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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디올·맥퀸...디자이너 상상력 가득한 패션 놀이터에 가다

중앙일보

2026.06.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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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완성된 옷으로 기억되지만, 그 시작은 늘 보이지 않는 생각 한 조각에서 출발합니다. 꽃 한 송이, 접힌 종이 한 장, 빛과 그림자의 순간이 우연한 상상을 이끌어내고 ‘입는 예술’이 되는 디자이너들의 창작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패션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요. 30년간 모아온 50만 점의 진품 컬렉션. 글로벌 No.1 패션 박물관을 준비하는 이랜드뮤지엄의 거대한 아카이브에서 나온 ‘상상력 옷장’이죠.

의상이 하나의 창작 작품으로 확장되는 ‘상상의 시작점’을 들여다보는 이번 전시는 패션을 예술의 영역으로 재해석했어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상상과 영감의 원천을 펼쳐보며 세상 속 작은 장면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옷으로 이어졌는지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단순히 의상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이너들의 창작 과정과 실험 정신을 함께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죠. 패션을 하나의 결과물이 아닌 ‘과정의 예술’로 풀어낸 점이 특징이에요.
오브제(Object) 키워드 공간의 일명 카 워시 구간을 지나가면 세차장 속의 차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오브제(Object) 키워드 공간의 일명 카 워시 구간을 지나가면 세차장 속의 차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알렉산더 맥퀸, 크리스챤 디올, 장 폴 고티에, 마르탱 마르지엘라, 이세이 미야케, 발렌티노 가라바니 등 이랜드뮤지엄이 보유한 세계적인 디자이너 20인의 오리지널 의상과 패션 아카이브가 키워드별로 공개됩니다. 관람객은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발전하는 스토리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죠.

첫 번째 키워드는 플라워(Flower)인데요. 축하의 순간 기억하고 싶은 하루,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시간 등 꽃은 늘 특별한 날과 함께하죠.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꽃은 자연이 만든 가장 풍부한 조형 언어입니다. 크리스챤 디올은 “꽃은 여성 다음으로 가장 신성한 창조물”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꽃잎의 곡선은 드레스의 실루엣이 되고, 섬세한 자수와 장식은 옷 위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허리를 강조하는 블랙 벨트와 대비되는 풍성한 스커트 라인, 거기에 핑크 실크 코르사주를 장식한 크리스챤 디올의 칵테일 드레스는 여성을 꽃에 비유했던 디올의 디자인 철학을 잘 보여주죠.

1950년대 안토니오 델 카스티요가 이끌던 랑방-카스티요의 드레스에는 거대한 장미가 피어 있습니다. 실크 원단 전체에 정교하게 직조된 거대한 크기의 장미 패턴은 1950년대 쿠튀르가 추구했던 화려함과 여성미를 상징하죠.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노먼 하트넬은 영국의 국화인 장미 장식으로 영국적 우아함을 표현했고요.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팝송 ‘The Rose’의 주인공 베트 미들러가 입었던 장미 장식이 돋보이는 연한 아쿠아 색의 발렌티노 드레스도 눈길을 끌죠. 영화 ‘For the Boys’로 1992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 입었던 이 드레스에 대해 그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건 내가 소유했던 드레스 중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예요.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이 드레스를 입고 있는 동안 정말 멋진 기분이었어요.” 그날의 찬란한 감정과 기억은 꽃처럼 옷 위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꽃은 그렇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입는 방식이 되죠.
레이 가와쿠보는 종이에서 막 오려낸 듯한 하트 조각들을 겹쳐 옷의 형태를 만들었다. 사랑의 기호는 하나의 패션이 되었고, 이 옷을 입는 순간 우리는 감정을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레이 가와쿠보는 종이에서 막 오려낸 듯한 하트 조각들을 겹쳐 옷의 형태를 만들었다. 사랑의 기호는 하나의 패션이 되었고, 이 옷을 입는 순간 우리는 감정을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두 번째 키워드는 하트(Heart)입니다. 두 개의 곡선이 만나 하나의 형태가 되고, 어린아이도 쉽게 그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 익숙한 모양. 하트는 오래전부터 사랑과 설렘을 전하는 가장 직관적인 상징이었죠. 2010년대 초, 이 작은 기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퍼졌어요.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 버튼. 사람들은 하트를 눌러 공감과 호감을 표현했고, 그것은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감정의 언어가 되었죠. 레이 가와쿠보는 이 익숙한 기호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종이에서 막 오려낸 듯한 하트 조각들이 겹쳐지며 옷의 형태를 만들죠. 평면의 기호였던 하트는 몸 위에서 입체적인 구조가 됩니다. 익숙한 상징은 이렇게 낯선 실루엣이 되죠. 사랑의 기호는 하나의 패션이 되어 이 옷을 바라보고, 또 입는 순간 우리는 감정을 몸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하트를 두른다는 것은 스스로를 다정히 감싸 안는 일과도 같죠.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은 납작하고 두꺼운 롱 파스타 탈리아텔레에서 영감을 받은 파스타 재킷을 선보였다.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은 납작하고 두꺼운 롱 파스타 탈리아텔레에서 영감을 받은 파스타 재킷을 선보였다.


다음에 만날 키워드는 푸드(Food)입니다. 올리브 오일이 따뜻하게 달아오르고, 마늘이 노릇하게 익으며 고소한 향을 퍼뜨리죠. 팬을 흔드는 손끝의 리듬에 맞춰 파스타 면이 부드럽게 흔들립니다.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은 이런 장면에서 옷의 형태를 떠올렸는지도 몰라요. 납작하고 두꺼운 롱 파스타 탈리아텔레에서 영감을 받은 펠트 장식 띠는 재킷 위에서 경쾌한 리듬으로 흐릅니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한입 크기의 라비올리가 푹신한 정사각 패딩 조각으로 변신해 웃에 포근한 부피감을 만들죠. 이러한 유쾌한 상상은 곳곳에서 이어집니다. 모스키노는 오렌지 주스 팩을 핸드백으로 바꾸어 놓았고, 이세이 미야케는 초밥처럼 접힌 액세서리 파우치를 상자에 담은 패키지로 익숙한 장면을 새롭게 풀어내요. 익숙한 음식이 근사한 작품이 되고, 맛을 입는 순간, 우리의 오감도 새롭게 깨어납니다.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은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테디베어 장난감을 떠올리며 테디베어 재킷을 만들었다.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은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테디베어 장난감을 떠올리며 테디베어 재킷을 만들었다.


오브제(Object) 키워드에서는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들이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패션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어요. 일명 카워시 구간을 지나가면 세차장 속의 차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죠. 모스키노와 장 폴 고티에는 세차장의 회전 브러시에서 영감을 받아 찰랑이는 자락의 움직임으로 역동적인 에너지를 표현했어요.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붕대·스타킹 같은 소재를 옷의 중심으로 끌어올렸고, 시간과 목소리를 담던 시계와 전화기를 손끝에 머무는 핸드백으로 바꿔 일상에 작은 파동을 만들었죠. 익숙한 장치는 물론 버려지거나 소외된 것조차 새로운 패션의 형태로 다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은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테디베어 장난감을 떠올렸는데요. 그 기억은 마돈나가 착용하며 대중문화 속에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테디베어 재킷으로 이어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상상은 언제나 일상의 사물에서 시작되고 그 순간, 평범한 것은 새로운 패션이 되죠.
이세이 미야케는 자르고 덧붙이기보다, 접히고 펼쳐지는 순간에 집중했다. 평면의 천은 몸을 만나며 걸음을 따라 흔들리고 몸의 곡선을 따라 새로운 선을 만들어 낸다.

이세이 미야케는 자르고 덧붙이기보다, 접히고 펼쳐지는 순간에 집중했다. 평면의 천은 몸을 만나며 걸음을 따라 흔들리고 몸의 곡선을 따라 새로운 선을 만들어 낸다.


다음 키워드 종이접기(Origami)에선 이 단순한 행위에 오래 머문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한 장의 천(A Piece of Cloth)’에서 시작한 이세이 미야케. 그는 자르고 덧붙이기보다, 접히고 펼쳐지는 순간에 집중했죠. 평면의 천은 몸을 만나며 숨을 얻는데요. 걸음을 따라 흔들리고 몸의 곡선을 따라 새로운 선을 만들죠. 그 접힘의 사고는 또 다른 형태로 이어져 삼각 조각들이 이어진 바오바오(Bao Bao) 백을 만들었죠. 1994년 발표된 ‘비행접시 드레스’는 이세이 미야케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공법, 즉 옷을 다 만든 후 주름을 찍어내는 ‘가먼트 플리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물빨래가 가능한 폴리에스터 소재로 무게가 거의 없는 비행접시 드레스는 작은 가방에 들어갈 정도로 얇은 원반 형태로 단순화되기도 하지만 필요한 경우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을 수 있을 만큼 늘어나기도 해요.
‘상상력 옷장’ 전시의 아트(Art) 키워드에서는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이미지가 종이 드레스로 제작된 걸 볼 수 있다.

‘상상력 옷장’ 전시의 아트(Art) 키워드에서는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이미지가 종이 드레스로 제작된 걸 볼 수 있다.


아트(Art) 키워드에서는 런웨이에 서 있는 옷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모스키노의 드레스에서 몬드리안의 사각형은 하트로 바뀌고, 장난스러운 문구 ‘Art is love!’가 옷 위에 새겨지죠. 장 폴 고티에의 드레스 위엔 앙리 마티스의 ‘춤’ 작품이 새겨져 있어요. 그림 속 춤추는 사람의 팔이 의상의 소매 부분과 연결되어 옷을 입은 착용자의 움직임이 그림에 반영되는 위트가 담겼죠.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이미지는 종이 드레스로 제작됐고요.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은 키스 해링의 그래픽을 패션으로 옮겨 ‘입는 예술’을 선보였어요. 예술은 더 이상 벽에 머물지 않죠. 옷은 움직이는 캔버스가 되고, 몸은 가장 가까운 전시장이 됩니다. 거리와 일상은 거대한 갤러리가 되고, 우리는 그 안을 걷는 살아 있는 작품이 되죠.
거대한 구에 수십 개 인형의 눈알이 박힌 팀 호킨슨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을 모티프로 이세이 미야케가 팀 호킨슨과 함께 제작한 플리츠 바디 수트.

거대한 구에 수십 개 인형의 눈알이 박힌 팀 호킨슨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을 모티프로 이세이 미야케가 팀 호킨슨과 함께 제작한 플리츠 바디 수트.


다음 키워드는 우주(Space)인데요. 1960년대 우주를 향한 기대는 옷 위에서도 반짝였습니다. 파코 라반은 천 대신 금속과 플라스틱을 선택했죠. 작은 알루미늄판을 망치로 두드려 연결하고, 체인처럼 이어 붙였어요. 그는 이 컬렉션을 “입을 수 없는 드레스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모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금속 조각들은 서로 스치며 맑게 울렸고, 조명을 받아 반짝이며 표면을 끊임없이 바꾸었죠. 오늘 우리가 마주한 미래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AI가 새로운 옷을 디자인하고, 섬유는 체온과 움직임을 기억하죠. 옷 속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 스며듭니다. 미래는 늘 상상에서 시작되었어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어떤 모습으로 입게 될까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죠.
알렉산더 맥퀸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 컬렉션 ‘Plato’s Atlantis Collection’의 디지털 프린트 오간자 드레스. 그가 그린 플라톤의 아틀란티스는 빙하가 녹아 바다로 돌아간 미래, 인간이 다시 바다의 생명체로 진화한 순간을 상상한 무대였다.

알렉산더 맥퀸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 컬렉션 ‘Plato’s Atlantis Collection’의 디지털 프린트 오간자 드레스. 그가 그린 플라톤의 아틀란티스는 빙하가 녹아 바다로 돌아간 미래, 인간이 다시 바다의 생명체로 진화한 순간을 상상한 무대였다.


물이 차오르는 듯한 빛. 낯선 생명체처럼 걸어 나오는 실루엣. 마지막 키워드 상상(Imagination)에서는 알렉산더 맥퀸의 현실을 넘어선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의 런웨이는 옷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와 장면이 펼쳐지는 무대였죠. 로봇 팔이 드레스를 그려내고, 홀로그램 속에서 모델이 나타나며, 디지털 프린트는 상상 속 풍경을 옷 위에 펼쳐 보였습니다. 2010년 그는 ‘Plato’s Atlantis‘라는 세계를 선보였어요. 그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 컬렉션의 드레스죠. 그가 그린 플라톤의 아틀란티스는 빙하가 녹아 바다로 돌아간 미래, 인간이 다시 바다의 생명체로 진화한 순간을 상상한 무대였습니다. 이 쇼는 패션쇼 최초로 라이브 스트리밍되었고, 레이디 가가의 신곡 ‘Bad Romance’가 공개되며 전 세계의 시선을 모았죠. 이 컬렉션의 아르마딜로 슈즈는 이후 경매에서 세 켤레가 약 30만 달러에 낙찰되며, 맥퀸이 남긴 상상의 가치를 다시 증명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키워드별 패션 컬렉션을 탐색하며 자신의 해석을 더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상상력과 사고의 과정에서 탄생하는 패션 창작의 가치를 전하죠. 상상은 디자이너의 옷장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이어집니다. 익숙한 것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나의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이 말해주는 형태와 색, 기억과 감정까지 취향과 시간, 선택이 쌓여 있는 작은 세계가 일상에서 이어지죠.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삶에 작은 활력이 필요한 누구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볼 만한 전시입니다. 세상의 작은 장면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디자인을 직접 경험해 보길 바랍니다.

‘상상력 옷장’
기간 8월 23(일)까지
장소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165 원그로브 C동 2층 W213호 마이아트뮤지엄 원그로브점
관람 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9시(입장 마감 오후 8시)
관람료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6000원, 어린이 1만2000원



한은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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