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첨단 기술은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었고, 물질적 풍요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러나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깊은 고독과 단절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수많은 관계망 속에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진정한 만남과 공동체적 유대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타인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생존과 성공이 우선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생명은 때로 효율과 성과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태아와 노인, 장애인과 병자,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은 존엄한 존재로 존중받기보다 경제적 가치나 생산성의 관점에서 판단되기도 한다. 허무주의와 ‘죽음의 문화’가 오늘날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죽음의 문화는 단순히 생명을 해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을 수단화하고, 약한 존재를 외면하며, 사랑과 연대보다 무관심과 배제를 선택하는 사회적 풍토 역시 죽음의 문화의 한 모습이다.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이러한 흐름에 맞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켜왔다. 그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온 대표적인 결실이 바로 ‘생명의 신비상’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생명 존중 정신을 계승해 제정된 생명의 신비상은 지난 20년 동안 생명과학, 인문사회과학, 사회활동 분야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헌신해 온 연구자와 활동가들을 발굴하고 격려해 왔다.
생명의 신비상은 단순한 학술상이 아니다. 인간 생명을 둘러싼 수많은 도전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 사회적 메시지이자, 생명의 존엄성을 향한 공동의 약속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빠르게 발전하는 오늘날, 인간을 기술과 효율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고유한 가치를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올해 제20회를 맞은 생명의 신비상이 더욱 뜻깊은 이유는 그 정신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와 만나 새로운 세대에게 이어질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청년들이 모이는 서울 WYD는 단순한 국제행사나 종교 축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한 불안과 상실, 경쟁과 갈등의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희망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자리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 WYD의 주제 성구로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를 선택했다. 이 말씀은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낙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고통과 좌절이 존재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초대이다. 청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와 희망을 발견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서울 WYD가 지향하는 가치 역시 생명의 신비상이 추구해 온 정신과 맞닿아 있다. 인간 생명의 인위적 조작과 도구화를 성찰하고, 중독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동행하며,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사랑의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능력이나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무관심 대신 관심을 선택하는 용기, 경쟁 대신 연대를 선택하는 용기, 자기중심성을 넘어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용기다.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선택들이 모일 때 죽음의 문화는 생명의 문화로 변화할 수 있다.
생명의 신비상이 지난 20년 동안 씨앗처럼 뿌려온 생명 존중의 가치가 서울 WYD를 통해 전 세계 청년들의 열정과 만나게 될 때, 우리 사회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27년 서울에서 울려 퍼질 청년들의 기도와 발걸음은 단순한 행사의 기억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존엄과 사랑의 가치를 세상에 증언하는 희망의 선언이 될 것이며,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생명의 문화에 대한 약속이 될 것이다.
※본 기사의 내용은 오석준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신부의 견해이며 중앙일보사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혀둡니다.