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의 민통선 철책에 붙여진 군사시설보호구역 경고문. [연합뉴스]
북한이 군사분계선(MDL)에 바짝 붙여 철책을 부설하는 등 최전방 단절 조치를 진행하는 데 대해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반면에 유엔군사령부(UNC·유엔사)는 “자동적인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다”고 밝혔다.〈중앙일보 6월 22일자 1·6면 보도〉 북한이 동족 분단이라는 특수한 한반도의 상황 자체를 부정하고 남측과 ‘적대적 관계’ 형성을 위해 MDL을 국경선화하는 가운데 이를 중재해야 할 유엔사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국방부는 22일 “북한군의 MDL 일대 장애물 설치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북한군의 최전방 작업을 명시적으로 정전협정 위반 행위로 규정한 것은 처음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전협정에 ‘(비무장지대는) 완충지대로 설정함으로써 적대 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유엔사는 이날 중앙일보 질의에 “DMZ(비무장지대) 내의 활동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며, 구체적인 사실과 상황, 그리고 정전협정 및 후속 협정의 관련 조항에 근거하여 평가된다”면서 “건설 작업, 요새화 및 기타 방어 조치는 그 자체만으로 정전협정 위반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엔사는 또 “적절한 경우 확립된 절차를 통해 정전협정 관련 우려 사항을 해결하며, 위험을 줄이고 오판을 방지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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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 남하 중재할 유엔사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다”
유엔사가 북한군의 최전방 작업과 관련해 포괄적인 입장을 밝힌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유엔사의 입장은 북한군의 요새화 작업을 아군이 감시초소(GP)를 유지·보수하는 행위와 동일선상에서 보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단순 작업을 문제 삼긴 어렵고, 화기 반입 등 정전협정상 적대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사안에만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유엔사 체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필요할 때만 선택적으로 유엔사 채널을 활용하려는 북한과 정전협정 체제를 준수하는 한국군의 DMZ 활동을 단순 비교하는 건 힘들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대남 공격 의사를 수시로 밝히며 실제 무력 도발을 일삼고 있는 데다 요새화라는 것 자체가 군사 활동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엔사의 해석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정부로서는 유엔사가 제지하지 않는 한 마땅한 대응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군 안팎에선 우리 군이 상응하는 비례적 조치를 취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군사적 긴장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유엔사 측에 DMZ 이북 지역에 대한 실효성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유엔사와의 입장 차이에 대해선 “긴밀하게 소통해 대응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유엔사가 개입을 자제하며 사실상 북한군의 작업을 묵인할 경우 북한군이 설정한 철책과 지뢰 지대를 따라 MDL이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MDL을 밀어내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군은 이미 불모지 조성을 지난해 말 완료했고, 지뢰 지대를 만들면서 남측 기준의 MDL을 다수 침범했다.
합참은 “한·미 수집 자산을 통해 MDL 일대에 북이 설치한 불모지 및 지뢰 지대로 추정되는 지형 변화를 식별했으나, 정확한 현장 확인이 필요해 유엔사와 협조 중”(국회 국방위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실 서면 답변)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우리 군은 병력 감소 시대에 대응해 DMZ 내 감시초소인 GP를 완전 무인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럴 경우 남측 DMZ에서만 병력을 물리는 게 된다. 반면에 김정은이 MDL 일대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라고 한 건 DMZ의 무장화를 뜻할 수 있다. 남한을 적대국으로 간주하며 무력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데 따라 경계초소나 병력 등이 MDL 코앞까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의 ‘MDL 남하’ 시도는 남북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이재명 정부가 DMZ에 대한 민간인 개방 확대를 추진하려는 상황과도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통일부와 여당은 DMZ를 평화적 공간으로 설정하겠다는 의지가 크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월 21일 강원도 고성의 ‘DMZ 평화의 길’을 찾아 막혀 있는 구간의 재개방 추진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막혀 있는 ‘DMZ 평화의 길’ 고성A코스 구간을 22사단장과 함께 걸으며 “이 길은 한반도 평화와 공존으로 다가가는 진정한 평화의 길”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의 선제적 신뢰 회복 조치 차원에서 평화의 길이 원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다.
다만 북한의 철책은 한번 세우면 되돌리기 어렵고, 향후 남북대화 국면에서 북한이 이런 구조물의 철거 행위 자체를 유리한 협상 수단으로 쓸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 정부가 ‘DMZ 평화지대화’를 추진할 경우 DMZ에 대한 북한의 공세적 무장화에 대응하는 게 한층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