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길 배웅한 사람은 단 2명…조용한 작별 원했던 호크니
중앙일보
2026.06.21 17:28
2026.06.21 17:49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2017년 2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보르도 와인 명가 샤토 무통 로칠드의 2014년산 와인 병 디자인 공개 행사에 참석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1일(현지시간) 88세로 별세한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장례식이 고인의 뜻에 따라 단 두 명만 참석한 채 비공개로 치러졌다.
영국 BBC와 가디언은 21일 호크니의 홍보 담당자 에리카 볼턴을 인용해 장례식이 이미 마무리됐다고 보도했다.
장례식에는 호크니의 오랜 파트너 장피에르 곤살베스 드 리마(61)와 조카손자인 사진작가 리처드 호크니(33)만 참석했다. 장례 절차와 장소 등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모두 데이비드 호크니 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이 재단은 호크니가 2008년 설립했다.
볼턴은 “호크니의 장례 절차와 추모식에 대해 많은 문의를 받았다”며 “호크니의 분명한 뜻은 장례식에 그의 파트너와 조카손자만 참석하고 두 사람의 사생활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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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일 좋아하지 않는다”…생전 소신 반영
이번 장례 방식은 생전 호크니가 보여준 삶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크니는 1990년 영국 정부의 기사 작위를 고사했다. 이후 2003년 한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요란한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어떤 종류의 상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내 친구들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한 바 있다.
고인의 마지막 길 역시 화려한 추모 행사 대신 가까운 이들만 함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데이비드 호크니, ‘그랜드 캐니언’, 1998년. ⓒ데이비드 호크니, 리처드 슈미트
다만 호크니의 삶과 예술 세계를 기리는 공식 추모 행사는 앞으로 여러 도시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첫 추모식은 내년 봄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 이후 고향인 요크셔를 비롯해 프랑스 파리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추모 행사가 마련될 예정이다.
볼턴은 또 호크니가 개인적으로 소장해 온 작품 상당수가 그의 예술적 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전 세계 재단과 공공기관에 기증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37년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난 호크니는 1960년대 팝아트 운동을 대표한 작가 중 한 명이다. 70여 년에 걸친 작품 활동 동안 강렬한 색채와 독창적인 표현 기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1967, 캔버스에 아크릴릭, 242.5ⅹ243.9㎝. ⓒ데이비드 호크니, 영국 테이트미술관
호크니는 196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1967)’ 등 수영장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1972)’은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0만 달러(당시 약 1019억원)에 낙찰되며 당시 생존 작가 작품 가운데 최고 경매가 기록을 세웠다.
말년에는 아이패드를 활용한 디지털 드로잉에 몰두하는 등 새로운 기술과 표현 방식에도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 1972. ⓒ데이비드 호크니, 크리스티 이미지스(Christie‘s Images Ltd.)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 ‘데이비드 호크니’ 전은 드로잉, 회화, 사진, 영상 등 130여 점을 선보였으며, 8개월간 3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으며 국내 미술관 전시 흥행사에 한 획을 그었다.
호크니의 별세 소식에 찰스 3세 국왕은 그를 “수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친구이자 영감”이었다고 추모했다. 키어 스타머 역시 “영국에서 가장 찬사를 받은 예술가 중 한 명”이라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프랑스 노르망디 자택 정원에서 작업 중인 데이비드 호크니. 앞에는 반려견 루비가 함께하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 장피에르 곤살베스 드 리마
한영혜([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