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 이행을 논의하기 위한 18시간에 걸친 ‘무박 2일’ 협상을 통해 호르무즈해협 관리를 위한 소통 채널을 구축하고 레바논 분쟁을 관리하고 합의 도출을 위한 실무기구 성격의 ‘갈등 완화 기구’를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캠프 데이비드 방문 일정을 마치고 전용차량인 ‘더 비스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의 질문을 따로 받지 않았다. AP=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이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이유로 협상을 앞두고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 발언을 문제 삼아 80분만에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는 등 미국을 압박하며 향후 60일간 험난한 협상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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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종전 협정 위한 로드맵 합의”
협상 중재국인 카타르와 파키스탄은 22일(현지시간) 새벽 공동성명을 통해 “MOU 이행 방안과 관련해 정치적 감독을 제공할 고위급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며 “해당 위원회는 60일 이내에 최종 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로드맵을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21일(현지시간) JD밴스 미국 부통령이 스위스에서 진행된 이란과의 대면 협상이 80분만에 종료된 이후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러한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양측은 회담 무산 위기까지 가는 기싸움을 펼쳤다.
이란은 회담 전날 이스라엘이 레바논 내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대한 공습을 지속하는 것은 MOU 합의 위반이라며 호르무즈해협의 재봉쇄 조치를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이 헤즈볼라를 막지 않으면 “더 강하게 타격하겠다”고 위협한데 이어 “호르무즈해협을 장악할 수도 있고, 그러면 나라(이란)가 없어질 수도 았다”고 했다. 그러자 이란은 협상 시작 80분만에 협상장을 떠나버렸다.
교착 상태에 빠졌던 협상은 중재국의 설득을 통해 가까스로 이어졌고, 18시간만에 결국 “양측이 고무적인 진전을 이뤘다”는 성명이 발표됐다.
양측은 곧바로 후속 협상에 돌입한다. 이란 ISNA통신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은 22일 스위스에서 실무급 회담을 시작해 최종 협정 체결을 위한 세부 이행 방안과 실무그룹 구성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카젬 가리바바디 외무차관이 이끄는 이란 대표단과 미국 측 협상단이 참여하며, 중재국인 카타르와 파키스탄도 함께한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날 협상 종료 후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를 허용하기로 했다”며 이를 “이란 핵 프로그램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고 이란 인터내셔널 등 외신이 전했다. 핵사찰단 활동 개시는 이번 주 중으로 예정돼 있으며, 이르면 이날 중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또 “이란 (동결)자산이 해제될 경우 그 과정은 미국과 카타르가 승인권을 갖는다”며 “그 돈은 이란 국민들을 위해 미국산 대두, 옥수수, 밀을 구입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통항과 IAEA사찰단 복귀를 약속한 데 따라 이란산 원유의 생산·판매·운송 관련 제재를 60일간 한시적으로 면제한다고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이 밝혔다. 허용 기간은 미국 동부시간 기준 8월 21일 0시 1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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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조건 선행돼야”…동결자금 해제?
공동성명 발표 후 이란은 즉각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에스마일 바가이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 국영방송에 “이란의 석유 및 석유화학 제품 수출 제재가 면제되고 봉쇄가 해제됐고 일부 동결자금 해제와 함께 이란을 위한 대규모 재건·개발 계획이 가동됐다”고 밝혔다.
이란 협상단을 이끌고 있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이 21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진행된 미국과의 첫 대면 협상에 도착하고 있다. 이란은 전날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이유로 호르무즈해협을 재봉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AFP=연합뉴스
바가이 대변인은 이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쟁이 종식돼야 한다”며 “양해각서 13조에 따라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에 진입하려면 이런 조건들이 먼저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해각서 13조는 레바논 등 모든 전선의 전쟁 종식, 미국의 해상봉쇄 해제, 이란의 원유 수출 허가, 동결자금 해제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최종 협상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항목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는 이란이 이런 요구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음을 시사한 말로 해석된다.
JD밴스 미국 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진행된 이란과의 협상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이란의 주장처럼 동결자산의 일부가 이미 해제됐다면, 동결자산 해제는 양해각서 체결의 대가가 아니라 ‘합의 이행에 따른 보상’ 차원으로 이뤄질거라던 트럼프 대통령의 그동안의 주장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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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쟁점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CNN은 협상단 관계자를 인용해 “이날 논의된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 방지 메커니즘과 휴전 이행”이었다고 보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JNS(예루살렘 뉴스 신디케이트) 국제 정책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관계자는 이어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이 완전히 개방된 상태로 유지되도록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그 점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전했다.
레바논에서의 분쟁 종식은 양해각서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첫 대면 협상이 진행된 이날도 “어떤 외교적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을 헤즈볼라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에 계속 주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스라엘 총리로서 이 입장을 명확하고 확고하게 고수하며, 그 어떤 것도 이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양해각서 체결 과정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배제했다. 종전에 반대해온 네타냐후 총리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양해각서가 체결된 점은 후속협상의 최대 걸림돌이 될 거란 지적을 받아왔고, 실제로 현실이 돼 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협상 종료 후 X(옛 트위터)에 “첫번째 실전 테스트는 레바논 갈등완화 기구”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를 설득하지 못할 경우 협상을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는 압박의 메시지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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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레버리지 활용된 호르무즈해협
미국과 이란은 이날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상선들의 안전한 통항을 목적으로, 사고와 오판을 방지하기 위한 소통 채널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본협상이 진행되는 60일동안 양측이 합의한 대로 호르무즈해협의 무료 통항을 보장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호르무즈해협은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이란의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돼 왔다. 이란은 협상을 앞두고도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들었고, 결국 네타냐후 총리를 설득하는 책임을 사실상 미국측에 넘기는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이란이 ‘호르무즈 카드’를 협상 과정에서 계속 사용할 경우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처리와 농축 중단 기간 설정, 핵시설 해체 등에 대한 향후 논의도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캠프 데이비드 방문 일정을 마치고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Joint Base Andrews)에 ‘마린 원’을 타고 도착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란이 우라늄 농축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입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에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장은 “미국은 신중히 발언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우리 군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더 강경하게 맞섰다.
한편 2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주말 사이 초대형 유조선 5척이 오만 해안을 따라 호르무즈 해협에 진입해 항행했다. 이들 선박에 적재된 원유 규모는 80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도 20일 기준 선박 67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며 이란의 재봉쇄 위협에도 선박 통항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 내측에 대기 중이던 한국 선박 두 척도 종전 합의 후 처음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왔다고 해양수산부가 22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