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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렬의 과학 산책] 둥근 축구공 네모난 판정

중앙일보

2026.06.22 08:02 2026.06.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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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렬 KAIST 교수

박경렬 KAIST 교수

다시 월드컵의 계절이다. ‘공은 둥글다’는 우연성, 약자가 강자를 무너뜨리는 반전. 기다렸던 골이 터지는 순간의 집단적 환희는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다. 하지만 월드컵의 역사는 동시에 논란과 오심의 역사이기도 했다. 축구팬이라면 익히 아는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 골라인을 넘지 않았지만 골로 인정되며 잉글랜드에 첫 우승컵을 안긴 제프 허스트의 골은 역사적인 오심으로 기록되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라며 쓸쓸히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던 감독의 모습은 이제 자주 볼 수 없다. 이제 경기장은 거대한 판독 장치가 되었다. 골대와 지붕 곳곳에는 초당 500프레임의 초고속 카메라가 설치되고, 모션센서 칩이 내장된 ‘커넥티드 볼’은 경기를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VAR(비디오보조심판·사진)은 인간 심판의 눈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 오프사이드 순간까지 3D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이 스페인을 꺾은 순간도 1.88㎜의 차이에서 갈렸다. TV 화면 속 미토마 카오루의 크로스는 인간의 눈으로는 판정하기 어려웠고, 결국 골라인 판독 기술이 이 역사적인 승리를 결정했다. 이제 ‘판정은 네모’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카메라 앵글과 픽셀의 세계에서 진실은 인간이 아닌 기술적 행위자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다. 골을 넣은 선수는 세리머니를 하다 얼어붙고, 환희에 찬 관중들은 터져 나오려던 카타르시스를 잠시 유예한다. 다시 울고 웃게 만드는 것은 결국 또 VAR이다.

심판의 권위를 보완하려 했던 기술의 도입은 결과적으로 심판의 위상 자체를 흔들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녹색 그라운드에서 보고 있는 건 축구의 미래만이 아닐지 모른다. 기술이 점점 더 정밀하게 우리 삶을 판정하는 시대, 우리는 그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게 될까. 그라운드든 삶이든 질문은 같다. 기술이 공정함을 약속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남는 몫은 무엇인가.

박경렬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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