됐다.

정부가 탈모 치료를 20~34세 청년, 사실상 남성 중심으로 지원하려 한다면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왜 이 연령대가 우선인가. 왜 지금인가. 재정은 얼마나 들고, 장기 처방이 늘어날 때 건보는 감당할 수 있는가. 중증질환과 필수의료보다 앞설 만큼의 의학적·사회적 근거는 충분한가. 특히 특정 세대와 성별에 혜택이 집중되는 방식이라면 더 엄격한 설명이 필요하다. 사회보험은 선의만으로 설계될 수 없고, 납득 가능한 기준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탈모는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앞자리에 앉히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이행의 속도가 아니라, 한정된 재정을 어디에 먼저 쓸 것인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이에스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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