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문객이 뉴욕 금융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맨해튼 남쪽 항구에 정박해 있는 화려한 요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들은 은행가와 주식중개인들의 요트입니다.” 방문객이 되물었다. “그렇다면 고객들의 요트는 어디에 있습니까?”
금융 고전 『고객의 요트는 어디에 있는가』(1940)에 나오는 일화다. 저자 프레드 쉐드는 이 짧은 질문으로 금융산업의 본질을 꼬집었다. 금융회사는 성장하고 금융인은 부유해지지만, 정작 고객은 기대만큼 자산을 불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퇴직연금 시장이 금융산업의 핵심 영역으로 부상하면서 그 의미는 더 커졌다. 최근 시장에서는 시장점유율이 높고 적립금 규모가 큰 대형 금융회사로 쏠림이 두드러진다.
김지윤 기자
하지만 행동재무학은 이런 판단이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판단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타인의 선택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를 ‘사회적 증거’ 또는 ‘군집행동’이라고 부른다. 식당 앞에 줄이 길면 줄부터 선다. “가장 큰 회사니까 괜찮겠지.” “가입자가 가장 많으니 안전하겠지.” 이런 판단은 편안하지만, 많은 사람의 선택이 곧 더 큰 가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부 금융회사는 이런 심리를 마케팅에 활용한다. 적립금 규모와 시장점유율을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소비자는 이를 서비스 품질의 지표로 받아들인다. 선택 기준이 ‘얼마나 고객을 잘 관리하는가’에서 ‘얼마나 큰 회사인가’로 옮겨간다. 소비자의 선택이 소수 대형 사업자에게 집중될수록 경쟁과 혁신의 유인은 함께 약해지고, 더 나은 상품을 개발하기보다 기존 시장 지위를 지키는 일이 우선시될 수 있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결국 가입자다.
퇴직연금은 규모의 경쟁이 아니라 서비스의 경쟁이어야 한다. 가입자가 살펴야 할 것은 적립금 규모나 점유율 순위가 아니다. 이 회사는 나의 은퇴 준비를 위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장기 투자에 적합한 상품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올바른 투자 결정을 돕는 교육과 상담 체계는 마련되어 있는가. 고객의 자산 증식이 회사의 성장만큼 중요한 목표인가. 광고 속에는 답이 없다.
퇴직연금 시장의 미래는 적립금·점유율 경쟁에 있지 않다. 고객의 노후자산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성장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금융회사의 성공이 아니라 가입자의 성공을 중심에 두는 시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프레드 쉐드가 80여 년 전 던졌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