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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조선시대 사람들 일상 가장 생생하게 그린 화가 ‘단원 김홍도’

중앙일보

2026.06.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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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초상화부터 동네 개 그림까지…자세히 볼수록 감탄 나오는 ‘단원’세계

요즘은 스마트폰 카메라만 열면 일상을 손쉽게 기록할 수 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사진이 저장되고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카메라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순간과 사람들의 모습을 남기려면 직접 하나하나 그려야 했어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던 만큼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기록은 많지 않죠. 그런 점에서 단원 김홍도의 그림은 특별합니다. 씨름판의 긴장감,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대장간의 분주한 풍경까지 김홍도의 그림 속에는 조선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이 다양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조선의 일상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화가 김홍도의 삶과 예술 세계를 살펴봤습니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초상화를 그릴 때 비단 뒷면에 색을 입히는 ‘배채(背彩)’ 기법을 사용해 작업했다고 명세라(왼쪽) 학예연구사가 설명했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초상화를 그릴 때 비단 뒷면에 색을 입히는 ‘배채(背彩)’ 기법을 사용해 작업했다고 명세라(왼쪽) 학예연구사가 설명했다.


조선시대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단원 김홍도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텐데요.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화가이자 학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천재 화가 김홍도는 왕실의 명을 받아 어진과 행사도를 제작한 궁중 화원이었으며, 동시에 백성들의 평범한 일상을 화폭에 기록한 관찰자이기도 했죠. 간결한 선만으로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표현한 그의 그림에서는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뛰어난 관찰력이 느껴져요. 오늘날에도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함께 인정받으며 걸작으로 평가받는 김홍도의 작품을 만나러 소중 학생기자단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죠.

조선의 일상에 집중하다

국립중앙박물관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를 기획한 명세라 미술부 학예연구사는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김홍도인데요. 알고 있는 단원 작품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씨름'이요" "'서당'이요" 등 소중 학생기자단은 저마다 알고 있는 단원 작품을 외쳤죠. “맞아요.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김홍도는 서민들 일상을 그린 풍속화로 유명하지만 사실 김홍도는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이자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받아요. 신선도·산수화·화조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 당시에도 이미 ‘이런 화가는 없었다’는 찬사를 받았는데, 바로 여러분 앞에 있는 초상화 속 인물이 이렇게 칭찬했죠.” 명 학예연구사가 가리킨 작품 속 인물은 김홍도의 스승 표암 강세황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이자 서예가·평론가·학자로 활동한 김홍도 스승 표암 강세황 자화상.

조선 후기 문인화가이자 서예가·평론가·학자로 활동한 김홍도 스승 표암 강세황 자화상.

“이런 그림을 뭐라고 할까요?” 명 학예연구사 질문에 김도연 학생기자가 “자화상이요”라고 답했습니다. “맞아요. 강세황이 직접 그린 자신의 모습인데, 그가 입은 옷과 모자를 주의 깊게 봐야 해요. 옷은 옥색의 평상복 차림이지만, 관료들이 쓰는 관모를 썼어요.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는 강세황의 복잡한 마음을 상징해요. 저 위에 직접 쓴 글을 보면 '마음은 산림에 있으나 이름은 조정에 올랐다'는 내용인데요. 이 고백을 통해 자연을 벗 삼아 자유롭게 살고 싶은 선비의 이상과 나랏일을 맡은 관리로서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를 표현한 것이죠.” 명 학예연구사 설명처럼 강세황은 조선 후기 문인화가이자 서예가·평론가·학자로 활동하며 당대 예술계를 이끌었습니다. 예술가가 단순히 그림 기술만 익혀서는 안 되며 학문과 인품, 관찰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 강세황의 예술관은 훗날 김홍도에게 큰 영향을 미쳤죠.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어요?” 김도윤 학생기자 질문에 명 학예연구사는 “두 사람의 인연은 김홍도가 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홍도는 그리 좋은 가문 출신은 아니었지만, 강세황은 김홍도의 그림을 보고 남다른 재능을 알아봤고 직접 가르치며 후원했다고 전해져요. 특히 글에서 김홍도의 그림 실력을 극찬하며 조선을 대표할 화가가 될 인물로 평가했는데요. 당시 강세황은 예술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기에 단순한 칭찬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라고 설명했어요.

강세황은 스승 역할뿐 아니라 김홍도가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후원자 역할도 자처했죠. 김홍도가 조선 왕실의 그림을 담당하는 기관인 도화서에 진출하고 궁중 화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도 강세황의 영향이 있었는데, 바로 ‘관찰하는 눈’이었습니다.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면 등장인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져요. 씨름판에서 힘을 겨루는 사람들의 긴장감, 서당 아이들의 장난기, 장터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까지 몇 개의 선만으로도 생생하게 표현됩니다. 이러한 표현력은 단순한 그림 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고 삶을 깊이 이해하는 시선이 필요하죠.
명세라(오른쪽) 학예연구사는 풍속화뿐만 아니라 신선도·산수화·화조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뛰어났다며 김홍도가 그린 산수화를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소개했다.

명세라(오른쪽) 학예연구사는 풍속화뿐만 아니라 신선도·산수화·화조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뛰어났다며 김홍도가 그린 산수화를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소개했다.


“강세황 역시 자연과 사람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림이란 눈앞의 형태만 베끼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봤죠. 김홍도가 훗날 백성들의 일상을 따뜻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건 스승의 가르침 덕분이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런 강세황의 가르침과 특징을 찾을 수 있다며 명 학예연구사는 '나그네가 마주친 세상'과 이 작품에 강세황이 적은 글귀를 소개했습니다. “나그네가 유랑하며 마주친 일상을 그린 작품으로 '거리의 판결' '나루터' '길 위의 풍경 등 여덟 가지 장면이 담겨있죠. 김홍도는 인물의 표정과 옷차림은 물론 말과 나귀의 미세한 신체적 특징까지 구분될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림마다 스승 강세황이 적은 감상평이 있는데 첫 번째 화폭 '거리의 판결'에는 술에 취한 채 판결을 내리는 군수의 모습을 걱정하고 있어요. 또 제5폭에는 물새와 나귀, 사람이 연속적으로 놀라는 장면을 '신품의 경지'라고 극찬했죠.”

또한 강세황은 학문과 철학, 인격을 함께 담아내는 문인화의 예술적 전통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김홍도는 궁중 화원으로서 뛰어난 기술을 갖추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따뜻한 시선을 작품 속에 담았어요. 이러한 점은 스승 강세황이 추구했던 예술 정신과도 맞닿아 있었죠. “강세황은 김홍도의 산수화 실력도 높이 평가했습니다. 단원은 산수화와 인물화, 초상화, 궁중회화까지 모두 뛰어났던 화가였죠. 이러한 폭넓은 예술 세계 역시 다양한 장르를 연구했던 강세황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어요. 강세황이 예술적 안목과 철학을 제시했다면 김홍도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것이죠. 스승의 가르침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 사람들의 삶을 화폭에 담아내며 새로운 풍속화의 시대를 열었던 셈입니다.”

엄숙한 교육 현장 속 훈장의 훈계를 듣는 아이들과 장난기 가득한 학생들의 모습이 익살스럽게 표현된 ‘단원풍속도첩’의 ‘서당’.

엄숙한 교육 현장 속 훈장의 훈계를 듣는 아이들과 장난기 가득한 학생들의 모습이 익살스럽게 표현된 ‘단원풍속도첩’의 ‘서당’.

이렇듯 김홍도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천재 화가가 아니라, 뛰어난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 상업 발달과 도시 성장, 신분 질서의 변화, 서민 문화의 확대 등과 같은 사회적 흐름이 그림에 녹아있어 더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죠. “김홍도는 어떻게 궁궐에서 활약하는 화가가 됐고, 어떤 그림을 그렸나요?” 고가람 학생모델 질문에 명 학예연구사는 “좋은 질문입니다. 김홍도는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의 그림을 담당하는 기관인 도화서 화원이었죠. 도화서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왕의 초상화인 어진 제작부터 국가 행사 기록화, 궁궐 장식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실력을 발휘했어요”라고 강조했죠.

김홍도가 남긴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원아집도' '군선도' '모당평생도' 등이 꼽혀요. 특히 왕실 행사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당시 국가 행사와 의식 절차를 기록한 중요한 자료였죠. 수많은 인물과 건축물, 복식과 의례를 정확하게 묘사해야 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관찰력과 표현력이 요구됐는데, 김홍도가 이런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1804년 개성 지방의 은퇴한 관리들이 송악산 만월대에서 계회모임을 가진 장면을 그대로 실사화한 그림 '만월대에서 열린 원로들의 모임(기로세련계도)'이 이에 해당하죠.

‘단원풍속도첩’의 ‘씨름’은 두 장사가 힘을 겨루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으로 승부의 긴장감과 현장의 열기가 살아있다.

‘단원풍속도첩’의 ‘씨름’은 두 장사가 힘을 겨루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으로 승부의 긴장감과 현장의 열기가 살아있다.

“여기 나오는 사람이 대략 몇 명일까요?” 명 학예연구사 질문에 도윤 학생기자가 "100명이요"라고 외치자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림 안에 있죠. 64명의 은퇴한 노인 외에 237명이나 되는 시종과 구경꾼 등이 등장하는데, 자세히 보면 다 다르게 표현돼 있어요. 이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참석자들의 신분과 역할까지 정확하게 기록해야 했던 궁중 기록화의 특징을 보여줍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김홍도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전체 화면의 균형을 유지했고, 행사 현장의 분위기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냈죠. 이에 '만월대에서 열린 원로들의 모임'은 산수화·풍속화·기록화의 요소가 모두 담긴 김홍도 만년의 명작으로 평가받아요.

이어 전시된 '단원풍속도첩'을 가리킨 명 학예연구사는 "김홍도 하면 딱 떠오르는 그림이 있잖아요. 그 그림을 모아 '단원풍속도첩'이라고 해요. 풍속화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그림을 말해요. 조선 이전에도 풍속화는 존재했지만 부수적인 개념이었죠. 그러나 김홍도는 평범한 백성들의 삶을 그림 중심에 놓았죠. 그 결과물을 묶은 것이 '단원풍속도첩'으로, 서당·씨름·무동·주막 등 일상과 생업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25점으로 구성됐죠"라고 소개했습니다.

대표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은 단연 '씨름'입니다. 두 장사가 힘을 겨루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으로 승부의 긴장감과 현장의 열기가 화면 전체에 살아 있고 구경꾼들의 다양한 표정까지 세밀하게 묘사돼 지금 봐도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죠. '서당'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엄숙한 교육 현장 속 훈장의 훈계를 듣는 아이들과 장난기 가득한 학생들의 모습이 익살스럽게 표현돼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자아내죠. 쇠를 두드리는 장인들과 풀무질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묘사된 '대장간'은 노동의 고됨과 현장의 활력이 느껴지고요. 여성들이 모여 빨래를 하는 모습을 담은 '빨래터'는 일상적인 노동 현장을 소재로 삼았지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당시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꼽히죠.
수직 선을 빽빽하게 그어 주상절리의 돌기둥이 지닌 험준한 기세를 표현한 ‘총석정’ 밑그림을 보는 김도연·김도윤·송유준 학생기자와 고가람 학생모델(오른쪽부터).

수직 선을 빽빽하게 그어 주상절리의 돌기둥이 지닌 험준한 기세를 표현한 ‘총석정’ 밑그림을 보는 김도연·김도윤·송유준 학생기자와 고가람 학생모델(오른쪽부터).


이어 명 학예연구사는 “어린아이가 춤을 추는 순간을 포착한 ‘춤추는 아이’는 김홍도 특유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화면 속 아이는 한쪽 다리를 들고 몸을 비틀며 춤추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죠. 배경을 최소화하고 춤추는 아이를 화면 중심에 배치해 동작과 표정이 더욱 돋보이도록 했어요. 또 강렬한 색채 대비로 붉은색 계열의 옷과 초록색 계열의 색이 함께 사용돼 보색 대비 효과를 만들어내는 게 특징입니다”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다른 동양화와 달리 ‘단원풍속도첩’이 좀 다르다고 느낀 부분이 있을까요?”라고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물었죠.

“색이 거의 없어요” “배경은 없고 사람만 그렸어요” 등 저마다 찾은 차이점을 말했죠. “맞아요. '단원풍속도첩' 그림을 보면 어디에도 배경이 없고 오롯이 사람을 그렸죠. '씨름'만 봐도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 시선이 집중돼 있어요. 장소를 기록하려 한 것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담아내기 위한 선택으로 보여요. 몇 개의 선만으로도 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생생하게 포착한 김홍도의 풍속화는 조선 후기 서민들의 일상을 가장 인간적으로 기록한 작품으로 평가받죠.” '단원풍속도첩'이 보물로 지정될 만큼 특별한 이유는 조선 후기 평범한 백성들의 삶을 예술의 중심에 올려놓았고 나아가 풍속화를 조선 회화의 중요한 장르로 발전시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어 조선시대 초상화 제작 과정을 살펴보자고 제안한 명 학예연구사는 “먼저 인물의 형태를 선으로 그리는 초본 작업이 이뤄졌다”며 “이는 오늘날의 스케치와 비슷한 작업으로 이후 얼굴과 의복의 형태를 다듬고 채색을 진행하는데, 조선 전통 초상화는 뒤에서 색을 칠했다”고 설명했어요. 조선시대 화가들은 비단 뒷면에 색을 입히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를 '배채(背彩)' 기법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색을 앞면에 칠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비단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고려하면 뒷면 채색이 더 효과적이었다고 해요. 앞면에 직접 색을 올리면 색이 지나치게 진하게 보이거나 표면감이 강해질 수 있지만, 뒷면에 채색하면 색이 비단을 통과하며 자연스럽고 은은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죠. 인물의 피부색 역시 부드럽고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요. “비단 뒤에 색깔을 칠한 뒤 다시 앞면으로 돌려 세부 표현을 더 했으며 눈동자나 눈썹 같은 디테일은 마지막에 작업했다고 해요. 김홍도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초상화 작업을 이어갔죠.”
고가람(왼쪽) 학생모델과 송유준 학생기자가 퍼즐 형태로 제작된 김홍도 작품을 직접 맞춰보고 있다.

고가람(왼쪽) 학생모델과 송유준 학생기자가 퍼즐 형태로 제작된 김홍도 작품을 직접 맞춰보고 있다.


“김홍도 영향을 받은 조선시대 후기 화가들도 있었나요?” 도연 학생기자 질문에 명 학예연구사는 “김홍도 풍속화는 이후 조선 후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김득신을 언급했죠. '야묘도추' '파적도' 등 서민들의 생활상을 주제로 그린 김득신은 농촌과 시장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김홍도 풍속화의 계승자로 평가받아요. 또 조영석·이인문·장승업 등 여러 화가가 김홍도의 관찰력과 사실적 묘사 방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홍도랑 비슷한 그림 스타일을 가진 근대 화가가 있는지 궁금해요” 도윤 학생기자 질문에 명 학예연구사는 “재미있는 질문인데요. 개인적인 의견으로 박수근 화백이 생각나요. 서민들 일상을 많이 남긴 것도 그렇고 화풍도 비슷해 보이고요”라고 말했어요. “관람객들이 김홍도 작품 관람 시 가장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유준 학생기자가 물었습니다. “김홍도 작품은 굉장히 간결하고 섬세해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해요. 앞서 우리가 봤던 ‘나비’도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고 ‘나그네가 마주친 세상’도 상황 묘사가 뛰어났잖아요. 관람객들이 천천히 오래 자세히 그림을 음미하셨으며 좋겠어요. 그래야 김홍도의 진가를 알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이번 전시가 끝나면 김홍도 그림은 최소 3년 이상 수장고에 보관되니 이번 기회에 단원 그림을 보러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홍도가 신임 평안도 관찰사가 임지인 평양부에 부임한 것을 환영하기 위해 베푼 연회 모습을 그린 '평안감사향연도'.

김홍도가 신임 평안도 관찰사가 임지인 평양부에 부임한 것을 환영하기 위해 베푼 연회 모습을 그린 '평안감사향연도'.

백성들의 삶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화가로 기억되는 김홍도의 작품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빨래터의 여인들, 윷놀이판의 유쾌함 그리고 대장간의 뜨거웠던 열기가 그림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고 느껴지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김홍도 작품은 오늘날에도 한국 미술사의 걸작이자 조선 서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거겠죠.

동행취재=고가람(서울 송화초 5) 학생모델·김도연(서울 원명초 6)·김도윤(서울 세종초 5)·송유준(서울 을지초 5) 학생기자

단원 김홍도와 안산의 인연
2013년 경기도 안산시에 문 연 김홍도미술관은 전통과 현대를 병치하는 구성이 특징이다.

2013년 경기도 안산시에 문 연 김홍도미술관은 전통과 현대를 병치하는 구성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는 단원 김홍도의 예술 정신을 계승하고 널리 알리고자 2013년 경기도 안산시에 문 연 김홍도미술관(상록구 충장로 422)은 전통과 현대를 병치하는 구성이 특징입니다. 김홍도 관련 전통 회화 자료는 물론 이를 현대 작가들이 새롭게 해석하거나 확장한 작품들을 함께 전시해 관람객은 조선 후기 회화와 동시대 미술을 한 공간에서 비교·감상하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죠.

김홍도와 안산과 특별한 인연에 대해 안산문화재단 김홍도미술관 김장은 학예연구사는 “김홍도의 스승 표암 강세황은 약 30여 년간 처가가 있는 안산에 머물며 지역과 깊은 연을 맺었어요. ‘김홍도가 어릴 때부터 나를 찾아와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김홍도가 어린 시절 안산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하죠. 이런 인연으로 안산시는 그의 호(號) ‘단원’을 딴 ‘단원구’라는 이름을 사용하고요”라고 설명했습니다.
김홍도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경기도 안산시 김홍도미술관 전시관 전경.

김홍도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경기도 안산시 김홍도미술관 전시관 전경.

김 학예연구사는 김홍도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단원 작품 2점 '공원춘효도'와 '사슴과 동자'를 소개했어요. 과거시험이 열리던 날 새벽의 풍경을 담은 '공원춘효도'는 조선 후기 사회 구조와 시험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죠. 화면 속에는 시험 응시자뿐 아니라 답안을 대신 작성하는 인물, 심부름꾼 등 다양한 계층이 함께 등장해 조선 후기 과거제도의 현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각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사슴과 동자'는 산속에서 약초를 캐는 동자와 사슴이 함께 등장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동화적 분위기로 담아낸 것이 특징이죠.

김홍도는 거친 산세는 힘 있는 선으로 표현하고, 사슴의 털과 같은 세부 요소는 섬세하게 묘사해 대비를 극대화했습니다. 김 학예연구사는 오는 7월 14일부터 9월 6일까지 김홍도미술관 1관에서 열리는 '단원의 정원에서 In Danwon'sGarden' 전시를 미리 소개했어요.

“김홍도의 별호인 ‘단원’은 ‘박달나무가 있는 정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이번 전시는 단원의 뜻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정원을 주제로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선보이려 합니다”라고 했죠. 자연과 계절, 감정과 기억을 다양한 시각 언어로 풀어내며 회화뿐 아니라 영상, 설치 작업 등 복합 매체가 함께 구성돼 관람객에게 확장된 예술 경험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
기간 8월 2일(일)까지
장소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서화실회화2실
관람 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수요일 오후 9시까지)
관람료 무료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후기
단원 김홍도의 삶과 작품에 대해 알아보는 이번 취재 때 본 김홍도의 그림은 학교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많이 접한 작품이었는데요. 단원의 그림인지는 몰랐습니다. 김홍도 화가가 그린 풍속화에 조선시대의 모습을 자세하게 담은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죠. 당시 서민들을 그린 그림은 드물었다고 하는데 김홍도 화가의 그림에는 서민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어요. 또 화폭에 수천 명의 사람을 자세하게 그린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고요. 소중 친구들도 김홍도 전시회에 방문한다면 그림 속 인물이나 풍경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추천해요.

고가람(서울 송화초 5) 학생모델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에 다녀왔습니다. 우선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선견지명과 제자를 향한 애정이 놀라웠죠. 특히 이번에 본 강세황의 초상화에서 머리에 모자를 쓰고, 도포를 입은 차림이 눈에 띄었는데 '마음은 자연에 있으나, 이름은 조정에 있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해요. 평소에 많이 봤던 그림인데도, 이런 뜻이 담겨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죠. 김홍도는 7~8세부터 그림을 배웠다고 하는 것도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저도 학교에서 8살부터 꾸준히 그림을 그렸는데, 김홍도 화가처럼 뛰어난 그림을 그리진 못해서 단원의 그림 실력이 부럽고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학예연구사 선생님 설명을 들으면서 그림을 감상하니 작년에 김홍도에 대해 배웠던 시간이 생각났습니다.

김도연(서울 원명초 6) 학생기자

이번 김홍도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은 '씨름'이었습니다. 김홍도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고, 평소 제가 자주 보았던 그림이라 더 반가웠죠. 조선시대 일상을 그리는 풍속화가로 알고 있었던 단원 김홍도는 사실 풍속화 이외에도 풍경화, 신선화 등 아주 다양한 그림을 천재처럼 잘 그렸다고 합니다. 특히 말년에 그린 '기로세련계도'는 풍속과 풍경이 완벽할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묘사도 탁월했죠. 김홍도는 양반이나 관리들만 그린 것이 아닌 조선시대 서민들의 삶도 관심을 갖고 표현했습니다. 특히 이번 취재에서 학예사 선생님께서 조선시대 초상화와 자화상을 어떻게 그리는지 설명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앞으로도 조선시대 그림을 보면 반가울 것 같아요.

김도윤(서울 세종초 5) 학생기자

취재 전에도 김홍도 화가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더 자세히 알게 됐습니다. 김홍도는 조선 최고의 화가로 불렸다고 해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단원풍속도첩’에 있는 ‘씨름’이었죠. 조선시대 사람들이 씨름을 즐기는 모습을 그림으로 볼 수 있어서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또 김홍도 그림을 통해 서양화와 다른 동양화만의 매력과 특징도 배울 수 있었죠. 서양화와 동양화는 초상화를 그리는 종이부터 차이가 있었는데, 서양화는 캔버스에 그려 작업을 뒤에 하지 않는 반면 동양화는 비단 재질 때문에 뒤에서 색을 칠했다고 해요. 같은 그림이라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죠. 소중 친구들도 이번 전시에 방문해 보세요.

송유준(서울 을지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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