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뇌 안에는 치매 유발 단백질이 가득 차 있는데, 80세가 넘어서도 50대 못지않은 기억력으로 일상생활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최근 바이오메디컬 분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의료 현장에서는 기묘한 역설이 자주 관찰된다. 양전자 단층촬영(PET)에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가 양성으로 나오는데도, 인지 능력 테스트 점수는 동년배 최고 수준의 성적을 넘어 30년 이상 젊게 나오는 고령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결정적 사실이 하나 숨어 있다. 치매를 부르는 뇌 속 변화, 즉 ‘병리’와 실제로 나타나는 ‘증상’은 늘 함께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뇌 안에서는 이미 알츠하이머병의 흔적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어떤 사람은 80대, 90대까지 또렷한 기억력을 유지한다. 반대로 병리가 적은데도 일찍 치매가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알츠하이머병의 뇌 속 손상은 증상보다 훨씬 먼저 시작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뇌는 그 손상을 오래 버텨낸다. 과학자들은 그 차이를 ‘기억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에서 찾기 시작했다. Gemini AI 생성 이미지.
올해 2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린 한
연구가 그 비밀의 실마리를 풀었다.
80세가 넘어서도 50대 수준의 기억력을 유지하는 ‘슈퍼 에이저(super ager)’의 뇌를 들여다봤더니 또래보다 새로운 뇌세포, 즉 새 뉴런이 훨씬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과학계는 ‘다 자란 어른의 뇌에서 새 뉴런이 만들어지는가’를 두고 논쟁해 왔다. 어릴 때 뇌가 완성되면 그 뒤로는 뉴런이 죽기만 할 뿐 새로 생기지 않는다는 견해가 우세했던 시기도 길었다. 이번 연구는 그 오래된 논쟁에 인간 뇌 조직이라는 직접 증거로 답을 내놨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새 뉴런을 ‘처방’받을 수는 없지만, 뇌가 손상을 버티게 만드는 환경은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관리 포인트는 2~3년 전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넓어졌다. ‘버티는 뇌’를 만드는 최신 지도를 펼쳐 드린다.
🌚다 큰 어른 뇌에서도 새 뉴런이 생긴다
오랫동안 의학 교과서의 상식은 이랬다. 뇌세포는 태어날 때 대부분 만들어지고, 성인이 된 뒤에는 새로 생기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뉴런은 줄어들 뿐, 한 번 죽은 뉴런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상식은 절반만 맞다. 대뇌 대부분에서 뉴런이 왕성하게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억을 담당하는 핵심 부위인 해마에서는 성인이 된 뒤에도 일부 새 뉴런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증거가 쌓여 왔다.
이를 ‘성인 해마 신경발생’이라 부른다. 다만 그 양이 너무 적어 ‘인간에게는 사실상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고, 이 논쟁은 수십 년째 이어져 왔다.
해마는 단순한 기억 저장고가 아니다. 오늘 만난 사람의 얼굴, 어제 차를 세운 위치, 비슷한 두 장소의 차이처럼 서로 닮은 기억을 구분하는 일을 한다. 젊고 미성숙한 뉴런은 이 회로에 새로 들어와, 뇌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비슷한 패턴을 구별하며 기억을 갱신하도록 돕는다.
이번 네이처 연구가 주목받은 이유는 이 오래된 논쟁 위에
인간 뇌 조직이라는 직접 증거를 얹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사후 기증된 인간 해마 조직에서 약 35만5997개의 세포핵을 단일세포 RNA 분석과 후성유전학 분석으로 들여다봤다. 그 결과 인간 해마에서 새 뉴런이 만들어지는 여러 단계의 세포 신호를 확인했다.
신경줄기세포가 신경모세포를 거쳐 미성숙 뉴런으로 자라나는 과정은 ‘아기 → 유아 → 청소년 →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새 뉴런은 뇌 회로에 유연성을 더하는 존재다. 이민서 그래픽.
🧵80대 뇌에서 생긴 새 뉴런… 슈퍼 에이저의 비밀
연구팀은 사후 기증된 인간 뇌 속 해마를 다섯 그룹으로 나눠 비교했다. 기준선이 되는 정상 젊은 성인(20~40세)에 더해 같은 고령대(70~90세)의 정상 노인, 알츠하이머 전 단계, 알츠하이머병 환자, 그리고 슈퍼 에이저의 해마에서 신경발생의 분자적 차이를 분석했다.
이 연구를 이끈 올리 라자로프(Orly Lazarov) 미국 일리노이대(시카고) 세포생물·해부학 교수는 수퍼 에이저에 대해 “80대 이상이면서, 인지 검사에서 50대 수준의 성적을 내는 사람”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했다.
결과는 다섯 그룹에서 또렷이 갈렸다. 새 뉴런이 만들어지기 직전 단계인 미성숙 뉴런의 수는 알츠하이머 환자에게서 현저히 줄어 있었던 반면, 슈퍼 에이저에서는 잘 유지되고 있었다. 슈퍼 에이저는 또래 건강한 노인과 젊은이보다도 새 뉴런 생성 지표가 최소 2배 높았다.
라자로프 교수는 “미성숙한 새 뉴런은 가소성이 매우 높아 해마 회로를 조절하고, 뇌에 중요한 형태의 유연성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새 뉴런이 많을수록 기억을 형성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채고, 비슷한 것들을 구별하는 능력이 더 잘 작동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이 신경발생이 인지 기능과 직접 연결돼 있었다는 점이다. 라자로프 교수는 “슈퍼 에이저의 뇌에서 관찰된 신경발생의 분자적 구성은 독특했다”며 “이는 그들이 매우 고령이 되어서도 신경발생을 유지하게 해주는 분자 네트워크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